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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ug 06. 2023

<14> 꼴찌 열등생이어도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윈스턴 처칠(영국의 전 총리)의 좌우명



저명한 공작 집안의 후손,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총독 역임, 아버지는 하원의장과 재무장관, 어머니는 미국 금융사업가의 딸로 사교계의 별. 


집안 배경이 더할 수 없이 좋은 소년이건만 학교에선 꼴찌 근처 학업 열등생이었다. 12세가 되어 ‘해로우 스쿨’ 입학시험을 치렀다. 라틴어 시험지를 받아 들었지만 단 한 문제도 풀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배경이 작용한 듯 합격이었다. 열등반에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이 “처칠 경의 아들은 왜 만날 꼴찌야?"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국 총리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어릴  적 이야기다. 그는 라틴어와 수학을 아주 싫어했다. 영어와 역사 과목을 빼곤 다 싫었기에 전체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부모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길 기대했으나 일찌감치 접고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권했다. 


육군사관학교 입시라고 쉬울 리 없다. 필수 과목인 라틴어와 수학, 영어에다 선택 과목으로 프랑스어와 화학을 택했지만 영어 빼고는 다 어려웠다. 첫해에 보기 좋게 떨어지고, 또 한 번 응시했으나 역시 낙방이었다. 인생길에 빨간 불이 켜지는 듯했다. 가족친지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처칠은 의지의 사나이였다. 삶이 아무리 험난하고 고통스러워도 무릎 꿇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은 확고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이즈음에 정한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해로우 스쿨에서 나온 처칠은 입시준비 학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족집게 학원의 도움으로 그는 삼수 끝에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보병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기병을 택하는 바람에 아버지를 실망시켰지만 처칠에게는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그 이후 처칠은 ‘포기하지 말라’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도, 승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각종 선거에서도,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며 국민들을 격려하면서도, 총리 신분으로 모교 졸업식에서 축사할 때도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학업 열등생 처칠은 포기하지 않고 전진, 또 전진하는 인생을 산 결과 크게 성공했다. 초급장교 시절 아프리카에서 전쟁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하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손쉽게 정치에 입문했다.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하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처칠에게 ‘포기하지 않음’은 용기를 뜻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성공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실패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할 수 있는 용기이다.”


살다 보면 고난고통을 만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처칠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런 위인이 낙제생이었다니, 또 육군사관학교를 삼수나 해서 겨우 합격했다니…. 누구나 조금 쉬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다. 초조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다시 시작할 일이다. 


미국 흑인 작곡가 듀크 엘링턴의 말은 울림이 커서 좋다. 


“인생에는 단 두 가 법칙만 존재한다. 첫째, 절대 포기하지 말라. 둘째, 첫 번째 법칙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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