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Sep 25. 2021

<6> 책, 평생 읽어야 한다

고전은 인생살이 상담해주는 최고의 친구. 사색과 토론 함께 하면 좋아

 “사람이 도리를 드러내는 데에는 이치를 헤아리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고, 이치를 헤아리는 데에는 독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왜 그러한가. 옛 성현들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거나 경계해야 할 선과 악이 모두 책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



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조 최고의 사상가이자 경세가다. 그리고 참 교육을 실천한 걸출한 스승이다. 평생 정치에 몸담았지만 능력과 인품이 워낙 훌륭해 반대파로부터 욕을 거의 먹지 않은 특이한 선비였다.


그 이유는 뭘까. 공부를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율곡은 42세 되던 해에 초학자들을 위한 공부 지침서 ‘격몽요결’을 편찬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황해도 해주에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자기처럼 열심히,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선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즈음 온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위에 소개된 말은 전체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네 번째 ‘독서’ 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사람이 도리를 다하며 살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며, 그렇게 하는데 독서가 최고란 이야기다. 율곡은 벼슬을 하기 위한 방책으로 성장기에만 독서를 해선 안 되며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일생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다.


율곡은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태어났다. 세 살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여섯 살부터 어머니 신사임당에게서 경전과 사서를 익혔다. 일곱 살부터 짧은 글을 지었는데, 여덟 살 때 아버지 고향인 임진강변 화석정(경기도 파주)에 올랐다가 지은 시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13세 되던 해에 진사 초시에 급제할 정도로 공부에 두각을 드러낸 율곡은 청소년기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잠시 방황했으나 29세에 문과에 급제할 때까지 크고 작은 시험에 무려 일곱 번이나 장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벼슬길에 나선 율곡은 평생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대사헌과 호조 이조 형조 병조 판서를 잇따라 맡는 등 크게 출세했다. 학문에도 정진해 정치 및 사회 개혁 방안을 담은 ‘동호문답’과 왕도정치 사상서인 ‘성학집요’ 등을 집필했다. 선조 임금에게 경제사 설치 등 국정 개혁을 끊임없이 건의하는 적극적 경세가였다. 우리 역사에서 불세출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그의 이런 행적은 공부를 하되 과거시험 등 오로지 세속적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옳고 바른 삶을 목표로 삼은 결과 아닐까 싶다. 율곡은 격몽요결 서문에 공부(학문)의 필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학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학문이란 이상하고 별다른 물건이나 일이 아니다. (중략) 날마다 사용하고 행동하고 머무는 동안 모든 일이 그 마땅함을 얻는 것이 학문일 따름이다.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심지가 꽉 막히고 식견이 어둡기 때문에 반드시 책을 읽어 이치를 궁리하고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밝게 알아야 비로소 조예(造詣)가 바르게 되고 실천이 중(中)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공부, 특히 독서는 훌륭한 인생을 살려면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힘써서 해야 한다. 격몽요결 독서 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렁뚱땅 책장만 넘길게 아니라 정독하는 것을 중시한 것 같다. 독서하는 방법으로 율곡은 반드시 단정한 자세로 앉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해야 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숙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염두에 두라고까지 했다. “독서할 때는 글의 의미와 뜻을 깊이 터득하고 글 구절마다 반드시 자기가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입으로만 읽을 뿐 마음으로 본받지 않고 몸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을 뿐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율곡이 살았던 그 시절 선비란 기본적으로 글 읽는 사람이었다.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농사를 짓지 않는 한 쉬지 않고 글을 읽었다. 그것이 직업이자 일상이었다. 학자가 아니라도 꾸준히 독서를 해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세종대왕의 말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내가 경서와 사서는 보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제 늙어서 능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도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까닭은 다만 글을 읽는 동안에는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여러 가지로 정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 읽는 것이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단순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독서는 공부의 기본일 뿐 전부는 아니다. 조선조 선비들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강연을 하거나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관직에 있을 때는 경연에 참여했으며, 물러나면 자택이나 고향 서원에 출입하며 토론을 즐겼다. 율곡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해주로 갔다. 그곳 석담에 은거하며 은병정사라는 학교를 짓고 독서를 즐기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저술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가 살다 간 48년은 한 마디로 독서 인생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독서. 율곡이 아니라도 동서고금의 위인, 현인들이 그 특별한 중요성을 수천, 수만 개의 말과 글로 남겼다. 그중에서 나는 로마 철학자이자 시인 키케로의 명언을 가장 좋아한다. “책은 청년에게 음식이 되고 노인에게는 오락이 된다. 부자일 때는 지식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는 위안이 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기쁠 때다 슬플 때나 항상 책을 가까이해야 하며, 가까이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 멋진 표현이다. 그렇다. 독서는 먼저 살다 간 훌륭한 스승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며, 저자와의 창조적 만남을 통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지식과 지혜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해 준다. 책은 나에게 인생살이 상담해주는 최고의 친구라 해서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은 독서와 아예 담쌓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학창 시절이 끝나면 1년에 시 한 편, 에세이 한 권 안 읽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바란다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 중에 독서를 멀리한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어린 시절, 혹은 청년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성공한 사람은 십중팔구 독서광이었다고 보면 된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 한 가지 직업으로 끝까지 살라는 보장 없다. 특히 행복을 생각하면 학창 시절 마무리하며 결정한 진로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어린 시절 공부했던 지식은 한계가 있다. 대부분 짧고 얇다. 나이 들면서 독서에 제대로 취미를 붙이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엄청난 양의 지식과 지혜를 구할 수 있다.


중장년층 제1순위 독서로 나는 고전을 권한다. 학창 시절엔 책벌레가 아닌 이상 고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입시 대비 학업에 매달리느라 그 방대한 고전 읽기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하지만 동서양 고전에는 삶에 유익한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다. 먼저 살다 간 선배 독자들에 의해 검증된 책이라서 그렇다.


길게는 2000년 이상, 짧게는 50년 이상 독자들에게 꾸준히 감동을 준 책이기에 우리 시대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철학서적도 좋고, 문학서적도 좋다. 예술이나 과학서적이면 또 어떤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쳤던 저자들의 작품을 통해 오늘의 나 자신을 성찰하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서양 사람들도 고전은 독서의 필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출발해 각종 역사서를 읽고 저명 문학 작품들을 만난다.  


따지고 보면 율곡 같은 사람에겐 고전이 사실상 독서의 전부였다. 중국의 경전과 역사서, 그리고 시문을 주로 읽으며 살았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봐야 한다.


율곡이 강조하고 실천했듯이 독서할 때는 사색과 토론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토론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면 사색이라도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한 다면 도움이 반감된다. 인간은 질문하는 동물이다. 독서하는 동안 자문자답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격몽요결> 이이,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2003

<율곡 인문학> 한정주, 다산북스, 2017

<율곡 李珥 평전> 한영우, 민음사, 2013

작가의 이전글 <5>자기 자신을믿고 홀로 서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