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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자신을 믿고 소신껏 미래를
개척한 작가

-흑인 혼혈이라 따돌림당했던 ‘바보 멍청이’ 알렉상드르 뒤마

by 물처럼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 역사소설, 모험소설의 대가. 흥미 위주 장르소설의 창시자라 불림.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검은 튤립’이 대표작.



소설 ‘삼총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도 꾸준히 번역 출간되고 있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흥미진진한 이 소설, 아마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문고판이나 만화책으로 많이 접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고전문학 ‘삼총사’는 꿈 많은 청년 다르타냥이 파리로 가는 길에 삼총사를 만나 우정을 키워가는 역사모험 소설이다. 어린이 문고판이 아니라 정본 번역서를 읽어도 무척 재미있다. 청년들이 벌이는 무용담과 정치적 음모, 군사적 충돌, 사랑과 배신, 우정과 복수는 재미와 함께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있는 이유다. 나는 ‘삼총사’에 나오는 이 대사를 좋아한다.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All for one, One for all)”


뒤마의 또 다른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또 어떤가. 19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며, 구성이 탄탄하고 화려하다. 사랑과 배신, 누명, 고통, 반전, 부활, 복수로 이어지는 플롯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지금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진지함이 결여된 작가라는 이유로 주류 문학사에서는 오랫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문학계 특유의 시기질투심이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아프리카 노예 출신 할머니를 둔 흑인 혼혈인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사후 130년이 지난 2002년, 프랑스 영웅들만 묻혀있는 국립묘지 팡테온에 안장됨으로써 공식 인정받게 되었다.


레 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던 위대한 소설가 뒤마.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초라하고 암담했다. 프랑스 북부 빌레르 코트레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불과 4세 때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극심한 가난에 휩싸였다. 9세 때 어머니가 돈이 들지 않는 신학교에 보내려 하자 “신부가 되면 여자 애들과 놀지 못한다”는 동네 친구들의 말을 듣고 가출을 결행했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집 주변 일반 학교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수학과 글쓰기에 흥미와 재능이 없는 혼혈아는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며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했다. 글쓰기에 조금 진전을 보이자 어머니는 아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원래 바보 멍청이들이 글씨 하나는 잘 쓰지.”


이런 아이에게 무슨 대단한 미래가 보였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남달리 독서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말에 주눅 들지 않고 언행을 당당하게 펼치는 용기가 있었다. 그는 글을 깨치자마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성경과 각종 신화, ‘로빈슨 크루소’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고 큰 감명을 받는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충만하던 청년 뒤마는 생계를 위해 파리로 상경해 오를레앙 공작의 필경사로 취업을 했다. 안정된 직장을 얻자마자 글을 써 잡지에 기고했다.


가난한 뒤마는 27세 때인 1829년, 당시 프랑스 최고 은행가 라피트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라피트가 “아무 가진 것 없는 당신에게 무얼 믿고 돈을 빌려주느냐”라고 내치려 하자 아직 발표하지 않은 희곡 원고 ‘앙리 3세와 그의 궁정’을 담보로 내놓았다. 이런 자신감, 자부심을 보고 라피트는 미련 없이 큰돈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뒤마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소신이었다. 자신이 제도권 학교에선 인정받지 못했지만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외부에 곧장 발표했다. 내용이 통속적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재미있는 게 최고’라며 당당하게 맞섰다.


혼혈은 그에게 평생 큰 짐이었다. 검은 피부에다 곱슬머리여서 끊임없이 인종차별을 당해야 했고, 모욕과 놀림은 일상이었다. 20대에 이미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했다. 작가 사인회를 열지 못해 뒤마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굴하지 않고 작품으로 저항했다. “내 아버지는 물라토요, 조부는 깜둥이였으며, 증조부는 원숭이였소. 알겠소 선생? 우리 집안은 당신네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했단 말이오.” 그의 단편소설 ‘조르쥬’에 나오는 명대사다.


어차피 주류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바에야 거침없이, 소신껏 살자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근엄한 작가들이 흉내내기 힘든 흥미 위주 소설 쓰기에 더욱 주력한 결과 어느덧 대문호가 되었다.


“나는 항상 나를 믿는다” 그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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