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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10. 2023

<12> 12일간의 산골 여행으로
심신을 단련하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당나귀와 함께한 프랑스 여행

“우리가 여행 중에 발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진정한 친구 아니겠어요? 참된 친구를 여럿 만나는 여행이야말로 운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이지 그런 친구들을 만나려고 여행을 하는 것이지요.”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쓴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척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여자아이가 자신은 2월 29일에 태어나 4년에 한 번씩 생일이 돌아온다고 슬퍼했다. 그러자 스티븐슨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이 아저씬 다 컸으니까 내 생일인 11월 13일을 네 생일로 하렴. 대신 나는 2월 29일을 생일로 할게.” 


하지만 그는 병약한 체질을 타고나 평생 고생하며 살았다.


건강 때문에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였다. 폐질환이 주범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남태평양 등지로 자주 여행을 다닌 것은 다분히 휴양과 치유를 위해서였다. 남달리 애써 심신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티븐슨은 28세 때인 1878년 9월, 프랑스 남부 세벤 지방에서 당나귀와 함께 12일간 산골 여행을 했다. 


작고 빼빼 마른 당나귀 ‘모데스틴’이 유일한 동반자. 당나귀에 짐을 싣고 자신은 배낭을 멘 채 산과 들과 강을 230킬로미터나 걸었다. 로제르 산과 구데 산을 넘고, 루아르 강과 알리에 강을 건넜다.

여행 당시 스티븐슨은 몹시 지쳐있었다. 병치레하느라 체력적으로 고갈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살지 아직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에든버러 공과대학에 들어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법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것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국 글을 쓰기로 작정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가족들과 사이가 나빠진다. 26세 때 가정에서 탈출,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남쪽 바르비종에 머물 때 열 살 연상의 미국 화가 파니 오스번을 만나게 된다. 오스번은 남편과 별거 중에 아이 둘을 데리고 프랑스에 와있었던 것. 스티븐슨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이혼한 상태가 아니어서 불가능했다. 오스번은 이혼을 마무리 짓겠다며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는 돈이 없는 데다 아버지의 반대가 극심해 따라가지도 못했다.


자신의 무기력함에 실망한 데다 오스번과의 결혼이 불투명해진 상태에서 무언가 삶의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찾아간 곳이 프랑스 남부 르 모나스티에라는 산골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한 달가량 휴양한 스티븐슨은 세벤 지방 산골 여행이란 대장정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자기 체력을 시험하는 한편, 정신적 수양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12일 동안 그가 거친 지역은 평균 해발 1000미터이며, 하루 평균 19킬로미터씩 걷는 강행군이었다. 여관에서 자기도 했지만 늑대가 출몰하는, 별빛 찬란한 산속에서 야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떡갈나무 아래 움푹 팬 곳이 침대였다. 그의 여행기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을 보면 자신이 이른 아침 산속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이렇게 써놓았다. 


 “조금 더 가서 너도밤나무 숲 속을 걸을 때는 수탉 울음소리가 내 귀에까지 즐겁게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저 높은 마을에서는 구슬프면서도 은근한 피리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뺨이 사과처럼 빨간 어느 시골학교 선생님이 가을 햇빛이 가득한 자신의 작은 정원에서 피리 부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모든 아름답고 흥미로운 소리들은 내 마음을 뜻밖의 기대감으로 가득 채웠다.”


스티븐슨은 산길만 걸은 것이 아니라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인간사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눈의 성모마리아 수도원’에서 하룻밤 지내면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앙에 대해 토론하는가 하면, 개신교 신자가 대다수인 어느 마을에선 150년 전 종교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었다.


소나무 숲 속에서 야영한 어느 날 밤엔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을 진하게 느껴야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버린 연인 오스번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역시 여행기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에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는 별빛 아래서 내 옆에 누워있는 동반자를, 그저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러나 항상 손 닿는 거리에 있는 동반자를 원했다. 거기에는 심지어 고독보다 더 조용하며, 제대로 이해되기만 하면 완전해지는 유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과 집 밖에서 사는 것은 모든 삶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스티븐슨은 이 여행을 통해 삶과 종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상호 간의 이해와 타인에 대한 존중, 용서와 사랑, 우정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 서두에 나오는 표현으로, 영국 문학비평가 시드니 콜빈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스티븐슨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오스번을 만나러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혼 문제가 마무리된 1880년 둘은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후 스티븐슨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걸림돌은 건강이었다. 폐질환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휴양을 위해 스위스 다보스,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가 하면 저 멀리 남태양까지 여행한다.


 그런 와중에도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잇따라 발표해 큰 명성을 얻었다. 건강이 계속 나빠지자 그는 부인, 의붓아들과 함께 남태평양의 사모아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스티븐슨은 말 그대로 여행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 여행의 주목적은 건강을 위한 휴양이었지만 여행길에 얻은 영감은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태어났다. 여행기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소설과 수필, 시는 다양한 여행의 결과물이라 해서 틀리지 않는다.


스티븐슨은 머나먼 여행지 사모아에서 44세 나이로 숨졌다. 소원대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 산꼭대기에 묻혔다. 인간은 모두가 여행객인지도 모른다. 묘비에는 본인이 쓴 멋진 시구가 새겨져 있다.


“별이 뜬 광대한 하늘 아래/ 무덤을 파서 나를 편안히 놓아두오/ 나는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었네/그리고 나 스스로 여기 누웠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재형 옮김, 뮤진트리, 2020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이종인 옮김, 현대문학,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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