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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21. 2022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행복

-재산과 일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이 천국 행 지름길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월든이라는 작은 호수가 있다. 하버드대 출신 28세 청년이 1845년 7월, 문명을 등지고 호숫가 숲 속에 직접 오두막 집을 지어 입주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가 바로 그다. 소박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통해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삶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호숫가 생활은 2년 2개월간 지속되었으며, 당시 경험과 생각을 책으로 펴낸 것이 불후의 명작 ‘월든’이다. 소로우는 손수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자연과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후에도 철학자이자 시인으로서 인간 사회의 각종 제약이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탐색했다.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청년이 왜 이런 삶을 선택했을까?  인간의 참다운 길, 진정 행복한 길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봤을 때 당시 사람들은 집과 재산과 일의 노예였다. 그것에 얽매여 자유를 박탈당하는 바람에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접 지은 그의 오두막 집 건축비는 28달러 남짓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하버드대 1년 기숙사비(30달러) 보다 적은 돈으로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한 셈이다.

 

소로우는 사치스러운 생활보다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이 더 지혜롭고 행복하다고 봤다. 호화 유람 열차를 타고 매연을 마시며 천국에 가는 것보다 소달구지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땅 위를 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그다.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이른바 생활 편의품들 중 많은 것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향상에 방해가 된다.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및 그리스의 옛 철학자들은 외관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가난했으나 내적으로는 누구보다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이 할 수 있도록 하라.”


소로우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얼마나 그리웠든지 대다수 보통 사람들한테 고달프게 비치는 날품팔이 직업을 칭송하기까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날품팔이가 가장 자유스러운 직업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직업은 한 사람 먹고사는 데 1년에 30일 내지 40일만 일하면 된다. 게다가 그의 일과는 해가 지는 시점에 끝나며, 그 후의 시간에는 자기 노동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이 궁리 저 궁리를 해야 하는 고용주는 1년 내내 숨 돌릴 틈이 없는 것이다.”


2년여 동안의 오두막 살이 경험에서 그는 두 가지를 특별히 배웠다고 했다. 하나는 월든 호수처럼 위도가 꽤 높은 곳에 살면서도 필요한 식량을 얻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식사를 해도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호구지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월든’은 1854년 발표 당시엔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현실도피적 전원생활의 일상을 정리한 산문집 정도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자연주의 사상가와 환경론자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선승인 법정(1932~2010)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 간 법정은 평생 무소유를 말하고 실천했다. 그의 생각과 말, 그리고 삶은 소로우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무소유란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실천이다.”


소로우가 추구한 삶은 단순히 경제적인 소박함만이 아니다. 생각의 소박함, 인생 전반의 소박함이다. 세속적 성공을 위해, 행복을 찾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것이다. 세상의 평가와 출세지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해야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목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소로우는 레프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등을 감동케 했다는 또 다른 저서 ‘시민의 불복종’에서도 주체적인 삶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세상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당연한 생각이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소로우의 이런 사상과 저술은 최근 들어 더욱 각광받는 분위기다. 그의 핵심적 가르침인 단순한 삶과 자기 주도적인 삶은 행복의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 어렵다. 자기 주도적 사고를 갖춘 사람이라야 가진 것이 작거나 적더라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21세기, 현시점에서 소로우의 월든 호숫가 생활을 일반화해서 칭송할 수는 없다. 현대 문명이 주는 혜택을 굳이 거부하며 가난과 결핍을 일부러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주어진 풍요를 적절히 향유하는 것도 삶의 지혜다.

하지만 많고 큰 것, 화려한 것을 좇느라 진짜 자기한테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인생사란 본래 단순한 것인데 우리가 괜히 복잡하게 만든 것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고단한 삶을 자초하고 있다 해서 틀리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운동은 무조건 권장할만하다. 너무 많은 물건, 너무 많은 전화 너무 많은 약속, 너무 많은 일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행복을 붙잡기 어렵다.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는 단순한 삶의 효과가 12가지나 된다고 했다. 시간이 생긴다, 생활이 즐거워진다,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한다, 건강하고 안전해진다, 인간관계가 좋아진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감사한 삶을 산다.


이런 삶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아닐까 싶다. 서두에 소개한 ‘월든’ 속 문장처럼 속박 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경제적 결핍은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소로우는 ‘월든’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강승영 옮김, 이레, 2010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2017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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