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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08. 2023

<11> 시타르 연주와 요가로 마음에
안식을 얻다

-비틀스 조지 해리슨의 인도 음악 여행

“사원들과 향, 그리고 음악. 그 모든 것은 특권이 주어진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최고의 음악가였습니다. 굳이 보석과 같은 음악을 찾으러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체로 몇 년의 시간을 절약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비틀스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1943~2001)은 1966년 9월, 휴식과 충전을 위해 인도 여행길에 올랐다. 


불과 23세 나이에 충전이라니… 하지만 당시 그는 몹시 지쳐있었다. 마음의 안식, 삶의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않고서는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이었다.


조지 해리슨, 존 레논, 폴 메카트니, 빙고 스타가 1960년 결성한 4인조 록밴드 비틀스는 60년대 초중반 전 세계 음악계를 평정했다.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음악 신동들이 단숨에 지구촌 슈퍼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음반을 낼 때마다 수 천만 장씩 팔려나갔으며, 각국 순회공연에는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인기가 오를수록 멤버들의 고통이 커지는 것은 왜일까? 그들은 명예와 부를 얻는 대신 꼼짝없이 갇혀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혈기왕성한 20세 전후 청년들이 극성팬들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할 수가 없으니 호텔 방에서 마리화나나 피우면서 뒹굴며 지내야 했다. 불과 17세에 형들과 이런 생활을 시작한 막내 해리슨에겐 고통이 더 컸다. 


거기다 해리슨에겐 또 다른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비틀스에서 기타리스트로 출발했지만 작곡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다. 하지만 초등학교 선배인 레논과 중학교 선배인 메카트니의 견제가 심했다. 둘은 애당초 작곡은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며 해리슨이 작곡을 해가면 무시하기 일쑤였다. 말다툼과 실랑이가 자주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다. 미국 순회공연을 앞두고 레논이 영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비틀스는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비틀스에 대한 비방 데모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영국 뮤지션을 견제하려는 미국 언론들의 악의적인 보도로 비틀스에 대한 증오 여론은 갈수록 확산됐다. 레논이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 취소와 함께 사과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멤버들에 대한 살해 위협까지 이어지자 비틀스는 1966년 8월 샌프란시스코를 마지막으로 공연 중단을 선언했다.


해리슨의 인도 여행은 공연 중단으로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오랜 염원에서 마련됐다. 그는 1년 전 비틀스 멤버들과 함께 영화 촬영 차 바하마 군도의 파라다이스 섬을 방문했었다. 이때 어떤 인도 출신 수도자로부터 자신이 쓴 요가 책을 선물 받았으며, 얼마 후에는 인도 전통 현악기 시타르를 만났다. 그의 정신세계가 점차 인도로 끌리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시타르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해리슨은 인도 음악의 거장이자 시타르 연주가인 라비 샹카르를 소개받았다. 인도 여행은 라비의 초대로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리슨은 라비의 권유에 따라 인도 복장으로 변장을 하고 콧수염까지 길러 아내 패티 보이드와 함께 인도 땅 봄베이로 들어갔다. 눈속임으로 비틀스 팬들의 극성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여행의 목표는 요가와 명상, 그리고 인도음악과 인도철학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해리슨은 자신의 호텔 룸과 라비의 임시 거처 아파트를 오가며 그에게서 시타르 연주법을 배웠다. 요가로 지친 몸을 풀어가며 집중적인 강습을 받았다.


이어 히말라야 설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인도 북부 카슈미르로 옮겨갔다. 터 잡은 곳은 카슈미르의 중심 도시 스리나가르. 젤룸 강이 도시의 중앙을 흐르고 도처에 호수와 운하, 수로가 있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이다. 그는 달(Dal) 호수에서 선상가옥을 빌려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이른 아침 눈 덮인 히말라야 산세와 호수에 비친 일출 태양이 잠을 깨운다. 상쾌한 공기를 실컷 들이마시고는 선상가옥 주인이 갖다 주는 따뜻한 차와 비스킷으로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는 명상을 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30분 정도 무념무상에 빠지면 그보다 더 좋은 힐링이 없다. 이때만큼은 팬들의 무자비한 공격도, 동료 멤버들과의 갈등도 모두 잊게 된다.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요가도 일과처럼 매일 했다. 라비를 통해 요가 관련 서적을 구해 탐독했다. 당시 요가는 서방세계에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해리슨은 그 본향에서 진수를 배우고 싶었다. 남들은 유행처럼 잠시 하다 그만둘지 모르지만 자신은 평생 하리라 다짐한다.


라비에 의한 시타르 강습도 거르지 않았다. 전공인 기타보다 연주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만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 같아 더없이 좋다. 오후에는 시내의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유적지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세공품과 피혁제품, 목공예품이 즐비한 전통시장을 쇼핑하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해리슨은 인도에서 6주간 머물렀다. 봄베이와 카슈미르를 거쳐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지역과 갠지스강이 흐르는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 일대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라비와 함께 한 인도여행은 해리슨을 신에게 인도했다. 이제 그에게 명예와 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의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두에 소개한 글은 인도여행을 마친 해리슨의 소감이다. 저 멀리 동양 땅에서 정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적으로도 한층 성숙했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이후 그는 인도를 내 집 드나들 듯 여행했다. 갠지스강도 즐겨 찾았다. 초월명상을 배우고, 인도철학을 깊숙이 공부했다.


비틀스가 결성된 지 꼭 10년 만에 해체된 1970년 이후에도 해리슨은 솔로 뮤지션으로 왕성하게 활약했다.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건강했다. 이미 초월적 깨달음을 경험했기에 소신을 갖고 문제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초대형 자선공연을 개최하는 등 나눔에도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생은 길지 않았다. 후두암에 걸려 58세 때인 2001년 세상을 떠났다. 해리슨은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평온을 유지해 성자 같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유언에 따라 유골은 화장한 뒤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인도가 그에게 영원한 안식처가 된 셈이다. 


그 출발은 23세 때의 꿈같은 인도여행이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조지 해리슨> 고영탁, 오픈하우스, 2011

<비틀스> 비틀스, 강동구 강은진 고영탁 옮김, 오픈하우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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