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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27. 2024

<91>무심(無心)

조훈현(바둑 기사)의 인생 좌우명


이기려는 마음조차 비웠다는 반상의 승부사 


 

1990년 2월 2일, 37세 스승과 15세 제자가 마주 앉았다. 바둑 최고위전 타이틀이 걸린 절체절명의 한판. 두 기사는 무표정에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끝나는 순간까지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초박빙 대국. 결국 어린 제자가 반집 차로 이기고 만다.


한국 바둑계를 평정하고 10년 이상 최정상을 지켜온 조훈현(1953~ )이 내제자 이창호에게 처음 무릎을 꿇는 순간,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바둑에서 내제자란 집에 데리고 살면서 가르치는 소년 기사를 말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으니 뿌듯한 느낌도 조금 있었겠지만 강한 수치심을 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마흔도 되기 전에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도 엄습했을 것이다.


실제로 조훈현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창호, 유창혁 등 새카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몰아치기 시작한 세대교체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세계 바둑계 전관왕을 차지하고, 세계 최고 바둑 국제기전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한 바둑 황제가 패배의 늪에 빠져 끝없는 추락을 경험해야 했다. 1995년 유일하게 갖고 있던 대왕 타이틀마저 이창호에게 빼앗김으로써 무관의 제왕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와신상담 끝에 재기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보통 제자가 정상에 오르면 스승은 점차 빛을 잃고 사라진다. 당시 바둑 팬들은 조훈현도 서서히 은퇴의 길을 밟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담배를 끊는 등 건강을 챙기면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바둑을 선보인다. 전성기 때는 주로 가벼운 행마를 선택했다면 재기를 전후해서는 강한 화력을 주 무기로 삼았다. 때문에 그의 별명도 ‘제비’에서 ‘전신(戰神)’으로 바뀌었다. 2002년 드디어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안게 된다. 이후 약 10년 동안 꾸준히 체면을 지켰다. 


그의 재기에는 정신적, 심리적 각성이 크게 작용했다. 인생 좌우명인 ‘무심(無心)’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나 할까. 복잡하게 사심을 가지면 아직 순수성을 지닌 젊은 기사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화려한 타이틀 모두 빼앗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큰 욕심부릴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가 무관의 제왕이 되었을 때 심정을 들어보자.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홀가분하더라. 정상에 오를 때는 정상만 바라보며 올랐고, 오르기만 하다 보니 진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나둘씩 타이틀 빼앗길 때는 불안했지만 더 이상 잃을 게 없게 되었으니 오히려 편안해지더라.” 가진 것 아주 많은 사람이 갑자기 모든 걸 잃어버렸을 때 이런 마음 더러 생기지 않을까 싶다.   


조훈현은 이런 평정의 마음을 재기의 밑거름으로 삼은 듯하다. 못 이긴다고 마냥 속상해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지는데 한 번이라도 이겨보자고 소박하게 마음먹은 게 주효하지 않았을까? ‘무심(無心)’은 사용자나 사용처에 따라 여러 의미를 지닌다. 조훈현의 좌우명 ‘무심’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의 영광은 싹 잊어버리고, 욕심부리지 말고,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이라고 해야겠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재기한 바둑 황제가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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