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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09. 2023

<46> 속도보다 방향이다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아우구스투스(로마의 초대 황제)의 좌우명


초보 뱃사공은 무작정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젓는다. 금방 지쳐버리기 일쑤다. 반대로 경험이 많거나 지혜로운 뱃사공은 물과 바람의 흐름을 먼저 살핀다. 좋은 때를 기다렸다가 큰 힘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전진한다.


지긋지긋한 내전을 종식하고 200년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연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63~AD14)는 무척 지혜로운 뱃사공이라 해야겠다. 합리적인 방향 설정과 여유, 속도조절을 통해 절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인생 좌우명 ‘천천히 서둘러라 (Festina lente)’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는 집무실에 줄곧 이 문구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천천히’와 ‘서두르다’란 단어가 서로 모순되는 조합이지만 멋진 인생 지혜하고 해야겠다. 


아우구스투스는 갑자기 피살된 양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서 후계자 상속을 받았지만 백전노장 안토니우스의 강력한 도전을 받는다. 19세 어린 나이라 정치인맥이나 군사능력이 미약했기에 안토니우스와 맞붙으면 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권력을 곧바로 인수받는 대신 기다리고 우회하는 전략을 세운다.


 누이를 안토니우스에게 시집보내 화해를 꾀하는가 하면, 안토니우스가 포함된 제2차 삼두정치를 시작했다. 힘을 기를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점령지 이집트에서 그곳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다. 급기야 그녀와 그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듯한 언행을 일삼는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가 로마를 배신했다는 식으로 여론전을 전개한다. 로마 권력자들이 그와 절연하도록 만드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 결국 젊은 명장 아그리파를 내세운 아우구스투스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제정시대가 개막되는 순간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을 보면, 그가 양아버지 카이사르를 반면교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는 황제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획득했지만 각종 개혁정책을 너무 빠르게 추진한 탓에 원로원 귀족세력의 미움을 샀고, 결국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매사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지만 심모원려 하는 지혜를 겸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봐야겠다.


‘천천히 서둘러라’란 표현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다급한 일이 생겨 서두르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방향이 맞지 않다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급할수록 전후 좌우 살피면서 차분하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청소년들도 곱씹어 볼만한 말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아무 소리 말고 부지런히 공부만 해둬라.”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만 올려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이다. 바람직한 교육법이 아닐뿐더러 자녀한테 가혹한 일이다. 직진 신작로를 놔두고 자갈길로 돌아가는 것을 방치하는 부모의 횡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데 목표 설정은 무조건 중요하다. 종착할 항구가 있는 배라야 바람의 도움을 적절히 받을 수 있다. 바람의 도움을 받더라도 원하지도 않은 항구에 들어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쁘더라도 출발하기 전에 차분히 항로를 점검해 봐야 한다.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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