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Nov 25. 2021

<19> 화내며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상대방보다 본인에게 더 해로운 화. 명상으로 유예하는 게 최고의 방책

“화가 당신을 버리는 것보다 당신이 먼저 화를 버려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우리 자신도 괴롭히는 고통을 안겨준 화. 우리는 좋지도 않은 그 일에 귀한 인생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가.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은가.”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화(분노)를 옹호했던 사람이다. 사람이 자신의 화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마음이 무방비 상태가 되고 너무 무기력하고 나태해져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하는 대상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며, 올바른 태도로,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시간 동안, 올바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복왕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 출신이어서일까. 이런 말로 화를 미화하기도 했다. 


“화는 필요하다. 화가 없으면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서는 화가 마음을 채우고 정신에 불을 붙여야 한다. 다만 화를 지휘관으로 삼지 말고 보병으로 이용해야 한다.”


약 400년 후,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화를 잘 내는 동생의 부탁을 받고 쓴 ‘화에 대하여’란 책에서 그는 “어떤 이유로도 화를 내지 마라. 화는 자기 자신을 파괴시킨다”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형을 받은 직후인 AD 40년 전후에 나온 저서다.


세네카는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심리학자다. ‘화에 대하여’는 철학 책이라기보다  심리학 책에 가깝다. 화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며,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인생에서 화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화의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하면 화를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기술했다. 무려 2000년 전에 쓰인 고전인데도 이 시대 독자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준다.  


그는 화를 다른 어떤 감정보다 특별히 더 비천하고 광포한 악덕이자 일시적인 ‘광기’라고 정의한다. 특유의 비교법을 동원해 화의 해악을 묘사했다. 화내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통찰이 탁월하다.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이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낯선 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주고자 하고, 화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까지 공격을 퍼부으려 한다. 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을 끌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화가 사치보다 더 나쁜 이유는 사치는 자신만의 쾌락을 좇지만 화는 남의 고통을 즐기기 때문이다. 화는 악의와 시기심을 능가한다. 악의와 시기심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지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불운이 닥쳤을 때 기뻐한다. 하지만 화는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에게 불운이 찾아와서 피해를 입혀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화는 자신이 직접 그들을 해하고자 한다.” 


세네카는 화란 분별없음의 표현이며, 바람처럼 공허한 것이라며 화가 날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라고 권한다. 거울 속 추한 모습을 보면 스스로 충격을 받아 화낼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어금니를 날카롭게 가는 멧돼지를 흉내내기라도 하듯 이를 부득부득 가는 소리, 비틀린 손의 관절에서 나는 우두둑 소리, 몇 번이고 두들겨대는 가슴팍, 헐떡이는 숨소리, 폐부에서 나오는 절규, 현기증, 느닷없이 지르는 뜻 모를 고함, 앙 다물었다가 이제는 부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혐오스러운 식식거림.”

세네카는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라고 말한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안 되어 너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만든 것들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고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설사 화를 유예시킴으로써 네가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것은 이제 화의 모양새가 아니라 심판의 형태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화의 유예를 실천했다며 그 사례를 책에 소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잘못을 저지른 노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지금 화가 나기 때문에 너를 매질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겠다.” 그는 노예 야단치는 일을 화가 가라앉고 이성을 되찾은 뒤로 미루었는데, 막상 그때가 되면 외려 자신을 돌이켜보고 책망했다고 세네카는 전했다.


플라톤은 노예에게 화가 나 직접 채찍질을 하려고 손을 치켜드는 순간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을 공중에 쳐든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 한 친구가 이 광경을 보고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플라톤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내를 벌주고 있는 거라네.”


플라톤은 이런 말로 반성했다고 한다. “나는 화가 났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즐거이 남을 벌주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노예를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세네카가 화에 대해 주관을 갖고 이렇듯 당당하게 책까지 쓴 데는 자신의 젊은 시절 아픈 경험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스페인 땅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로마로 이주해 좋은 정치교육을 받았으나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20대에 폐결핵과 천식, 우울증으로 고생한 탓에 한참 늦은 34세에 겨우 재무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메살리나 여제 음모에 연루되어 당시 로마제국에서 가장 오지였던 코르시카 섬으로 쫓겨나 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화에 대하여’는 이 시절에 저술한 책이다. 동생 부탁으로 썼다지만 어쩌면 자기 자신의 화를 다스릴 목적으로 썼는지도 모른다.


화는 언제나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상대방을 아프게 하고, 자기 자신도 아프게 한다. 양쪽 모두 아프게 하는 짓을 왜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인간 본성이기 때문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화를 내고 안 내고는 선택의 문제다. 화가 날 때 화를 내서 곧바로 풀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남에게 화를 내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걱정되거나 마음 아픈 경우가 더 많다. 수많은 위인들이 한 목소리로 화를 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 아닐까 싶다. 화내는 본인에게 반드시 손해가 되며, 어쩌면 상대방보다 더 큰 손해가 된다고 말한다.


“1분 동안 화를 낼 때마다 당신은 60초 동안의 행복을 잃는다.”(랠프 왈도 에머슨) “내가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내가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마하트마 간디)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마라. 비난이란 집비둘기와 같다. 집비둘기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다.”(데일 카네기) “화내는 사람은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아 늘 외롭고 쓸쓸하다.”(김수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갑자기 화가 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이 ‘유예’라는 세네카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화가 치밀 때 일단 화내는 것을 늦추거나 미루는 것은 무조건 좋다.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상책 아닌가.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내면 깊숙이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화가 나면 마음속으로 열까지, 아니 백까지 천천히 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심호흡을 하며 잠시라도 눈 감고 명상을 해보면 어떨까.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를 바라는 기도를 해보면 어떨까. “부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너그러움 주소서. 화를 참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소서.”


소크라테스의 경우 화가 나면 말 수가 적어지고 목소리가 낮아졌다고 한다.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는 정신 수양의 결과라 하겠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화에 대하여> 세네카, 김경숙 옮김, 사이, 2013 

<세네카의 인생론> 세네카, 정영훈 엮음, 정윤희 옮김, 메이트북스. 2021

작가의 이전글 <18> 절망에서 희망 찾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