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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만유인력 발견은 그것을
곰곰이 생각한 결과다

-천재는 중학교 시절 학업 열등생 외톨이였다/ 아이작 뉴턴

by 물처럼

*아이작 뉴턴(1642~1727)= 영국의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땅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등 저술.



인류를 대표하는 천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이런 평가를 받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불세출의 실험과학자인 동시에 최고의 이론과학자였으며, 수학 영역에서도 탁월했다. 역사상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두 물체 사이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의 곱에 정비례하는 인력이 존재한다.”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이 명제, 즉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하는 장면에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로 등극했다. 45세 때의 일이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전혀 비범하지 않았다. 학업에 별 관심이 없었고, 사교성이 많이 부족했다. 불행했던 유년기 가족사 때문일까? 그는 영국 동부 울스소프 마을에서 제법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죽고 없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겨우 생명을 유지한 뉴턴은 3세 때 어머니가 재혼해 집을 떠나는 바람에 외갓집에 남겨졌다. 정서적 충격 때문인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를 깎아 장난감을 만들며 놀았다. 유년 시절 친구들에게 그는 ‘침착하고 말이 없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비쳤다.


11세 때 어머니가 남편의 사망으로 외갓집에 돌아오고, 뉴턴은 때맞추어 반나절 거리의 도시 그랜섬으로 가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열등생 꼬리표를 달고 지냈다. 생활기록부에는 ‘게으르고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었다. 어머니는 애당초 아들을 농장 관리인으로 키우고 싶었기에 이 참에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 일을 돕게 했다.


농장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뉴턴은 2년 뒤 그랜섬 중학교에 복학했고, 1년 뒤에는 삼촌의 도움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했다. 18세가 된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특별한 재능은 드러나지 않았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뭔지도 몰랐으며, 16세 때 원뿔곡선 논문을 쓴 파스칼의 천재성에 비하면 크게 뒤떨어지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학부 2년간 천문학, 수학, 광학 등을 공부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뉴턴은 런던 시내 흑사병 유행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어머니 농장으로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2년 가까이 지내면서 각종 과학 실험에 몰두했다. 떨어지는 사과를 관찰하다 달도 사과처럼 지구를 향해 낙하하는 물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낙하 현상을 일으키는 힘을 설명하는 수학적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미국 역사학자 윌리엄 랭어가 엮은 책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2004)를 보면 뉴턴의 천재성은 이 무렵 폭발적으로 피어났다.


“학부 2년을 마쳤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17세기 과학 지식 대부분이 입력되어 있었다. 그 지식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그 상태로 한동안 파묻혀 있었다. 1666년(24세) 말 그는 미적분학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수학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였다. 또 빛과 색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진리도 발견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탁월한 실험 연구 중 하나였다.”


뉴턴은 25세 때 트리니지 칼리지의 펠로우로 임명되었으며, 2년 후에는 루카스 석좌 수학 교수가 되었다. 연구는 끝없이 이어졌다. 이른바 운동의 3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천재의 과학 연구는 정점을 찍게 된다.


학업 열등생이던 뉴턴을 위대한 인물로 만든 요인은 뭘까? 태생적으로 그는 두뇌가 뛰어난 사람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 가정환경이 온전하지 못해 재능이 뒤늦게 나타났을 뿐이라고 해야겠다. 그에게는 남달리 몰입하는 습관, 누구보다 집중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일상에서 외톨이가 되고 왕따 취급을 받곤 했지만 학문 연구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느냐”라는 질문에 “언제나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했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의 몰입적 사고는 자기가 생각한 문제가 풀릴 때까지 수개월, 심지어 수년 동안 계속되었다. “뉴턴은 한 가지 문제를 붙잡으면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어버렸다. 접시째 내버려 둔 음식 때문에 그의 고양이는 나날이 뚱뚱해졌고, 밤잠을 설치고도 뉴턴 자신은 밤을 새웠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몰입’, 황농문, 알에이치코리아, 2012)


어릴 적에도 이런 습성이 있었다. 그랜섬 중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 농장 일을 도울 때의 일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들판에 매어 놓은 말을 끌고 오라고 시켰다. 아이는 말의 고삐를 끌며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말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고, 뉴턴은 “여기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말고삐만 있을 뿐 말은 없었다.


이 정도라면 꽤 심각한 질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뉴턴에겐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몰입의 표현이었기에 성공의 길잡이가 되었다. 뭔가 연구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에게 깊이 몰입하는 습관은 중요한 게 사실이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은 성공과 행복은 몰입의 깊이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Work hard에서 Think hard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2배 이상 잘하기도 힘들지만 열심히 생각하면 남보다 10배, 100배, 1000배까지도 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열심히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송두리째 던져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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