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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08. 2021

<9>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활동임을 인식하라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사랑은 최고의 진리이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행복의 필수 요건이기에 모든 사람이 갈망한다. 사랑에 흠뻑 취해 사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굶주리며 산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랑에 허기진 사람이 줄어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유로운 연애 경쟁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진 청춘의 가슴앓이가 적지 않고,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 결혼했다 파탄을 겪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부모자녀간, 형제간 갈등 또한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행운이 따르면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란 착각 속에 산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읽고 미몽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한 선각자가 있다. 독일 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1900-1980).


철학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로 유명한 프롬은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2000년 전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같은 제목 ‘사랑의 기술’과는 전혀 색깔이 다르다. 오비디우스의 책은 일종의 연애 지침서다. 연애할 때의 남녀 심리를 자신의 경험 등과 비교해서 분석하고, 연애 중에 생기는 갈등 해소법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에 비해 프롬의 책은 사랑의 근원적 의미를 터득하고 기술을 익혀야 함을 강조하며 그 실천 필요성을 제안한다.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다. 서양 사회에 사랑이 붕괴되었다고 진단하면서 각자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는 우선 “현대인들이 사랑에 명백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왜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사랑을 뿌리 깊이 갈망하면서도 사랑 이외의 거의 모든 일, 곧 성공 위신 돈 권력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력이 이런 목적에 사용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술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프롬은 그 이유로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사랑받는’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어서 배울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그 의미를 배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초의 조치는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롬은 사랑이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활동임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는 돈, 재산과 비유해서도 사랑의 능동성을 설명한다. “물질적인 영역에서 준다는 것은 부자임을 의미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하는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이런 사랑의 능동적 성격에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 포함된다고 말한다. 사랑은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하지만 모두 누군가에게 주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프롬의 이런 정의는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는 데는 훈련, 정신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다음 한마디로 정리하는 듯하다. ‘사랑의 기술’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 


프롬 자신은 사랑에 성공했을까.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겠지만 실패를 반복해야 했다. 22세 때 약혼녀를 죽마고우에게 빼앗기는 불운을 겪은 프롬은 1년 뒤 열한 살 연상의 정신과 의사 프리다 라이히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26세 때 결혼에 골인하지만 불과 5년 만에 파국을 맞아야 했다.


나치 억압을 피해 33세에 미국으로 망명한 프롬은 열다섯 살 연상의 정신분석가 카렌 호니를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된다. 연인 관계가 41세까지 이어졌지만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44세 때 동갑내기 사진기자 헤니 굴란트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줄곧 병을 앓다 52세에 사망했다.


그의 사랑이 끝나는 듯했으나 이듬해 애니스 프리먼이란 미국 여성을 만나 결혼하기에 이른다. 건강하고 매력적인 애니스는 프롬의 마지막 반려자였다. 대부분의 인생에 반려자가 있었기에 그의 사랑이 전체적으로 실패했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가 ‘사랑의 기술’을 펴낸 것은 마지막 여성 애니스와 노년을 준비하던 56세 때였다. 그의 학문적 조수였던 라이너 풍크의 회고다. “프롬은 헤니와의 무력한 이별과 애니스에 대한 사랑으로 비로소 어린아이의 애착에서 벗어난 사랑의 능력을 발견했다. 그제야 비로소 그의 사랑하는 능력의 실천이 그의 사랑 이론과 실제로도 일치할 수 있었다.” 


삶의 의미에 관심이 많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사랑에 대해 일가견을 갖고 살다 간다. 하물며 인간 행복을 탐구하는 철학자라면 어김없이 사랑을 깊숙이 연구한다. 프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는 20세기를 살다 간 철학자이기에 그의 사랑 이론은 아주 현실감 있게 들린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랑은 주는 것’이란 진단을 전제로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것’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내용의 복음성가가 머쓱해진다.


앞선 위인들도 주는 사랑을 이구동성으로 주문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레프 톨스토이) “강력한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마더 테레사) “사랑은 받으려고만 하면 오히려 더 가난해진다. 반대로 사랑을 주면 줄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하라.”(벤자민 프랭클린)


사랑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받을 자격을 갖추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좋은 학벌을 갖고, 괜찮은 직장을 구하고, 외모를 가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사랑이 주는 것이라면 주는 액션을 취해야 한다. 주는 액션이 바로 프롬이 말하는 기술이고 실행이다. 주는 데도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 1학년 교양 과정에 ‘사랑하는 법’ 과목을 이수토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 그늘에서 막 벗어난 청년들이 행복을 위해 사랑을 찾아야 하고, 조기에 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독학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제대로 공부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럴 때 프롬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랑은 평생토록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사랑, 이웃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하는데 나이가 특별히 중요할 리 없다. “사랑은 나이를 갖지 않는다.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랑을 받을 것이 아니라 주기로 작정하고, 효과적으로 잘 줄 수 있는 기술을 익혀 실천토록 하자. 지금 당장.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21

<우리는 사랑하는가> 박홍규, 필맥,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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