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 남매 중 둘째다.
딱 가운데에 껴버린 아이.
온전한 일인이라기보다
깍두기처럼 존재하는 아이.
나도 기꺼이 술래를 하겠다
손을 들지만
양쪽의 균형만 맞추게 되는
깍두기.
우리 편이
지게 생겼다 싶을 땐
전략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는
깍두기.
편을 먹고 보니
만만치 않은 팀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위로는
공부 잘하는 언니가 있었다.
중학교 땐
전교 일 등을 한 적도 있어서
엄마가
교무실에 떡을 돌렸던 게 생각난다.
고등에 가서도 착실한 학생으로
전교 모든 선생님들이
언니의 존재를 알았으며
반장이니 회장이니
온갖 완장을 차고 다녔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잘하던 언니는
필기 실기 모두를 갖췄다며
미술 선생님의 원픽이 되었고
서울미대를 보내 보자고
엄마 아빠에게 몇 날 며칠 동안
구애를 했었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었다.
그것도 나보다 5살이나 아래인.
심지어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울어도 안아주지 않았다는
집에서 말이다.
늦둥이. 막둥이. 귀남이.
다른 거 필요 없이
이걸로 게임은 끝.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언니는 미술을 해서
우리 집의
돈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언니 또한,
부모라면
자식 뒷바라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마인드 소유자라
그 눈칫밥은
내가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입시가 끝난 후에도
돈은 끊임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은 운동을 선택했다.
내가 봐도
그놈은 공부 체질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제 살길을 찾고자
고민한 결과이겠지만
이미
한쪽으로
물이 새고 있던 집이었기에
나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
저놈 입시 체육을 시킬 돈이 있으면
두 번째 타자인 나에게
그 돈이
흐르지 않겠냐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집 두 번째 타자는
내가 아니었나 보다.
마른 수건을 더욱더 짜내어
남동생 입에 갖다 대 주더라.
나에겐
눈칫밥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아, 후식도 있었지!
당당하게 돈 받아 가는
위, 아래 인간들에 대한
엄마의 욕 섞인 푸념?
욕 섞인 한탄??
후식이 있는 날이면
나는 돈이 필요했어도
돈이 필요 없는 아이였어야 했다.
하루 종일
배가 부른 하루가 됐더랬지.
모든 것을 언니와 공유했기에
나만의 청바지가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둘째였다.
떡볶이 코트가 유행하던 시절
빨간색으로 너무너무 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둘째였다.
언니가 마저 풀지 않은 문제집은
내 책상에 꽂혔다.
지우면서 풀기도 해야 했기에
언니 이름이 적힌 문제집은
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둘째였다.
고3 때 친구가
단기 영어 족집게 과외를 한다고 했다.
모든 지푸라기를 잡아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난 둘째였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날
엄마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버렸다.
도시락을 싸던 시절이었는데
언니는 고3이었고 동생은 어렸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래 내가 둘째였다.
맞벌이하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 필 사람이 필요했다.
언니는
학원에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아직 학원을 다닐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 내가 둘째였다.
취업을 하고 나서
집에 생활비를 보탰다.
큰돈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예술인 하나
아직 학생인 돈 먹는 귀신 하나
그래 내가 둘째였다.
나는 사실 무용이 하고 싶었다.
한국무용.
나이 지긋한 어른이
쪽 머리에 한복 입고 느릿하게 추는
옛날 춤인 줄만 알았는데
티브이에서 접한 한국무용은
내 혼을 뺐다.
젊은 여성이
양복도 한복도 아닌 복장에
발라드 음악에 맞춰 추는 한국무용이라니
게다가
'한'을 살리는 무용수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건 없었다.
워낙에 유연한 몸이었고
체형적인 조건은 문제가 없었다.
'한'의 표현?
내가 그동안 먹은
눈칫밥과 후식이 도대체 몇 그릇인데
나한테 그걸 따져.
문제는
내가 둘째라는 것.
내가 깍두기라는 것.
엄마는 나에게
답이 정해진 질문을 했었다.
ㅇㅇ는 괜찮지?
그냥 공부로 대학 갈 거지?
엄마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삼 남매 중 둘째였지만
두 번째 타자가 되지 못했고
우리 집에서
세 번째 타자는
아예 라인업에 없었다.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가슴 한편에 묻어
늘 그리워하는 대상이 되었고
매체 속 무용수들에게
나 자신만 투영해 볼 뿐이었다.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가
Mnet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 무용수들의
서바이벌 프로였는데
발레, 현대 무용, 한국 무용이
모두 다 나오더라.
날 위한 종합 선물세트!
근육으로 힘 있는 몸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풀어내는 모습.
여자 무용수와는
확실히 다른 멋이 있다.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유가 뭘까?
극강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는
아주 뛰어나거나 반전이 더해지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여성의 것으로 인식되는
무용의 무대에
근육으로 다져진 남성이 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드러움을 선보일 때.
감탄이 최고조에 이르더라.
동시에 날 아프게 후벼 팠다.
멋있게만 보이던 무용수들은
순간순간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넌
너 하고 싶은걸 원 없이 하는구나
넌
너희 엄마한테 말할 수 있었구나
나에겐
그들이 마치
돈 먹는 귀신이었던
언니와 동생 같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감탄을 하면서
보고 또 보는 나.
얼마나 돌려보았는지
그 음악이며 몸짓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마치
깨진 유리컵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치워도 치워도 숨겨진 게 나오듯이
설거지할 때도 밟히고
커피 마실 때도 밟히고
핸드폰 볼 때, 수업 준비를 할 때도 밟힌다.
에잇...
나도
말이나 해볼 걸 그랬나 싶다가도
그거 해서 뭐 하냐 하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우리 집의 믿는 구석은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유명 강사가 그러더라.
그 집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그 집의 가장이라고.
첫째고 장남이고 간에
쌀 떨어지는 걸
제일 걱정하는 사람이
가장인 거라고.
제일 적은 돈을 먹었던 나는
제일 많은 돈을 토해 냈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냐가 더 컸다.
자식을 키워보면
너도 알 거라 하겠지?
그래,
키워보니 알겠다.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은
하늘, 땅, 바다 우주만큼이라는 거.
하지만
나는 하나를 더 안다.
깍두기도
술래가 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