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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23. 2022

겸손이 교만을 이기는 이유

-행복은 죽을 때까지 평가돼. 지금 돈과 권력 좀 가졌다고 우쭐대면 안돼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기원전 560년 무렵, 지중해 변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 엄청난 부자로 소문난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가 인접국 그리스의 최고 현인 솔론의 예방을 받았다. 노년에 접어든 솔론이 10년 계획으로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한 젊은 왕 크로이소스가 인생 지혜를 구하고자 그를 왕궁으로 초청한 것이다.


왕은 솔론을 극진하게 대접한 뒤 자신의 거대한 보물창고까지 구경시켰다. 부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는 솔론과 얘기를 나눴다.


아테네의 현자여, 그대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 자기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대답을 듣고 싶어 이런 질문을 했으나 솔론은 전혀 엉뚱한 사람을 댔다. “아테네의 텔로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난 크로이소스가 따지듯이 그 이유를 묻자, 솔론은 “텔로스는 번영한 나라에서 태어나 훌륭한 아이들을 두었으며, 이웃나라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적을 패주시킨 뒤 훌륭하게 전사했다”라고 대답했다. 자기가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왕은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솔론은 텔로스와 마찬가지로 평범하지만 명예롭게 죽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라고 대답했다. 형제는 뛰어난 체력을 갖춘 데다 우애가 좋고 효심이 지극하다고 설명했다. 헤라 축제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는데 수레 끌 소가 없어 형제가 대신 끄느라 도착 직후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이에 잔뜩 화가 난 크로이소스는 “그대는 나를 그와 같은 서민들만도 못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소. 나의 이 행복은 아무런 가치도 없단 말이오?”라고 다그쳐 물었다. 솔론은 왕을 진정시킨 뒤 자신의 행복론을 설파했다.


왕께서 좋은 생애를 마쳤다는 것을 알 때까지 저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유복한 사람이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는 평생을 끝마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는 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돈이 썩을 정도로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많은가 하면, 재산이 없어도 좋은 운을 만난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그리고는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말까지 덧붙였다. 크로이소스는 현재 가진 복을 평가절하하며 결말을 지켜 보라는 솔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는 그를 떠나보내고 말았다.


솔론이 떠난 뒤 크로이소스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으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나라까지 잃고 말았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에게 포로로 잡힌 그는 화형에 처해질 위기 상황을 맞고서야 교만하지 말라는 솔론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아직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키루스 왕은 크로이소스와 솔론과의 과거 대화 내용을 전해 듣고는 자신도 자칫 크로이소스처럼 갑자기 몰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의 목숨을 살려줬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유배 중이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는 등 선정을 베푼 인물이다.


교만은 파멸을 부른다는 역사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BC 약 484~425) 쓴 ‘역사’에 나오는 스토리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도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에 나오는 묘사로는 크로이소스가 특별히 나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어리석은 왕은 아니다. 상당히 유능해서 조상들이 물려준 왕조를 크게 확장했다. 여러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병합해 소아시아 지역 최고 강자로 등극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당시 세계 최고 부자로 불렸다. 화폐제도를 최초로 발명하는가 하면, 역시 최초로 금화를 주조해 유통시켰다. 현대 영어사전에 엄청난 부자란 뜻으로 ‘as rich as croesus’란 관용어가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보통 사람이라면 교만해질 만도 하다. 누구보다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졌으니 우쭐한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돈과 권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습관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심성 때문에 그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기보다 힘이 더 세고 더 많은 걸 가진 사람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돈이나 권력에 취하면 변화하는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 모든 일은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의 약점이다.


왕과 같은 거대 권력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살든 교만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을 이기지 어렵다. 교만하면 어떤 형태로든 삶이 힘들고 고달파진다. 


그리스 신화에선 교만을 가장 나쁜 심성으로 여긴다. 아무리 얌전하고 착한 신이라도 자기한테 도전하는 인간은 교만함을 이유로 가차 없이 처단한다. 성경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도 교만함이 이유다. 성경에는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잠언 16장 18절)라는 구절도 있다.


중국 전한 시대 유향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부귀한 자는 교만과 약속하지 않아도 교만이 스스로 찾아오고, 그 교만은 망하는 일과 약속하지 않아도 망하는 일이 스스로 찾아온다.” 부귀와 멸망 사이에 교만이라는 나쁜 연결고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럴진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무조건 자신을 낮추고 살아야 한다. 고개 바짝 들고 교만하게 굴어봐야 남들에게 미움만 살뿐이다. 교만이란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진 것을 말한다. 겸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세상에 이런 사람 좋아할 이 아무도 없다.  


반대로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사람에겐 좋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든다. 겸손한 사람에겐 누구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겸손이 교만을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대 동서양의 대표 철학자도 겸손한 언행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내 학설은 다만 옛 성인과 현인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조술해서 전하고 있을 뿐이며 여기에 나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가미하거나 창작한 것이 아니다.”(공자)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소크라테스)


명심보감에선 “나를 낮추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라고 했으며, 벤저민 프랭클린은 “겸손은 윗사람에게는 의무, 동등한 사람에게는 예의, 아랫사람에게는 기품이다”라고 했다.


교만하지 말란다고 해서 자부심이나 자존감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교만대신 겸손을 택하고도 그런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아니, 갖는 것이 좋다. 자부심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이런 마음은 겸손과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또 자존감이란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겸손하다고 해서 비굴한 것은 결코 아니기에 자존감은 언제나 중요하다.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겸손 못지않게 자존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겸손이 과하면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가 매우 뛰어나고 큰데도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교만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런 사람 흔하게 본다. 누가 봐도 갖춘 것이 많음에도 겸양이 도를 넘어 기어들어가는 소리 하는 사람은 밉상이다. 이 또한 교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겸손과 교만은 종이 한 장 차이라 하겠다. 그야말로 과유불급임을 명심해야 한다. 크로이소스가 진정한 행복을 아는 훌륭한 왕이었다면 솔론에게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테네의 현인이여. 아시다시피 나는 권력과 돈, 그리고 명성까지 갖추었소. 세상에 태어나 크게 성공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게 사실이오. 나름대로 나는 큰 행복감도 느끼고 있다오. 그런데 이 행복이 과연 죽을 때까지 계속될지 은근히 불안하오. 지금의 이 행복이 계속될지, 또 이 행복을 계속 누리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소.”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박현태 옮김, 동서문화사, 202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2, 3> 플루타르코스, 박현태 옮김, 동서문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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