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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24. 2022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의 힘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당당하게 살면 기쁨이 온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

 

베스트셀러 소설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여성 작가 펄 벅(1892~1973)에겐 크나큰 아픔이 있었다. 외동딸 캐롤이 중증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기에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했다. 


벅이 1950년 발표한 수필집 ‘자라지 않는 아이’를 보면 장애 아이를 힘써 돌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은 이 책에서 벅이 한 말이다. 장애 자녀를 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그는 당당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장애)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아이를 위해, 아이와 함께 아이의 삶을 완성해 주는 데에서 틀림없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벅은 생후 3개월일 때 기독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와 미국을 오가면서 반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중국에서 미국인 농경제학자 청년을 만나 결혼해 처음 낳은 아이가 바로 캐롤이다. 태어날 땐 너무나 예쁘고 총명해 보였다고 한다. 


산모 벅은 처음 아이를 대면하고 중국인 간호사에게 “나이에 비해 지혜로워 보이지 않아요?”라고 물었단다. 태어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다. 간호사는 “정말 그래요. 이 아기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해낼 거예요”라고 화답했다. 그런 아이가 세 살 무렵 지적 장애 증상이 확인되었다. 여태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설마 하던 벅은 그러고도 한 참 후에 장애를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가 네 살이 다 되었을 때에야 정신적 성장을 멈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슬픈 진실을 마주해야 할 순간이 온다. 어떤 사람은 한순간에 갑자기 진실을 깨닫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깨달음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온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지적 장애 아이를 만나는 대부분의 부모가 겪는 부정(否定) 심리 아닐까 싶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계속 미루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경험할 것이다. 그 충격과 좌절감, 미래에 대한 걱정은 비 장애 아이만을 키워본 부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벅은 사방팔방을 찾아다녔다.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병원, 내분비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을 수없이 만났으나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한 소아과 의사가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아주머니, 이 아이는 절대 정상이 될 수 없습니다. 포기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아주머니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집안은 거덜이 날 겁니다. 아이는 영영 낫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의 심정을 벅은 이렇게 묘사했다. “이런 순간을 겪어 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무슨 말로 설명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내 심정에 가장 가까운 표현은 몸 안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것이다.”


벅은 당시 자신에게 닥친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고 있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달래지지 않는다.”


벅이 느낀 슬픔의 본질은 절망과 걱정 두 가지 아닌가 싶다. “아이가 오늘도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매일 느끼면서 절망은 더욱 깊어 간다. 아이를 돌보기는 힘들고 아무리 노력해 봐야 아무런 성과도 없다. 절망감에 더해 공포와 함께 이런 염려가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이런 일을 해줄까?”


캐롤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벅은 결단을 내렸다. 좋은 시설에 보내는 것이다. “나는 행복이 아이의 환경이 되게 해주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 대한 기대, 긍지도 모두 버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다만 흐릿한 아이의 정신에 어떤 빛이 반짝일 때 감사하기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곳에 아이의 집을 마련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캐롤은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특수학교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평생 살다가 벅 사후 19년 뒤,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벅은 딸을 위해 최고의 시설을 마련해 주었으며, 출판 인세 등으로 특수학교에 기부도 많이 했다.


벅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글쓰기로 극복했다. 아이에게 장애가 확인되었지만 남편은 무관심했기에 아이 돌봄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글재주가 있음을 확인한 벅은 틈틈이 소설을 썼고, 39세 때 ‘대지’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작가로 등극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 일본을 오가며 버려진 아이들을 수없이 발견하고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특히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들을 미국으로 입양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재단까지 만들었으며,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했다. 자신도 7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웠다.

벅이 캐롤을 낳은 것은 100년도 더 된 1920년이다. 지적 장애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미국이라고 특별하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여전하다. 그래서 부모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자녀에게 장애가 발견되는 순간, 대부분의 부모는 충격을 받는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우울감과 무력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만성적인 슬픔에 잠기다 보면 대인기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수치심이다.  지적 장애는 의학적으로 부모한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유전성이 있는 게 아닌지, 임신 중 부주의가 없었는지 자책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집 밖에서 아이와 함께 온갖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치심은 현실적으로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떨쳐버리기 힘든 슬픔을 감당하는 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익혀야 한다. 주어진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중증 장애 아이에겐 슬픔이 없다. 부모만 마음 단단히 먹으면 된다. 벅의 조언이다.


아이가 정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아이 본인은 자기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아이는 삶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므로 부모들만 짐을 지면 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그 짐을 지는 법을 어떻게든 익혀 나가야 한다.”


부모의 짐은 부부가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 당연히 옳다. 그 짐이 너무나 무겁고 오래, 아니 평생토록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수시로 엄습하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마음 다독이며 함께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벅은 남편의 무관심을 참을 수 없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경제적 독립이 이뤄지자 미련 없이 남편과 이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버렸다. 장애 자녀를 둔 부부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그러나 시련을 극복하는데 혼자 보다는 둘이 더 낫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 한 가지, 부모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거리를 찾아서 계속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가 전적으로 아이에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머니가 지쳐버리면 모두가 힘들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벅은 글쓰기를 택해 엄청난 성공까지 일궈냈다. 장애 자녀를 뒀다고 해서 자기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자라지 않는 아이> 펄 벅,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09

<펄 벅 평전> 피터 콘, 이한음 옮김, 은행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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