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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Jan 17. 2023

<4> 문학적 침체의 늪에서 탈출하다

-괴테의 이탈리아 문학예술 기행

“내 마지막 존재가 한계에 달했을 때 새로운 생각이나 착상이 많이 떠오릅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지내다 보니 나 자신에게 몰두하게 되어 젊은 시절의 무척 많은 일들까지도 생각이 납니다. 그러다 보면 그런 일들이 지닌 고귀함과 품위가 나를 또다시 더없이 높고 넓은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 안목은 믿기지 않을 만큼 자랐습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독일의 천재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열렬한 팬이었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7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1808년 10월 3일 오전 11시, 나폴레옹은 독일 작센 지방에서 괴테를 단독으로 만난 뒤 “여기에도 사람이 있군”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대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가 이런 멘트를 한 것은 괴테를 자신과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한 최상의 찬사로 해석됐다. 당시 나폴레옹은 39세, 괴테는 59세였다.


이런 불세출의 작가 괴테가 30대 후반 즈음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약관 25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일약 스타 작가로 등극했지만 10여 년째 방황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작가로서의 생명이 영영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괴테는 스스로를 혁신하기 위해 이탈리아 여행에 나섰다.


첫머리에 소개한 글은 38세 때인 1787년 6월, 귀국길 로마에 머물 때 국내 지인한테 보낸 편지에 쓴 내용이다. 긴 여행으로 문학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크게 넓어졌음을 전하는 대목이다.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베로나, 볼로냐,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 등지를 오가는 1년 7개월간의 일정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괴테는 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명성 덕분에 특권을 누리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유년기부터 아버지와 가정교사에게 문학 그림 역사 지리 연극 외국어 승마 검술 따위를 배웠다. 영특해서 8세 때 시를 쓰기 시작하고 13세 때 시집을 펴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22세 때 변호사가 되었으며, 20대 중반에 벌써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문필만으론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웠다. 이때 바이마르 공국에서 행정관으로 초청하자 괴테는 미련 없이 그곳으로 옮겨갔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의 배려와 지원으로 국가 행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오래지 않아 재상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곳에서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같은 자연과학에도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지향점은 문학이었다. 관료로서 성공했지만 시인, 극작가로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내면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틈틈이 글을 쓰지만 이렇다 할 대작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대한 조급함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그가 선택한 것은 이탈리아 문학예술 기행이었다. 1786년 9월 3일 새벽,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채 이탈리아행 급행 마차에 몸을 실었다.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오랜 염원이었기에 기대가 사뭇 컸다. 그는 따뜻한 남쪽나라 이탈리아의 첫 도시 베로나에서 고대 중요 기념물인 원형극장을 처음 만났으며, 베네치아에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구경했다. 로마에 도착해서는 자신의 벅찬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 길고 고독한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세계의 중심지를 찾게 된 것이리라. 사실 난 지난 몇 년 동안은 마치 병든 것 같았다. 그래서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이곳을 찾아와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뿐이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그때는 정말 라틴어로 쓰인 책 한 권, 이탈리아의 풍경화 한 점조차도 바라볼 수 없었다. 이 나라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무르익었다.”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완전히 배우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더욱더 즐겁다. 나는 마치 탑을 세우려고 했지만 불안한 기초를 쌓게 된 건축가와 같다. 다행히도 늦지 않게 그것을 깨닫고 이미 땅속에서부터 쌓아 올렸던 것을 가까이 헐어내고 기반을 넓히고 고쳐서 기초를 더욱 견실하게 다지고자 노력한다.”


괴테는 나폴리로 향하기 전까지 약 4개월 동안 로마를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각종 유적지 탐방은 말할 것도 없고, 소개받은 사람들의 집이나 별장을 방문해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가는 곳마다 풍경을 스케치를 했으며, 사육제 모습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괴테에게 나폴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고대 문명 도시 폼페이를 순식간에 파멸한 베수비오 화산이 인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그마가 분출하고 분진이 흩날리는 화산 가까이로 위험을 무릅쓰고 세 번이나 근접해서 관찰했다. 한껏 모험을 즐기는 진정한 여행가였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평범한 일도 새롭게 예기치 않은 것으로 느껴지며 모험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이다.”


나폴리 시가지와 인근 농어촌지역을 순례하며 괴테는 새로운 깨달음을 경험한다. “나는 많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시야가 점점 더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모든 것도 비로소 정리되어 내 것이 된다. 인간이란 일찍 알면서도 늦게 실행하는 피조물이다. “ “나는 이 나라에 와서 비로소 자연 현상들과 다양한 생각이나 입장들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통상적인 유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예술적, 문학적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만큼 여행 도중 끊임없이 스케치를 하고, 작품 구상을 하고, 또 틈틈이 집필을 했다. 거의 매일 이뤄지는 편지와 일기 쓰기와는 별도다.


나폴리를 떠나 시칠리아 섬으로 가는 선상에서도 괴테는 작품 만들기에 몰두했다. “나는 원고들 가운데 시적 산문으로 된 ‘타소’의 첫 두 막만을 챙겨 갑판으로 나왔다. 이 두 막은 구상이나 줄거리는 지금과 같지만 써놓은 지 10년이나 되어 어딘가 미약하고 애매한 점이 있기에 새로운 취지로 형식을 바로잡고 운율을 덧붙여 부족한 점을 없앴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에 머물 때 이런 일기를 썼다. 


“이 낙원을 떠나야 할 때가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오늘도 공원에 가서 새로운 활력을 충전하고, 어느덧 나의 일과가 된 오디세이아를 읽었다. 그리고 로살리아 산기슭에 있는 계곡을 산책하면서 ’ 나우시카’의 구상을 계속하고, 이 주제에서 희곡적 재료를 얻어낼 수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이 기획은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꽤 흡족한 편이었다.”


귀국길 로마에 머물 때 괴테는 지인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저술에 상당한 성과와 진전이 있음을 전한다. “새해에는 ‘타소’가 도착할 것이고 ‘파우스트’도 망토를 타고 전령처럼 나의 도착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넘기고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한 셈이 되어 알맞은 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는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전보다는 많이 달라졌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괴테는 귀국 직전 아우구스트 대공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지난 1년 6개월의 고독한 생활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였을까요? 예술가로서입니다. 내가 예술가 말고 또 무엇인지는 공께서 스스로 판단하신 뒤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일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여행의 고독은 그에게 오랫동안 원했던 작가로서의 삶을 되돌려주었다. 여행은 한껏 자유로웠으나 스스로를 가다듬은 기회였다. 여행 전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았다면 여행 후에는 고전주의 작가로 거듭 태어났다. 행정 관료나 화가가 아니라 오로지 시인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기회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괴테는 딱딱하고 어두운 밀실에서 빠져나와 자연과 자유자재로 호흡하는 대작가로 변신했다. 곧바로 ‘로마의 비가’ 20장을 출판했으며, 8권의 작품 전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집에는 ‘에그몬트’ ‘이피게니에’ ‘타소’ ‘파우스트 단편’과 첫 시집 등이 수록되었다.


이후 83세로 죽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 ‘파우스트’ 같은 대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데는 이탈리아 여행의 힘이 컸다. 고위 공직자로서 세속의 행복을 즐기며 현실에 안주했다면 불세출의 대작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괴테의 회상이다.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참된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이탈리아 기행>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곽복록 옮김, 사단법인 올재, 2022 

<곁에 두고 읽는 괴테> 사이토 다카시, 이정은 옮김, 홍익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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