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 숨이 멈출 정도로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

-외우는 공부를 못해 바보 취급받던 아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by 물처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독일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상대성이론과 빛양자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1933년 미국으로 이주해 프린스턴 대학 교수 역임.



아인슈타인은 천재의 상징이다. 놀라운 지적 성취와 독보적인 창의성은 그의 이름을 천재와 동의어로 만들었다. 특이한 얼굴 표정과 주름, 눈빛, 헤어스타일까지 천재를 연상시킨다. 죽은 뒤 벌어진 뇌 탈취 사건이 이런 이미지를 더 키웠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76세 때인 1955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병원에서 복부 대동맥류로 사망했다. 생전에 그는 화장되길 원했으나 부검을 담당한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가 유족 허락도 없이 뇌를 적출해 가져갔고, 이후 그것을 240조각으로 나누어 보관했다. 천재의 뇌는 특별했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의 뇌 무게는 1230그램으로, 성인 남성 평균(1400그램) 보다 오히려 가벼웠다. 대신 계산 및 공간지각 능력을 관장하는 양쪽 두정엽은 평균보다 15% 정도 무거운 것으로 드러났다. 뇌 표면의 회백질에 주름이 특이하게 많았다는 보고도 있다.


뇌의 무게나 크기에 상관없이 그가 천재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26세 때인 1905년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4편의 논문을 한 해에 몰아서 발표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남는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을 담은 논문은 인류사에 대혁명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질량-에너지 등가법칙에 관한 논문도 기적에 가까운 연구 성과다.


하지만 유아기와 소년기의 아인슈타인은 천재와 거리가 먼 아이였다. 오히려 바보에 가까웠다.


1879년 독일 울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3세가 되어도 말을 할 줄 몰라 ‘미련한 곰 영감’ ‘느림보 대장’이라 불렸다. 9세가 되어서도 말이 어눌하고 지나치게 느려 부모는 저능아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아인슈타인은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뮌헨으로 이주해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그곳은 끔찍했다. 외우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고, 운동에도 관심이 없어 왕따 당하기 일쑤였다. 11세 때 김나지움(9년제 중고교 과정)에 입학했으나 그곳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수학과 문학은 재미가 있고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역사와 언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게으름을 피웠고, 이 때문에 교사들로부터 자주 꾸중을 들어야 했다. 교사들은 학업 분위기를 해진다는 이유로 퇴학시키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15세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망하면서 가족들이 이탈리아 밀라노로 옮겨갔지만 집이 좁아 아인슈타인은 독일에 혼자 남았다. 학교에서의 따돌림이 더 심해지자 미련 없이 밀라노로 가버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술자가 되라고 설득한 까닭에 그는 김나지움 졸업장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기술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수학은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현대언어, 동물학, 식물학 등 대부분의 과목은 평균 이하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스위스 주립학교가 공인하는 대학수학능력 인증서를 받고서야 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싫어하고 학생들이 교제하길 꺼리는 괴짜 청년이었다. 관심 있는 물리학과 수학에만 매달릴 뿐 다른 과목은 외면했으며, 이를 지적하는 교수들에게 정면으로 대들곤 했다. 물리학과 수학 교사 과정을 준비한 끝에 간신히 졸업은 했으나 지도교수가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아무 데도 취업하지 못하고 상당기간 아르바이트 신세를 져야 했다.


이런 골칫덩어리 청년이 어떻게 위대한 물리학자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싹수가 있었다. 특정한 분야에 놀랍도록 집중하고 몰입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시기에 벌써 기하학의 신이라 불리는 유클리드를 알게 되었으며, 방황하던 성장기에도 물리학 분야는 언제나 최고의 관심사였다. 아인슈타인은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밀라노에 머물 무렵 ‘대중을 위한 자연과학’이란 제목의 21권짜리 방대한 책을 독파했다. 그는 “숨이 멈출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에서도 이론물리학만큼은 특별한 재미가 있어 거의 모든 수업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취업이 안돼 힘들게 지내던 아인슈타인에게 23세가 되던 해 좋은 일이 연이어 생겼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덕분에 베른의 특허청에 취직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세계 최고의 물리학 잡지인 ‘물리학 연보’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물리학과 수학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3년 뒤 이 ‘물리학 연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시공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요인으로 결정된다” 이른바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바보가 천재로 대변신한 순간이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집 주소와 전화번호도 모르고 살았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 묻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돈이나 옷차림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기한테 흥미가 없는 분야에는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반대로 흥미가 있는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고 몰입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이다.


“나는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99번이나 틀리더라도 100번째가 되면 반드시 정답을 얻어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9> 만유인력 발견은 그것을 곰곰이 생각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