1 미터 앞, 탄탄대로 진입입니다.

by 블레스미

가을이 준비한

아름다운 단풍쇼를

즐길 여유 없이

우리 부부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재원 발령을

받잡고 나온 우리는

기본 주재 기간인 3년을 채웠고

1년의 연장근무를

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이제 한국으로의 복귀를

몇 개월 남긴 상태였다.




그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가지.




첫 번째는

미국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날짜에 맞춰

한국으로 복귀를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은

그전에 속했던 팀으로 되돌아가

하던 업무를 하게 되는데

간혹

다른 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어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 큰 물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니

내 팀에 필요한 인재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귀임하는 시점을 기다렸다가

데려가는 거지.




그 제의를 받는 사람 또한

사내에서

입지를 다지게 되는 기회다.




윗사람들 입에

이름 석자가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몸 값을 높이게 되는

일이니 말이다.




내 남편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우리가 9년 전

첫 번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복귀하던 시점에

남편은 본사의 핵심부서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또 한 번의 성장을 하게 되니

이렇게 다시 한번

주재원을 나 올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거였지.




그건

인맥적으로도

큰 기회였다 싶은데

그곳에서

전무를 만나게 되었던 거고

여러 임원들은 물론

사장에 그룹의 부사장까지도

남편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 분야'에서의

'능력자'로 말이다.




두 번째는

미국 영주권 신청을

진행하는 것이다.




미국에 더 남고 싶은데

주재를 연장할 수는 없으니

영주권 프로세스를 진행시키고

미국회사의 직원으로

신분을 옮기는 것이다.




즉,

미국 이민자가 되는 것이다.

한국 회사에서는

퇴사자가 되어

주재원으로서 받았던

모든 혜택들도 끝.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 볼 때

큰돈 들여

그 사람의 영주권을

서포트할 만큼

현지에서 활약할 인재인가를

따지기 때문이지.




우리의 경우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 볼 수 있는

운 좋은 위치였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전무는

또 한 번

큰 사업을 계획 중이었는데

그것에 맞춰

내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간다면

그 사업에 힘이 되는 쪽으로

배치하고자

각을 잡고 있었거든.




그와 동시에 미국에서도

달콤한 프러포즈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회사는

들어온 물에 노를 젓고 있던

상황인지라

새로운 부지에

큰 공장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을

운영, 설비, 관리, 감독할 사람으로

남편을 꼽으면서

미국에 남아달라,

우리랑 같이 일하자며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지.




한국 사람이니

한국 본사와

뭔가를 조율하는 역할도

잘할 거 같고 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입장?




한국과 미국의 장점이

팽팽했듯이

남편과 나의 입장도 팽팽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두 번의 주재원 발령으로 인해

나의 커리어를

두 번이나 갈아엎었던 게

나에겐 한이 됐거든.




이제는 돌아가서

내 인생 살고 싶었다.

이렇게 미국에 남으면

난 죽을 때까지

밥만 하는 인생이 될게

뻔하니 말이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의 워라밸을

맛보았기 때문이지.




일도 사람관계도 치열한

한국의 회사 생활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그렇게

뼈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

피투성이 노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미국 직원들도

남편을 인정하고

대우해 주고 있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아이들 또한

학년이 높아졌기에

한국의 입시에 맞춰

따라잡기 공부를 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네.




우린 둘 다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더랬다.




누구의 결정이 먹히든 간에

상대에겐

그리고 우리 가족에겐

전혀 다른 세상을

안겨 주는 결과이니 말이다.




그야말로

운명이 결정되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사모는 전화를 할 때마다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냐는

소릴 했다.




한국이었으면

훨훨 날아다닐 내가

여기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이 땅에

뭣 하러 남는 것이냐며

내 맘을 후벼 파 댔고

아이들도 그 정도면

아직 공부를 따라갈 시간이

충분한 거라며

안심을 시키더라.




그리고 남편에 대해서도

그렇게 커리어를 쌓았으면서

한국에서 제대로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 했다.




그러면서

본사팀의 규모도 커져

임원직을 늘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이름 기억하고 있을 때

어서 들어가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뽐뿌질을 해댔다.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왜 이러나 싶더라.




사모 본인도

아이의 학업 때문에

남은 입장이면서

내 아이들의 학업은

별거 아니라 치부하는 말들이

모순으로 들렸고

임원으로 잘 나가는

사모의 남편과는 달리

정글에서

치열하게 뒹굴어야 하는

내 남편인지라

그 손에 칼자루가 있긴 한 걸까

했던 거지.




막 말로

임원 자리를 주겠다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사모 본인이

한국에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이라

그것을

나에게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답은 네네 했더랬지만

괜한 반감이 들었네.




나야

미국에서 보다는

개인적으로

더 살아나는 삶을 얻겠지만

내 가족이

모두 불행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나에겐 지옥이지 않겠나.




매일

머리를 싸매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전무가

미국으로 출장을 나왔고

남편도 그때에 맞춰

그 땅으로 출장을 갔더랬다.




그러면서 둘은

회사에서

얘길 나눌 수 있었는데

퇴근하고 호텔로 돌아온 남편은

나에게 전활 했고

목소리는 살짝

up 된 느낌이었다.




"재밌는 얘기 해 줄까?"




전무는

앞으로의 계획이 어찌 되느냐

물었다고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서포트하겠다면서

남겠다 하면

영주권 절차가

바로 진행되도록 하겠다면서

그렇게 되면

미국에선 좋아할 것이고

본사 입장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남는 것이니

든든해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오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느냐

물었다네.




남편은

우리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내 비췄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무는

본인이 세운 큰 판에 대해

이야기하더란다.




그러면서 만약

내 남편이

한국으로 복귀를 한다면

본사가 아니라

현장으로 들어가 달랬다네?




그 대목에서

남편의 표정은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장은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피 튀기는 현. 장. 이기에

악과 깡 없이는

버티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워라밸의 단맛을 본 사람에게

그런 이야길 했으니

표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더라.




그래서 남편은

본심을 털어놨다고 했다.




돌아가게 되면

원래 있던 본사 팀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그래야

미국에서 키운 커리어를

확대시킬 수 있어

사내에서

유리한 입장이 된다고.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나를 현장으로 보내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냐고"




그랬더니

빗 장 하나를

더 풀어 보였다는 전무.




전무 본인이 계획한

프로젝트에는

현장을 잘 아는

자기 사람이 필요하기에

내 남편을 생각해 두고 있다

말하더란다.




그러면서

앞으로 전무 본인이

현장 파트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봐줄

김 부장(내 남편)도

권한을 가진 자리에 앉아야

일이 돌아가지 않겠냐

했다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현장 쪽에

곧 퇴직을 할 상무가 있는데

그 자리를 이어갈 사람도

마땅치 않으니

김부장이 그쪽으로 들어가면

좋을 거 같다고.




나는 그 얘길 듣고

어안이 벙벙해

전화를 귀에 댄 채로

눈만 굴렸더랬다.




"그래서 뭐야?

자리를 하나 주겠다는 거야??"




"어, 그런 거 같아.

원래

얘기해 줄 생각 없었는데

내가 물으니까 하는 거라더라"




그러면서

한국에 들어와

자기를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운명이 모두 걸린

개인의 결정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한다.




통화 내내 남편의 목소리는

살짝 흥분된 상태였다.




돌아가 봤자

기다리는 건 개고생이라고

생각했던 건데

그게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편은 연차가 높아질수록

자기만의 업무를

추진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었는데

사내 정치질을

혐오하는 성격이라

자신의 포부는

고이 접어둬야 하는 게

불만이었던 참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이제

권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그 흥분을 감출 수 없었겠지.




그리고 첫 직장에서

한 우물만 파고 있었던

일 개 회사원이

임원을 단다는 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거와

같지 않나.




그동안 흘렸던

피 땀 눈물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겠고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한 순간 올라와

나 역시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무의 말을 듣고 나서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 왕관의 무게만큼

견뎌야 할 시련이 있겠지만

'인생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비장한 마음이었던 거 같다.




우리의 결정에 전무는

남편 대신

발령받아 나올 직원을

지정했고

인수인계를 준비하도록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바빴고

나 역시 그러했는데

돌아갈 위치가 정해졌으니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로

이사를 할지,

아이들의 학교는 어떻게 할지

미리 준비할 수가 있었네.




전무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은 내용으로

예산을 상향할 수 있음에

나는 콧노래가 나왔다.




평직원의 월급으로는

아등바등 이었던 우리였는데

월급이 달라질 걸 생각하고

그에 맞춰

다리를 뻗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얼마나 흥분되던지.




한국 또래들에 맞춰

벼락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우는 소릴 할 때마다

걱정 말라며

정 안 되겠으면

국제학교를 보내주겠다는 말로

달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한 가지.




아,

이래서들

손에 딸랑이를 쥐고

흔드는구나..




그럴 의도 없었고

그런 거 할 줄도 몰랐었던

나였지만

어찌 됐든 간에

결국

사모 곁을 지킨 건 나였다.




그 과정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 보인 적도 있는 게

사실이었으나

주변의 미친년들과

또라이들이 했던 것에 비하면

적어도 난 사람 다웠고

정정당당했음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수모와 치욕과 모욕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사모를 케어하며 보인

나의 내조도

남편의 승승장구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지.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에 안고

우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등신처럼

바보처럼

모지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