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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08. 2023

<45> 한가할 땐 무조건 책을 펴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뿐이다

-이덕무(조선 후기 실학자)의 좌우명



조선시대 최고 책벌레는 누구일까? 세종대왕, 김시습, 이황. 이이, 류성룡, 정약용…. 책벌레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벼슬 높낮이나 지명도를 무시하면 단연 실학자 이덕무(1741~1793) 아닐까 싶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뿐이다’가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이덕무는 서자였다. 무척 가난하기도 했다. 대여섯 살 어린 나이에 글을 익혔으나 돈이 없어 책을 살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빌려와 읽고는 베끼는 게 그의 평생 독서법이다. 서자라 과거시험 볼 자격조차 없었지만 그의 책 사랑은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으며, 평생 2만 권 이상 읽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불렀으니, 책만 읽는 바보란 뜻이겠다.


성장기 그의 집은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초가였다. 다행히 사방에 작은 문이 있어 해의 이동에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책을 읽었다. 벽에 선을 그어 햇빛 드는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기도 했다. 한겨울 밤이 제일 힘들었다. 찬바람이 들이쳐 호롱불이 흔들리면 논어 등 장서를 세워 바람을 막아야 했다.


그에게 독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처절한 생존법이었다. 책이 있기에, 독서를 하기에 고단한 나날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근심걱정, 배고픔, 질병을 이겨나가는데 그나마 독서가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독서는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일찍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과 함께 낸 ‘사가시집(四家詩集)’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는 청나라에까지 알려졌다. 37세 때는 청나라 사신단에 끼어 그곳 문인, 석학들과 교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이 소문이 정조 임금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벼슬길에 올랐다.


정조는 왕실 학문연구기관이자 중앙도서관 격인 규장각을 만들면서 이덕무를 유득공, 박제가, 서이수 등과 함께 초대 검서관으로 등용했다. 학술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경연을 기록하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니 조선 제일 독서광에게 얼마나 좋은 일자리인가?  


이덕무는 책만 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토록 책을 많이 읽었기에 비록 서자 출신이지만 경서와 시문에 관한 한 당대에 벌써 인정을 받았다. 읽고 쓰는 일을 워낙 좋아했기에 그 자신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덕분에 서자의 아들, 손자들도 인정받고 살았다.


이덕무의 좌우명을 곱씹어 본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로지 책을 읽을 뿐이란다. 독서가 그저 재미있고 다른 무슨 일보다 행복한 사람에겐 당연히 좋은 말이다. 이와 달리 독서에 별 취미가 없는 사람에겐 잘 와닿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독서 대신 운동하러 나갈 수도 있고, 편하게 두어 시간 낮잠에 빠져들 수도 있고, TV로 야구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닐 정도로 한가할 때는 책 펴는 것을 습관화하면 어떨까? 독서는 세상살이에 무조건 도움이 된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는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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