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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Jan 24. 2023

<6> 56세 소설가의 인생관을 바꾸다

-앙드레 지드의 아프리카 콩고 여행

“어떤 운명의 여신이 나를 이렇게 아프리카로 떠밀었는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여기에 왔는가? 나는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말을 해야 한다.”


소설 ‘좁은 문’을 쓴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1869~1951)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자주 여행했다. 24세 때 젊은 화가와 함께 북아프리카를 첫 방문해 알제리와 튀니지 등지를 다녀온 뒤 틈만 나면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했다. 신혼여행도 이곳에 다녀왔다. 프랑스 식민지 나라들인 데다 거리가 가까워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아프리카 여행과는 달리 50대 중반에 큰 마음먹고 다녀온 중서부 아프리카 콩고 여행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식민지 땅 깊숙한 곳을 찾았다가 원주민들의 참혹한 삶을 목격한 지드는 인생 처음으로 애타심과 휴머니티, 나아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드는 법과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사업가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음에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유복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외가의 엄격한 청교도적인 가르침에 적응하지 못해 청소년 시절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10대 후반부터 문학에 열정을 보인 지드는 22세 때 외사촌 누이에 대한 사랑과 청년기 불안에 관한 자전적 작품인 ‘앙드레 말테의 수기’를 발표해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대에 벌써 기존의 덕과 종교의 구속을 거부하고 진정한 생명력을 찬양하는 소설들을 잇따라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8세 때 ‘지상의 양식’, 40세 때 ‘좁은 문’을 발표한 지드는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가 콩고 여행에 나선 것은 1925년, 56세 때이지만 20세 때부터 꿈꿔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신앙생활 지도를 위해 젊은 목사인 엘리 알레그레를 가정교사로 붙여주었지만 곧바로 그는 콩고에 선교사로 떠나버렸다. 36년의 세월이 흘러 그와 연락이 닿아 새삼스럽게 여행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여행을 자기 인생에서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규정했다. 지드의 저서 ‘콩고 여행’에 나오는 말이다.


“비록 몇 개월 전부터 이 여행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약 10개월 동안 이뤄진 콩고 여행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현재의 콩고공화국 땅을 주로 탐방하되, 또 다른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접국 차드와 벨기에 식민지였던 콩고민주공화국 지역도 일부 거치는 일정이었다. 지드는 여행 후 콩고강 입구에서 차드 땅인 은자메나까지의 여행 기록을 담아 일기체 ‘콩고 여행’을 펴냈으며 반대 방향 귀로의 여행 기록을 엮어 ‘차드 여행’을 출판했다.


그의 콩고 여행은 상당히 호화로운 것이었다. 프랑스 정부 식민지 장관과 현지 총독의 도움을 받아 콩고지역 부족의 종교, 풍속, 환경, 보건상태 등을 조사해서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여행이었다. 심부름꾼, 요리사, 길 안내원과 수많은 짐꾼이 동원됐다. 지역에 따라 자동차와 가마도 지원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발되지 않은 서부 아프리카의 여행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여행이든 시작은 아름답다. 콩고강을 끼고 사는 흑인 원주민들은 옴, 백선 등 온갖 피부 질환에 걸린 채 살아가지만 주변 자연은 무척이나 싱그럽다. 그가 묘사한 감상이다.


“불가사의한 그 황홀한 풍경은 잠시 지속되었을 뿐 곧 윤곽이 확실해지고 선들이 명확해졌다. 다시 나는 대지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감미로우며 기분이 좋아서 마치 행복을 들이마시고 있는 것만 같다. (중략) 매끈한 강물에 의해 완전무결하게 붉은 색조가 배가되는 감동적인 일몰. 지평선에는 어느새 어두운 구름이 두텁게 드리워졌다. 그 좁은 구름 틈새로 이름 모를 별 하나가 보이니 그 정경을 어떻게 형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드는 오래지 않아 식민지 관청과 대기업 산림회사의 무자비한 횡포와 원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게 된다. 도로 보수에 동원된 여인들의 작업 현장을 지드는 이렇게 묘사했다.

“짐승 대접을 받고 있는 그 불쌍한 여인들은 소나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여인들은 대개 작업을 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길가로는 약 20미터 간격으로 깊이 3미터가량의 널찍한 구덩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안에서 그 비참한 여인들은 길을 돋우기 위한 사토를 퍼 올리고 있었다.” 


지드는 어느 행정관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원주민 학살을 전해 듣고 분개한다. 식민지 관청으로부터 이주 명령을 받은 원주민들이 애써 일구어놓은 경작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자 중사 한 명이 3명의 병사를 데리고 가 30명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그는 또 산림회사의 ‘무도회 사건’을 전해 듣고는 치를 떤다. 지드가 묘사한 무도회 사건이란 이런 것이다.

 

“9월 8일. 산림회사를 위해 작업하고 있던 군디의 작업조 구성원 10명의 고무 채집자(보충 자료에 의하면 20명)는 지난 달치 고무를 채집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하지만 그들은 이번 달에 보통 때의 두 배에 달하는 40~50 킬로그램을 가지고 왔다) 무거운 나무 대들보를 메고 산림회사 주위를 도는 벌을 받았다. 뙤약볕 아래서 뺑뺑이를 돌다 쓰러지면 수비대원들이 나뭇가지를 휘둘러대며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침 8시에 시작된 그 무도회(뺑뺑이 돌리는 것)는 파샤와 산림회사 대리인 모드리에의 입회 아래 하루 종일 계속됐다. 11시경 바구마 마을에 사는 말롱게라는  사람이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자 그 사실을 보고받은 파샤는 '이런 제기랄…'하고 신경질을 내며 무도회를 계속 강행시켰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지드는 총독에게 진상조사와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고도 울분을 참지 못한다. “잠을 이룰 수 없다. 무도회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원주민들은 프랑스 점령 이전이 지금보다 더 불행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설득력이 부족하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내 마음은 지금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하다.”


모두에 소개한 문장은 이날 작성한 일기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가로 살면서 남을 설득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살아온 것을 반성한다. 소설을 통해 후세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데 만족할 게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한다.


“곧 소멸되어도 좋으니 목소리가 즉각 대중에게 미치는 저널리스트들이 부럽다. 지금까지 나는 거짓 도로 표지판들을 믿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일지언정 숨겨진 것을 알아내기 위해 무대 뒤편으로 파고들리라. 내가 의심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드는 콩고 여행을 다녀온 뒤 인생관에 있어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보였다. 원래 그는 부모가 물려준 기득권을 한껏 즐기는 지식인이었다. 소설가로 성공해 아름다움과 도덕에 천착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이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를 자주 여행했지만 모두 심심풀이용 관광이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방문한 콩고에서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억압과 수탈 구조를 목격하고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지드는 식민지에서 보고 들은 ‘끔찍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고발했다. 노년기를 맞아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1947년, 78세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이런 노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겠다. 콩고 여행이 그 출발점이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콩고 여행>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한길사, 2006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2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앙드레 지드, 권은미 옮김, 나남,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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