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올 줄 알았던 사모가
한국으로 떠나고
문지기는 내가 된 듯했다.
그것도 임시직이 아닌
정년퇴임조차 없는
철밥통으로.
계획에도 없던 문지기가 되면서
남들 드나드는 것만
구경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문지기에게는
마지막 farewell이
남아 있었다.
회사는
주재원들에게 1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홈티켓을 제공했었는데
아직
2023년의 티켓을
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재원 자격은
8월에 종료될 예정이었기에
6월에 시작되는
아이들의 여름 방학에 맞춰
잠시
한국에 다녀올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던 거지.
아이들과 나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으로,
남편은
후발대로 따라오는 일정으로
예약을 하고 있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라.
그 그 일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
한국으로 귀임하는 티켓을
끊고 있었을 텐데
또다시 방문자,
여행자의 신분으로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항공권을 예약했다.
편도가 아닌 왕복으로.
나는 이삿짐을 싸는 대신
여행가방을 쌌고
격전지로 들어가는
비장함 대신
쉼터에 찾아가는
느슨한 마음을 챙겼더랬지.
한국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가족들을
최대한 많이 만났다.
이젠
내 사비를 털어
방문해야 하기에
언제 또 이렇게 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내 이야기를 아는 지인들은
나에게
끝없는 위로를 보냈고
그렇지 않은 지인들은
부러움을 담아
축하를 보내더라.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한
서류들도
준비를 했다.
식구들의 여권을 연장하고
미국 대사관에 가서
인터뷰도 다시 하고
온갖 서류에 붙일
증명사진도 찍어
종류별로 현상하고
건강검진에 신체검사까지.
편도 티켓을 들었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일들로
바쁜 일정들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우리에게 돌아갈 땅은
이제 미국이었고
돌아갈 집도
이제 미국이었다.
인천 공항을 향해 가면서
창밖을 보는데
그때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다시 볼 그날까지 잘 있어라
나는 간다 하면서도
나 없이 잘 먹고 잘 사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달까.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준비한 서류들을
첨부해
영주권 신청을 무사히 마쳤고
남편은 회사 인사팀과 만나
새로운 포지션에 대한
세팅에 들어갔다.
지금보다 높은
디렉터 직급을 받으면서
그에 맞는 연봉으로
협상을 마쳤고
세금이니 연금이니
의료보험이니 하는
복잡한 것들에 대한 세팅도
마무리 지었지.
남편이
미국 회사 소속으로 바뀌면서
남편의 이름은
한국 본사에
퇴직자로 오르게 되었고
자동으로
퇴직금이 지급되었다.
남편이 첫 직장으로 선택해
그곳에서
청춘의 피 땀 눈물을 흘린 게
19년의 시간이었다.
남편은
1년만 채우면
20주년 선물을 챙기고
끝나는 건데라고 농담하며
입가에 웃어 보였지만
그 말을 뱉어낸 그 속에도
웃음이 있었을까.
아이들은 8학년이 되었고
이제는
영어로 수업 듣는 게 더 편한
아이들이 되었지.
그리고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마음 놓고
친구를 사귈 수 있음에
너무 좋아하더라.
그렇게 크고 작은 변화들에
적응해 가는 사이에
우리는 영주권을 받았다.
회사의 배려로
우리는 영주권 신청서를
패스트 트랙에 태울 수 있었고
그래서 신청을 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영주권.
우린 영주권을 받자마자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주재원일 때는
회사에서
집 렌트비를 지원해 줬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고
우린 더 이상
잠시 머물 사람들이
아니게 됐으니 말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잦은 이동으로
심리적인 피로가 있었기에
이젠 정말 정착하고 싶었다.
매 3년마다
짐만 싸고 푸르며
보따리상처럼 전전한다는 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보통일이 아니거든.
드디어 살고 싶은 동네에
우리 4 식구의 집을
마련하게 되면서
새롭게 뿌리내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집안을 채우던 것들도
정리를 시작했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끼고 살았던 살림들을
내다 버리고
잦은 이사로 망가진 가구들도
싹 다 바꿨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쓰겠다며
야금야금 모아놨던 살림들은
죄다 꺼내 펼쳤네.
모든 게 달라지고
모든 걸 바꾸고 나니
새롭게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삶이 아닌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
그동안
우리가 이뤄 놓은 것으로
실현시킨 보금자리.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도 그렇고
마음으로 느껴지는
안정감도 그렇고
그 모든 것들이
나와 남편을
이제 사람답게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
정답은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내가 있는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