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Dec 17. 2021

<26> 유머로 최고의 인생을 가꾸다

웃음과 사랑의 묘약, 자신감과 창의력의 촉매제

“처칠은 뛰어난 말솜씨와 낭랑한 목소리로 연설했을 뿐만 아니라, 장난꾸러기 같은 유머 감각(정말 유치한)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도미니크 엔라이트의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



*사례 1=처칠이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는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처칠에게는 매일같이 늦게 일어나는 잠꾸러기라며 이런 사람을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처칠은 이렇게 응수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아내와 함께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연설회장은 웃음의 도가니로 변했다. 수상 재임 때 의회에 늦게 도착한 처칠은 겸연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쁜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기 힘듭니다. 앞으로는 회의가 있는 날엔 각방을 쓰겠습니다.” 회의장엔 폭소가 터졌다. 


*사례 2=의회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이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설전을 벌일 때였다. 정회 중 처칠이 소변보러 화장실에 갔다. 소변기가 하나 딱 비어있었는데, 국유화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당 당수 애틀리의 바로 옆 자리였다. 처칠은 다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를 본 애틀리가 한마디 했다. “제 옆에 빈자리가 있는데 왜 안 씁니까? 혹시 저한테 불쾌한 일이라도 있나요?” 처칠이 대답했다. “천만에요. 그냥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은 뭐든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주장하는데, 혹시 제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 일이다 싶어서요.” 화장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영국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유머와 재치의 달인이었다. 아버지가 하원의장을 지낸 정치 명가 출신이라 군 생활과 정치 활동에 가문의 도움이 컸지만 타고난 근면성과 용기, 독서력, 유머 능력이 성공에 큰 몫을 했다고 본다. 특히 그의 탁월한 유머 구사 능력은 정치 활동에 크나큰 활력소가 되었다.


처칠은 후회 없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하원의원, 장관, 수상을 지내면서 영웅적인 인생을 가꾸었다. 바쁜 정치 활동 중에도 화가로서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저술가로도 활동해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영국인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영국인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니 참으로 성공한 인생이다. 결혼 생활도 비교적 원만했으며, 큰 지병 없이 91세까지 장수했으니 이 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90세를 바라보던 노년기에 어떤 기자가 처칠에게 물었다. “만일 한 평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단다. “인생을 다시 산다 해도 지금의 인생과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멋지고 당당하게 살았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어린 시절 처칠은 우등생이 아니었다. 아니 열등생이었다. 중고교 과정인 해로우 스쿨에 다닐 때 그는 최하위 열등반에 배치받았으며, 전교에서 꼴찌 경쟁을 하는 수준이었다. 학교 부적응자에다 낙제생이어서 가문의 수치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길 바랐지만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칠이 잘하는 건 에세이 쓰기가 거의 유일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두 번이나 떨어지고 세 번째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을 위해 전문 학원을 다녀야 했다. 이 학원은 육사 시험 출제위원회 위원들의 심리를 파악할 정도로 고급 정보가 많아 족집게로 통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면 아마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육사를 졸업하고 기병대 장교로 임관한 처칠은 아버지의 배경을 십분 활용해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참전 경험을 쌓았다. 육사 동기들의 질시는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종군기자 자격을 얻어 전장 체험을 즐기기도 했다.


처칠은 보어 전쟁 참전 중 포로가 됐다가 탈출에 성공하는 바람에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보어 전쟁이란 남아프리카 지역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과 영국인간의 치열했던 전쟁을 말한다. 처칠의 나이 불과 25세 때 일이며, 그 덕분에 이듬해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처칠은 탁월한 연설가다. 수상에 취임해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독려하는 대국민 연설을 자주 했다. 명연설 한 토막. “우리는 해안에서도 싸울 것이고, 육지에서도 상륙지에서도 싸울 것이고, 들판에서도 싸울 것이며, 거리에서도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친 다음, 옆에 있는 동료에게 단호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또한 우리는 가진 것이라곤 깨진 맥주병밖에 없더라도 그것으로 싸울 것입니다.” 


처칠 연설의 특장은 뛰어난 공감 능력이다. 연사와 청중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청중을 감정으로 설득하려면, 그래서 통찰력을 제공하려면 연사 자신이 자기감정에 스스로 동요되어야 합니다. 청중의 의분을 불러일으킬 때 그의 가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하고, 청중이 눈물을 흘리게 하려면 그 자신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또 청중에게 확신을 주려면 연사가 먼저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의 유머 능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야 적기에 재치 있는 말이 튀어나오는 법이다. 


처칠은 북아프리카 전장을 지휘하던 몽고메리 장군이 독일군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는데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그 뒤 육군 참모총장이 된 몽고메리 장군이 처칠을 만난 자리에서 어색함을 피하고자 농담을 건넸다. “저는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는 100% 괜찮은 사람입니다.” 처칠은 이렇게 맞받아쳤다. “저는 음주도 하고, 흡연도 하는 200% 괜찮은 사람입니다.”


처칠 같은 위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머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상생활에 특급 윤활유가 된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유머 한마디 없이 점잔 빼는 사람을 생각하면 답답하지 않은가.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돌멩이에 부딪힐 때마다 삐걱거린다.”(헨리 워드 비처)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에겐 누구라도 가급적 접촉을 피하고 싶어진다.”(말콤 쿠슈너)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장시간 함께 일하는 직장에선 유머 능력이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 가끔씩이라도 유머를 구사하면 사무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고단함과 짜증이 일순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웃음과 사랑의 묘약이다. 


조직의 리더에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구성원들에게 단합을 도모하고, 자신감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이다.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리더가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


요즘 연애 현장이나 결혼 시장에서 유머 능력을 중요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연인이나 배우자의 직업이나 수입,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시되는 세상이다. 성격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유머 감각 아닐까 싶다. 젊잖은 남편, 얌전한 아내보다 쾌활하고 유머 능력 갖춘 사람이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머를 타고난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착각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은 더더욱 아니다. 말하길 좋아하고, 말주변 좋은 사람이 유머 구사에 유리한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유머는 누구나 배워서 익힐 수 있는 삶의 기술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없다. 코미디 황제 찰리 채플린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저렇게 유치한 코미디가 어디 있느냐”라고 혹평을 받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오래지 않아 일인자가 되었다.


처칠인들 처음부터 유머 달인이었을까. 아니다. 꾸준한 독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위인 명언집, 특히 고전 명언집을 즐겨 읽었다. ‘나의 청춘’이란 제목의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인용문을 모은 책도 나쁘지 않다. 바틀릿의 ‘인용문 모음집’은 썩 괜찮은 책이어서 음미하면서 골똘히 연구하기도 했다. 기억에 새겨진 인용문은 좋은 생각을 줄 뿐 아니라 그 저자의 책을 찾아서 읽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만든다.”


처칠은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적기에 자기 스타일의 경구를 끊임없이 만들어 구사했다. 우리도 멋있는 문구, 엄선된 표현을 외워뒀다가 가끔씩 써먹어보자. 좀 있어 보이지 않을까.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 도미니크 엔라이트, 임정재 옮김, 한스컨텐츠, 2007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윈스턴 처칠, 임종원 옮김, 행북, 2020

작가의 이전글 <25> 양심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