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정으로
모든 것은 180도 달라졌고
새로운 방향으로
쭉쭉 진행이 되었다.
내가 미국에 살게 될 줄이야.
사연 없는 이민자는 없겠지만
내 사연도 참 만만치 않구나
싶더라.
어찌 됐든
그래도 현실 위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속 잡음은 사라졌고
뭔가 홀가분 한 기분도 들어서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으로 갔다면
우리 식구 4명 모두가
각자 참전해야 했을 개인전이
취소된 꼴이니
장착했던 전투마인드를
벗어 놓을 수 있음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아이들은 웃음을 되찾았다.
사실 그동안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얘상한 것 보다 컸고
그게 나에게 까지 전달이 되니
함께 속이 타들어가는 부분이
있었더랬지.
아이들에게는 그냥
상황이 달라졌다는 말만
했더랬다.
한국에 있는 회사의 사정으로
새로운 결정을 고민하던 중
미국에서 남아 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남기로 결정을 했다고.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세상에 100%는 없는 거야.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게
일이 돌아가더라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구.
지금 봐봐.
우리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을 이미 끝냈고
준비 중이었어서
여기 남을 확률은
0.00001%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완전히 뒤집혔잖아.
그 0.00001%가
현실이 되어버렸잖아.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0.1%라고 무시하면 안 돼.
100%라는 건
없다는 자세로
임해야 돼.
알았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니
마음도 가벼워졌고
사모와의 통화도
힘들지 않았다.
단지,
사모에게 내가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가
고민이었지.
나보다 더 큰 파도를 맞은 건
사모였으니
몸도 마음도
충격이 큰 그녀에게
괜찮다며
밝은 위로를 보여 줘야 할지,
고꾸라진 고통에
무거운 위로를 보여 줘야 할지.
그날 있었던
5시간의 통화 이후로
사모와는
가볍게 메시지만 주고받거나
짧은 통화가 전부였는데
사모의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고
예전과 다른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드문드문이었기에
애매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네.
그렇게 2월 말이 되었고
울리는 전화를 보니
사모의 이름이길래
얼른 받았더랬다.
"블래스미~
나야~~"
이제는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온
목소리.
강아지 산책을 나와 걷느라
숨이 찬 목소리.
그 밝은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고
감사했다.
역시
정신력 하나는 끝내주는
철의 여인.
우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벼운 이야깃거리들을
늘어놓았는데
사실 난
괜찮으시냐 묻고 싶었지만
혹여나
가깟으로 끌어올린
사모의 기분을 망칠까 싶어
목소리로만
상태를 살피던 중이었네.
"있잖아,
우리 남편
이번 주에 미국 올 거야"
전무는
연초에 그 난리를 겪고
잠시 무너졌던 듯하다.
그 당시엔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기억들과
냉정하게 판단되는 순간들이
머릿속을 채우니
후회와 의심과 분노가
밀려온 모양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감정이고
당연히 주저앉을 순간이니
그럴만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냥 단지,
내가 알던 강철인간 전무가
그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뿐인데
그도 사람이구나 싶더라.
잠시
방황의 시간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은
전무는
3월이 되자마자
미국으로 온다고 했다.
다시 바로
구직 활동을 할 거라
오래 있진 못하고
2주 정도 머물면서
정리를 함께 할 생각이라고.
"정리요??"
"어,
우리 한국 들어가기로 했어"
우리가 한 달 동안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게 달려가기 위해
준비했듯이
전무와 사모도 마찬가지였다.
전무는
그동안 쌓은 인맥과
펼쳐 보였던 능력으로
다른 여러 곳의 면접을
앞두고 있었기에
잘 된다면
공백 없이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는데
문제는 아들이었다.
그동안은 전무가
주재원의 신분을 유지했기에
사모와 아들은
합법적으로
미국에 머물 수 있었던 건데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뀌어 버렸으니
만료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했거든.
하지만
생각이 복잡했던 이유는
그 당시 사모의 아들이
미국 대학입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11학년이었던 까닭이었다.
한국도
요샌 고2가 중요하다던데
누가 미쳤다고
그 시점에 전학을 가냔 말이다.
그런데
심지어 전무네 아들은
국가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고
한국으로 간다 해도
국제학교에서 받아주질 않으면
(고학년은 입시가 걸려서
잘 받아주지 않고
TO도 없는 편이다)
일반고로 진학해서
배운 적 없는 한국 교과목으로
수능이라는 걸 치러야 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래서
사모만 한국으로 들어가고
아들은 유학비자로 돌려
친구네서 지내면서
입시를 마칠까도
생각을 해 봤다고 하네.
그런데 아들이
자신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겠다,
뭐가 어떻게 되든 이겨내겠다
라고 말하면서
같이 들어가게 됐다고.
그리고
그렇게 진행하는 와중에
문의했던 국제학교에서
입학허가가 나와서
다행히
전학할 수 있게 되었다고.
또 다른 문제는
살고 있던 집이었는데
전무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사모와 아들이
최대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손 봐 두었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월세를 미리
다 선납해 놓은 것이었다.
아들이 입시를 마치고
완전히 그 땅을 떠나는 날까지
내야 하는 월세를
모두 선납한 거였는데
이렇게 중간에 떠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냔 말이다.
다행히
대강의 사정을 들은 집주인은
선납했던 월세의 일부를
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하네.
그렇게
꼬이겠다 싶은 일들이
해결되니
사람 참,
죽어라 죽어라 하는 일만
생기는 건 아니구나 싶어
그나마 다행이었고
안심이었다.
"그래서
우리 벌써 티켓팅했어"
"벌써요??"
사실
사모에겐 무엇보다도
아들일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아들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해 주고
자신 있게 말해주니
사모는 큰 짐을 덜었던 거 같다.
그러면서 둘은
11학년 2학기가
마무리되는 5월에
바로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고
그래서 5월의 마지막 주로
티켓을 예약했다고 하더라.
그 집도 마음잡고 나니
참 일사천리였구나 싶네.
그러면서 사모는
이제 한국 갈 생각 하니
모든 게 후련하고 홀가분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야!
드디어 이제
한국 간다 가!"
안 그래도
달력의 날짜를 그어가며
한국에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사모였으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되는 감정이었다.
다만,
생각했던, 기대했던
금의환향은 아니었다는 점이
씁쓸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문제다 싶은 일들은
해결이 되었고
이제는 마음이 좀 낫다는
사모의 말과 함께
밝아진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반갑더라.
그리고
별안간 닥친 큰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준 사모가
고마웠다.
물론 내가
그런 기분과 감정을
느꼈다는 건
나 또한
내 마음을 회복했다는 뜻
아니겠나.
그렇게
조용했던 그 시간 동안
우린 둘 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새로운 소식들을
업데이트했지만
우리 집 소식은
주고받지 않았다.
전무의 퇴사가 있기 전에
나는
내 남편의 거취를
한국으로 정했다고
사모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사모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하는 동안 나에게
넌 어찌 돼 가고 있느냐
묻는다거나
한국에서 보자느니
내가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느니
하는 소릴
한 번도 하지 않더라.
그때 느낌이 왔달까.
아,
전무가 건넨 약속을
사모도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걸로 인해
우리도 복잡할 거라는 걸 알고
혹시라도 들을 수 있는
원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아예
묻지를 않고 있다는 느낌이
꽂혔거든.
서운했냐고?
절대.
우리의 결정에 대해
알려줄 필요 없다 생각했고
물어봤다 해도
구구절절
말하기 싫었을 거 같다.
누구에 의한 결정이 아닌
우리만의 결정이었고
그것에 미련이 없었기에
누가 묻든 간에
자신 있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우리만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모에겐 오만 정 다 떨어진
그 회사 얘기를
내 입에 올려야 하는 게
나로선 좀
곤란했을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쪽의 소식만을 업데이트하는
통화였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
사모가
중간중간
자신감 없는 얘길 하면
잘 한 결정이다,
걱정 마셔라,
이제 잘 풀리는 방향으로
흐르려는 거니
믿고 직진하시라며
힘껏 응원의 메시지를 날렸던
통화였네.
"블래스미,
너가 걱정하고
궁금해할 거 같아서
전화한 거야.
어쨌든
일단 그렇게 알고 있고
우리 또 나중에 통화하자~"
사모의 목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보다
훨씬 더 가볍고
후련한 듯 느껴졌고
나 역시 여러 가지로
모든 게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크게 남았다.
근데
나중에 통화하자는 그 말,
그땐
진심이었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