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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줄기세포 한 우물만 판 끝에
노벨상을 받다

-전교 250명 중 과학 성적이 꼴찌 수준이던 중학생 , 존 거든

by 물처럼

*존 거든(1933~ )= 영국의 생물학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 공로로 일본 야마나카 신야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개구리를 올챙이로 만들 수는 없을까?


195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적을 둔 25세 청년 생물학자 존 거든은 아주 엉뚱한 동물실험을 시작했다. 이른바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가 그것이다. 그의 기이한 상상은 4년 간의 집중적인 연구 끝에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거든은 개구리의 난자 세포에서 유전 정보를 지닌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올챙이 창자 세포의 핵을 바꾸어 넣었다. 핵이 바뀐 개구리 난자 세포는 특화된 창자 세포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온전한 성체 개구리로 발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성숙이 끝난 세포가 어떤 세포로도 분화 가능한 미성숙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줄기세포 연구의 첫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동물 세포학의 기존 견해를 뒤집는 획기적인 것이다. 1996년 복제양 돌리 탄생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으며, 이후 체세포 복제기술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 의학자 야마나카 신야는 거든의 이 역분화 연구를 기반으로 체세포로부터 유도만능줄기세포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는 난치병 및 맞춤형 치료, 재생의학 및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었다.


거든은 역분화 실험에 성공한 지 50년이 지난 2012년 야마나카 신야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위원회는 “두 사람이 과학을 혁신했다”라고 평가했다. 세계 과학계로부터 특별한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은 거든,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위대한 생물학자가 될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게 된 그는 기자회견에서 중학교(이튼 스쿨) 시절 생물 교사가 작성했던 자기 성적부 이야기를 꺼냈다.


“이 학생은 제멋대로다. 교사의 말대로 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한다. 내가 듣기로 이 학생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생물 과목의 간단한 암기 사항조차 소화하지 못하니 과학자가 될 가망은 없다. 이 학생이나 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 모두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15세 때의 슬프고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실제로 그의 중학교 시절 생물 성적은 250명 중 바닥권이었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을 했지만 과학을 전공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해 처음에는 고전학을 전공했다가 마침 동물학과에 빈자리가 생겨 그쪽으로 잽싸게 옮겼다. 거든은 문제의 성적부를 받고 치욕을 느낀 듯하다. 79세 노학자는 기자회견에서 “그 성적부를 저는 오랜 기간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나의 야망이 교사의 말처럼 시간 낭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거든은 동식물, 그중에서도 곤충을 무척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정원이나 들판에서 각종 곤충을 채집하고 관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생명체의 구조와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리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때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학교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과학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생물 교사한테 치욕적인 평가를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대학생 거든은 전혀 딴 모습이었다. 옥스퍼드 동물학과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동물의 생명체 분화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나는 생명체가 어떻게 분화하는지 온통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쪽으로 한 우물만 팠습니다.” 그곳에서 개구리 핵이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거든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가 되어 평생 체세포 복제 연구에 몰두했다.


거든의 중학교 성적부 이야기는 이 시대 교사와 부모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나머지 어릴 적 학업 성적만으로 진로를 잘못 안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아이의 가능성을 어른의 시각에서 함부로 재단해선 안 된다.


하고 싶은 공부나 일을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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