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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Feb 26. 2023

<7> 아버지의 나라에서 꿈과 용기를 장착하다

-버락 오바마의 아프리카 케냐 여행

“미국에서 보낸 내 삶을 돌아보았다. 흑인으로서의 삶, 백인으로서의 삶, 소년 시절의 자포자기적인 절망, 시카고에서 목격했던 분노와 희망…. 이 모든 것들은 대서양 건너 멀리 떨어진 이 작은 곳과 이어져있었고, 내 이름이나 피부색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의 청소년기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가정에 살면서 술, 담배는 물론 마약에까지 손댈 정도로 자포자기적인 세월을 보냈다. 혼혈 흑인으로서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미국 백인이지만 아버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하와이로 유학 온 흑인이었다. 두 사람은 1960년 결혼하고 이듬해 오바마를 낳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바마가 불과 두 살 때 케냐로 돌아가버렸다. 그곳에 먼저 결혼한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유학 온 남자와 다시 결혼했고, 오바마는 여섯 살 때 두 사람이 인도네시아로 옮겨가자 따라가서 4년 동안 함께 살았다. 열 살 때 하와이로 돌아와서는 주로 외조부모 손에 자랐다. 그 무렵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치료 차 하와이에 와서 한 달가량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에 대한  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부자간의 만남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학업이나 대학 입시준비는 소홀했다. 스포츠, 여자, 음악, 음주가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흑인로서의 열등감, 백인에 대한 경계가 그의 청소년기 정체성을 뒤흔들었다. 자서전 ‘약속의 땅’에서 그는 당시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물려받은 혈통적 유산과 여러 세상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기묘한 처지 때문에 나는 모든 곳에서 왔으면서도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는 채 위태로운 서식지에 갇힌 오리너구리나 상상의 짐승처럼, 아귀가 맞지 않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기계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독서를 열심히 한 덕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털 칼리지에 진학할 수 있었다. 2년 뒤 뉴욕 소재 컬럼비아 대학으로 편입하고 나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오바마는 공동체 조직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시카고로 갔다. 그곳 빈민가에서 주민들의 주거와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사회운동을 벌였다.


오바마는 27세 되던 해 인생에서 매우 값진 여행 기회를 가졌다. 고심 끝에 아버지의 나라 케냐를 방문한 것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 재학 중일 때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인종적 뿌리에 대한 거부감과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달 가까이 캐냐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인생 족적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여행 한지 약 6년 뒤에 출판한 또 다른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내면의 여행,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여정이다.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서 미국 흑인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 유용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실제 여행 중 가족, 친척들과의 수많은 만남을 통해 아버지의 출생 및 성장 배경과 인생 역정, 그만의 독특한 성격을 살폈다. 고모와 삼촌들, 이복형제들을 통해 아버지의 뿌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던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다. 그곳에 아직 생존해 있던 할머니(아버지의 새어머니)로부터 집안의 깊숙한 과거사를 전해 듣고는 결국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


한밤중에 그는 혼자 집 뒤쪽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눈물샘이 마르도록 오랫동안 울었다. 서두에 소개한 문장은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 이 순간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내가 느낀 고통은 아버지가 느꼈던 고통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들은 내 형제가 던졌던 질문들이었다. 그들의 투쟁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귀속된 것이었다.”


케냐 여행을 계기로 오바마의 방황은 끝났다. 아버지의 뿌리를 찾음으로써 그제야 정체성을 회복했다. 용서와 화해의 마음만 가진다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철학을 배웠다. 자서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백인 형제자매들이 미국에 있건 아프리카에 있건 그들을 껴안을 수 있으며, 굳이 우리의 모든 투쟁을 언급하거나 혹은 그 투쟁을 위한다는 마음 없이도 우리가 공통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이후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최고 권위를 가진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의 첫 흑인 편집장이 되는가 하면 로펌에서 만난 변호사 미셸 로빈슨과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35세 때인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에 입문한 오바마는 내리 3선을 거친 뒤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돼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인종 차별 없는 미국을 건설하자는 그의 외침에 미국인들은 폭넓은 지지를 보낸다. 급기야 47세 젊은 나이에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되었다. 


아프리카 흑인 뿌리를 가진 그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어떤 처지에서도 서로 용서하고 화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랑스럽지 못한 출생 배경에 주눅 들거나 남보다 어려운 성장 환경을 탓할 이유가 없음을 새삼 확인해 준 셈이다.


오바마의 힘은 청년 시절 단행한 케냐 여행을 계기로 생겨났다고 해서 틀리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건설하려는 꿈을 그때부터 키우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존재가 인생에 새로운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해야겠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버락 오바마, 이경식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1

<담대한 희망> 버락 오바마, 홍수원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1

<약속의 땅> 버락 오바마, 노승영 옮김, 웅진씽크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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