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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레스미 Nov 18. 2024

17년 된 로또.

원하는 이상형 같은 건 없었다.





바란다고 해서

내 앞에 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누굴 따지고 자시고 할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키는 나보다 크면 그만이었고

대학은 다 나오는 세상이니

따질 거리가 아니었다.

직업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많은 남자라던가

꽃미남이라 불리는 남자는

대답도 않고 손사래였고

오로지

생각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충분했다.





나는 연애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이 세상 온갖 것에 대해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여행 다니며 뻘짓도 해보고

우리끼리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친구들과 있으면

천하무적 말괄량이가 되어

즐거울 수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남자친구, 소개팅, 데이트를 주제로

징징거리면


야, 지금 우리가 얼마나 재밌냐?!

남자에 목매지 마. 그럴 필요 없다.

우리끼리 충분히 잘 살 수 있어.


라고 정신교육을 해댔으며

어쩌다

같이 놀자며 헌팅이라도 들어오면

결사반대를 했던 유일한 일인이었다.





낯선 그들 앞에서

달라지는 친구들 모습이 싫었고

우리끼리의 허튼짓을 할 수 없었기에

싫었다.





지금 쓰면서 보니 연애 로망은커녕

아예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던 거 같네.





맞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은 돈이었다.





내 나이 30살이 될 때까지

1억을 모으는 게 목표였다.

그 당시엔

1억으로 오피스텔을 살 수 있었기에

월세를 따박따박 받아먹으며

돈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것과

30 이후의 삶은

내 계획 범주 안에 없었다.

1억을 모으고 나면

내가 계획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 테니 말이다.





비행 스케줄에 따라 일하다 보면

평일에 혼자 쉬고

연휴에 혼자 일하고의 반복이라

만날 친구들이 줄어갔다.

오프 날이면 피곤을 푸느라

하루 종일 잠만 자기에도 바빠서

은행을 문 닫기 전에 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재미라는 게 없었다.

오프 날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다른 세상은 어떤가 싶어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싸이월드를 보니

동호회 같은 모임들이 있더라.

취미도 없고

관심분야도 없었던 나는

직장인이면 누구가 가입할 수 있다는

모임을 선택했다.





찬찬히 훑어보니

12월이라고 연말 모임을 한다네?

날짜를 보니 어라 내 오프 날??

이거나 가봐야겠다 싶어

베프를 끌고 나갔다.





준비물은 각자의 명함이었다.

안 그래도 쓸데가 없어

집에서 썩고 있던 명함을

두둑이 챙겼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게 됐고

우리처럼 일찍 온 사람들끼리

먼저 모여 앉았다.





통성명을 끝내고 잠시 정적의 틈에

한 남자가

웃는 낯으로 안녕하세요 하며

크로스로 맸던 가방을 벗고 앉았다.




그는

늦은 진도를 따라잡아야겠다는 듯이

혼자 떠들어대다가

웨이터가 손님에게 명함을 뿌리듯

그 테이블 사람 모두에게

본인의 명함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걸 건네받은 이들은

반사적으로

자기의 것을 착착착 내밀었고

그는

화투판에서 화투를 쓸어 모으는 것처럼

챙겨 넣었다.





어.. 명함 없으세요..?





나에게 물었다.





네 없어요





아무리

집에서 썩고 있던 명함이었지만

저 화투 더미에 섞이고 싶지 않았다.

구슬치기,  딱지치기에서

승자의 두둑한 주머니를 만들어주는

한 개의 구슬이고 싶지 않았다.

한 장의 딱지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옆에 놓았던 가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남몰래 잠가버렸다.






잠시 후

간단한 자기소개를 끝내고

포토존에서

한 명씩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가보니

아까 그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재능기부로 오늘의 찍사랜다.





그는

아까처럼 계속 웃음을 날리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고

나에게도 똑같은 얼굴을 보였다.





그 표정이 싫었다.

이 사람은

아무에게나 이렇게 웃어주는구나.

상냥한 보답은 딴 사람에게 받으슈

나까지 그래 줄 필욘 없지





사진을 찍자마자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옮겼다.





승무원이세요?


아.. 네..


어디 항공사예요?


어디 같아 보이는데요?


A요.


잘 알고 계시네요 뭐..





끝.

아주 깔끔하게 끝.





그 이후로 그 안에서 마주침은 없었다.





주최자는

온라인으로 대화방을 열였고

나도 초대되었지만

비행 때문에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라

참여는 어려웠다.





대신

이름 리스트를 보며

기억나는 사람들을

친구로 추가하고 있던 참에

이 사람이 누구였지 싶어 클릭해 보니

아 그 찍사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인지 보려면

친구로 등록을 해야 했기에

버튼을 눌렀고

탐정놀이를 하고 있던 중

메시지가 떴다.





안녕하세요?





엥???

누구???

어???????





내가 친구로 등록을 하면

그 당사자에게 연락이 간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이제 보니

내가 대시한 꼴이 되어버렸네..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확대되어 갔고

내가 꼈던 색안경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ㅇㅇ씨,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랑

새벽 3시까지 얘기하지 않아





이게 무슨 관계일까 싶어 묻던 나에게

남자 선배님이 해 주신 말씀이다.

우린 지금 말로 썸 타는 중이었던 거다.





승무원들은 연애를 하기가 쉽지 않다.

당최 만나야 뭐가 되든 말든 할 텐데

좋다 싶으면

며칠을 밖으로 나가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휴일과 연휴 날의 오프는 황금과 같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냐

천지신명께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오프 풍년을 내리셨네!





남남이었던 우리는

썸 타는 관계로 바뀌더니

11개월 만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나라에 등록된 정품이 되었다.





내 1억이라는 목표는

당연히 산산조각 났지만

오피스텔 대신 내 집을 갖게 되었으며

따박따박을 기대했던 월세 대신

딴 주머니에 내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나에게서

남자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정신교육을 받았던 동기는

결혼 날을 잡으면 죽는 줄 알아라

말하며 협박을 했지만

식권 한 장으로 합의하고 끝났다.





오늘이다.





비 연애의 행복을 외치던 열사는

한순간에 얌전한 고양이로 전락하여

부뚜막에 살림을 차린 지 17년.




천지신명이시여,

저에게 오프 풍년을 내리시었다면

로또번호도 내려주심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17년의 내공으로

두 자리는 정도 맞추었으니

나머지 4자리를

지금이라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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