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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Sep 29. 2021

<8> 세상을 널리 탐험할 때

키를 잡고 두려워하지 말고, 뜻을 위해 젊음을 바쳐라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여행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장려 대상이다. 앞 뒤 꽉 막힌 사람이라면 “일은 안 하고(혹은,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싸돌아 다니느냐”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더 늦기 전에 여행 다니며 세상을 탐구하라고 권할 것이다. 


동서양의 속담은 현명하다. 여행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유흥이 아니라, 보고 경험하고 익히는 인생 공부란 의미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라.”(중국) “자식을 사랑한다면 여행을 보내라.”(일본) “여행하는 자가 승리한다.”(유럽)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1883-1957)는 노년에 쓴 ‘영혼의 자서전’에서 여행과 꿈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여행을 하면 꿈이 생기고, 그 꿈을 이루려면 여행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가 인생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지목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그리스의 전설적 시인 호메로스를 생각하면 10년간의 해상 표류와 모험을 그린 대서사시 오디세이아가 떠오른다. 인도의 성자 붓다는 29세에 출가해 35세에 깨달은 뒤 평생토록 세상을 여행하며 설법을 전했다.  


독일 철학자 니체 하면 깊은 숲 속에서 깨달음을 경험한 뒤 도시로 내려와 긍정 마인드로 희망을 노래한 짜라투스트라가 생각난다. 프랑스 철학자 배르그송은 이성에 반기를 들고 ‘삶의 철학’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모두 여행과 꿈을 중시한 인물이다.


마지막에 언급한 조르바는 누구인가. 그는 카잔차키스를 세계적 작가로 키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실존 인물이다. 젊은 시절 갈탄 채취 사업을 함께 했던 친구이다. 카잔차키스는 다섯 사람 중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조르바를 최고로 쳤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조르바를 이렇게 묘사했다.


“힌두교도들은 ‘구루’라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조르바는 실제로나 소설에서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는 여행자다. 갈탄 사업이 완전 실패로 확인된 날, 그는 바닷가에서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 앤서니 퀸이 해변에서 춤추는 장면이 그것이다. 책상물림인 작가 카잔차키스를 다시 태어나게 한 사람이 바로 조르바이다.


여행의 최고 강자, 최고 수혜자는 바로 카잔차키스 자신이다. 그가 살다 간 74년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행과 글쓰기’라 해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세계 문학계에서 그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 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알베르 카뮈)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촙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콜린 윌슨)


그는 신들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는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영혼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마치 여행과 순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여행의 행복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행을 하면 기다리는 참을성이 생기리라는 생각에 나는 우아한 에게 해의 산토리니, 낙소스, 파로스, 미코노스 섬을 순회하는 범선에 몸을 실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부는 봄철에 에게 해를 항해하는 즐거움이라고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나는 천국이 어느 면에서도 그보다 더 훌륭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더 멋진 표현이 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지적인 고민이 한 번도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고, 해결해야 하지만 능력이 없다는 창조의 고뇌를 지녔음을 일깨우려는 꿈이 단 한 번도 내 잠을 설치게 하지 않았다. 마치 내 영혼 또한 육체가 되어 안락한 상태에서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았듯이 나는 자유로운 소박함 속에서 세계를 보고 듣고 냄새 맡았다.”


실제로 그는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작가로서의 꿈을 좇아 유럽 각국과 이집트 이스라엘 중국 일본 등지를 두루 여행하며 살았다. 여행길에서 갖가지 여행기는 물론, 철학 논문과 희곡, 서사시를 구상하고 썼다.


24세에 프랑스로 유학한 그는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니체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희곡과 에세이를 잇따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이탈리아를 경유해 그리스로 돌아온 카잔차키스는 아토스 산을 장기간 여행하며 성경과 불경, 단테에 심취한다.


34세에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취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한 뒤 스위스로 건너가 니체의 발자취를 살핀다. 공공복지부 장관을 맡았으나 1년 만에 그만두고는 프랑스와 독일 곳곳을 여행한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희곡 ‘붓다’를 집필했으며, 언론사 특파원 자격을 얻어 이집트와 시나이를 방문하기도 했다. 40대 중반 무렵 소련 정치와 문학에 심취한 그는 러시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52세에는 여행기 집필을 위해 일본과 중국을 방문했다. 57세에 ‘영국 기행’을 쓴 뒤에도 유럽 각국을 돌며 집필을 계속했다. 


그의 여행과 집필은 74세 때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독일에서 사망한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섬 고향 마을에 묻혔다. 소박한 묘지에는 자신이 생전에 준비한 비명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스키의 삶, 부럽지 않은가. 터키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 그리스 출신이지만 세계 곳곳을 누비며 멋진 인생을 꾸몄다. 낯선 곳에서의 경험 하나하나가 30편 이상의 소설과 희곡, 에세이를 집필하는데 피와 살이 되었다. 그의 ‘영혼의 자서전’은 한 편의 멋진 여행기를 읽는 듯하다. 


여행은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한테나 유익하다. 젊은 시절 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견문을 한없이 넓혀주기 때문이다. 독서 못지않게 자기 연마에 도움이 된다. 위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여행은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었을 뿐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여행은 무엇보다 위대하고 엄격한 학문과도 같은 것이다.”(알베르 카뮈) “지혜는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마르셸 프루스트)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헤르만 헤세)


그렇다. 여행은 최고의 공부다. 공부라고 해서 어린아이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아이들에게 여행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느낌도 크지 않을뿐더러 나이 들면 기억조차 잘하지 못한다. 노인들의 효도 여행, 공부보다 피곤이 앞선다.


여행의 가성비는 역시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청춘은 여행이다”라고 말한 이유 아닐까 싶다. 그의 조언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찢어진 주머니에 두 손 내리꽂은 채 그저 길을 떠나도 좋다.”


30년, 40년을 살았다고 치자. 멋진 여행을 하다 보면 살아온 인생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단념할 것은 단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40년, 50년을 더 살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좋은 여행을 하다 보면 살아갈 인생에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일 필요는 없다. 국내에도 탐험할 곳이 수없이 많다. 그곳의 역사를 감상하고 미래를 꿈꾸다 보면 절로 삶의 용기가 생긴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 남긴 산문시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할 일이 눈앞에 있으니, 키를 잡고 두려워하지 말고, 뜻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눈물은 절대 흘리지 말라.”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20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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