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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18. 2023

<13> 여류 작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3국 치유 여행

“기분을 바꿔주는 약물을 끊었고, 새로운 언어를 배웠고, 인도에서 몇 차례 잊지 못할 순간을 통해 신의 손바닥에 앉아 보고, 인도네시아 주술사 밑에서 공부하고, 절실하게 집이 필요했던 가족에게 집을 사 주었다. 나는 행복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혀있다. 그리고 이 작은 열대 섬을 향해 내 연인인 브라질 남자와 함께 가는 중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1969~ )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미국의 여류 작가다. 특히 2006년 출간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1200만 부나 팔렸다.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를 잇따라 여행하고 쓴 자전적 에세이다. 


34세, 여행을 떠날 당시 길버트는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코네티컷 주 농장주의 딸로 태어나 뉴욕대를 졸업한 그녀는 첫 소설 ‘순례자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두 번째 소설 ‘스턴맨’도 성공해 어렵잖게 고액연봉 프리랜서로 자리 잡았다. 수시로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렵, 남편과의 파경으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했다. 이혼으로 전 재산을 잃어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자녀도 없었기에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육체적 건강도 엉망이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피폐해진 심신의 근본적 치유를 위해서는 일단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와 인도, 인도네시아를 대략 4개월씩 1년간 여행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익히며 휴식을 취하고, 인도에선 기도생활을 하고, 인도네시아에선 저명 주술사의 가르침은 받는다는 것. 


길버트는 에세이에서 첫 여행지 이탈리아로 떠날 때의 건강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제대로 일상을 영위하지 못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와 수면제를 달고 살았고, 유기견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 관절염, 근육통, 소화불량으로 늘 통증에 시달렸다. 삶의 모든 것이 날 불안하게 했고, 그 때문에 손이 덜덜 떨렸다. 맨해튼 바우어리 지역의 노숙자들처럼.”


이탈리아에서 그녀는 로마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볼로냐,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지를 열심히 오갔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로마에 도착하지 마자 어학원에 등록했으며, 현지에서 사귄 사람들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피자를 개발해 세상 널리 전파했다는 나폴리. 그곳 맛집에서 접한 피자를 그녀는 이렇게 묘사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폭신하고, 단단하고, 쫀득하고, 맛있고, 쫄깃쫄깃하고, 짭싸름한 천상의 피자였다. 그 위에는 신선한 버펄로 모차렐라와 만나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며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달큼한 토마토소스가 있었다. 피자 한가운데는 바질 이파리 하나가 놓여 있는데 이것이 묘하게 피자 전체에 허브의 향취를 불어넣었다…”


식욕이 얼마나 왕성했던지 4개월간의 이탈리아 여행이 끝나갈 무렵 길버트의 몸무게는 12킬로그램이나 불었다. 이혼과 우울증으로 식욕을 잃는 바람에 해골처럼 말랐던 몸이 건강하게 회복된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여행을 이렇게 결산했다.


“이제 내 존재는 넉 달 전보다 더 커졌다. 여기 왔을 때보다 눈에 띄게 부푼 몸집으로 이탈리아를 떠날 것이다. 한 개인의 팽창은 인생의 확대요, 이는 실로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는 희망을 안은 채. 설사 이번만큼은 공교롭게도 그 인생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일지라도.”


두 번째 여행지 인도에 도착한 길버트는 곧바로 깊은 산속의 아쉬람(힌두교 현자들이 제자와 구도자들을 불러 모아 가르치는 곳)에 들어갔다. 해가 바뀌는 한겨울이었다. 동서양 각국의 젊은이들이 수양을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길버트는 새벽 3시에 시작해 밤 9시에 끝나는 강행군 일과를 수행했다. 일과의 대부분은 명상과 요가, 기도였다. 명상동굴 생활은 마음이 편안해서 더없이 좋았단다. 


그녀가 찾는 것은 신이었다. 그러나 종교와 신은 이성의 영역이라기보다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영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쉬람 생활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겨우 신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풀밭이 펼쳐진 숲 속에서였다. 에세이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느끼는 이 사랑, 그것은 아주 순수한 사랑이다. 신의 사랑이다. 어두워진 골짜기를 둘러보니 보이는 건 오로지 신뿐이다. 마음 깊이, 몸서리치게 행복했다.”


세 번째 여행지 인도네시아에선 발리에 주로 머물면서 어느 주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가 하면, 그곳 젊은이들을 두루 사귀었다. 두 번째 남편이 될 브라질 남자를 만난 것이 최고의 소득이다. 새로운 사랑을 찾은 것이다. 서두에 소개한 글은 길버트가 에세이에서 3국 여행의 결실을 정리한 것이다.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한 브라질 남자와 함께 길리메노란 외딴섬을 향해 여행하며 느낀 소회다.


길버트는 3국 여행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일종의 치유 여행기라 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인생 절정기를 맞게 된다. 그 후에 쓴 작품 ‘모든 것의 이름으로’ ‘빅 매직’ ‘시티 오브 걸스’ ‘결혼해도 괜찮아’ 등도 그녀의 명성을 드높였다.


길버트는 원래 여행 마니아였다. 어릴 적부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곳을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불과 16세 때 베이비시터로 번 돈을 모아 러시아를 여행했다. 20대 때는 미국 전역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녀에게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여행은 갖가지 질문에서 시작해 그 답변을 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난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가? 내게 삶의 진로를 바꿀 자격이 있는가? 나는 누구와 함께 그 진로를 개척하고 싶은가? 나는 즐거움과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날 즐겁고 평화롭게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 살면서 시련이 왜 없겠는가? 고난고통은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회복탄력성이 부족해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 혼자 일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배낭 하나 둘러매고 여행길에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길버트처럼 해외여행이 아니라도 물론 좋다. 그녀처럼 오랫동안 해외로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발 닿는 곳으로 떠나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노진선 옮김, 민음사, 2017

<결혼해도 괜찮아> 엘리자베스 길버트, 노진선 옮김, 솟을북,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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