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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Oct 28. 2021

<10> 돈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돈에게는 죄가 없다. 집착해서도, 배척해서도 안돼

“돈은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사회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였고,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였다.”

-에밀 졸라의 ‘돈’


돈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 “돈은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늙은 것을 젊게, 심지어 문둥병도 사랑스러워 보이도록 만들며, 늙은 과부에게도 젊은 청혼자들이 몰려들게 만든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그렇다. 돈은 우리 삶에서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돈은 인간의 3대 욕망(돈, 명예, 권력) 중 가장 강력하다. 명예와 권력은 다소 적게 갖거나 전혀 갖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당장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 


흔히 ‘돈은 행복의 필수요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고상한 체하는 사람들의 허영에 가깝다. 가난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인지도 모른다. 적절한 수준의 소득이나 재산을 가져야 비로소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돈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졌다. 풍요의 축복인 동시에 궁핍의 저주이다. 위에 소개한 19세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명언은 돈의 양면성을 잘 설명해 준다. 돈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도, 돈을 막무가내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졸라는 인생 원숙기인 51세 때 ‘돈’이라는 이채로운 제목의 소설을 썼다. 진작에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목로주점’을 발표해 엄청난 명예와 인세를 확보했음에도 졸라에게 돈은 필생의 연구 과제였다. 가난이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를 시종 옥죄었기 때문이다.


졸라는 일곱 살 때 아버지가 폐렴으로 돌연 사망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28세 젊은 어머니에게 남겨진 것은 채무와 소송뿐이었다. 파리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장도 받기 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21세 때는 집에서 나와 빈민가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으며, 31세 되던 해 ‘루공가의 행운’을 발표할 때까지 경제적 궁핍을 감수해야 했다.


졸라는 돈에 대해 상당히 균형적인 시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돈’에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돈’은 자본주의가 본격 가동된 프랑스의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부를 갈망하는 각계각층의 생각과 행동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은행가 사카르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돈이 희망과 자선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부패와 인간성 말살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설파한다.


소설의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사카르는 주식에 크게 실패하고 파산을 경험했지만 유대인 군데르만이 증권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시기심이 생겨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매혹적인 동양 개척 사업을 추진하던 카롤린 남매(카롤린 부인과 그녀의 오빠 아믈랭)를 만나 그들과 손잡고 만국은행 설립을 추진한다.


은행 설립 자금 조달을 위해 군데르만을 찾아갔다가 단번에 거절당한 사카르는 장관인 형의 영향력을 이용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데 성공한다. 은행 설립 후 그는 비정상적이고 인위적인 주가 조작, 왜곡된 자본증식 등을 통해 만국은행의 주가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다. 


사카르의 욕심은 그치지 않았고, 주식 가격이 정점을 찍는 날, 군데르만이 나서 그동안 사 모은 주식을 일시에 푸는 바람에 만국은행 주식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수많은 투자자들은 빈털터리가 되고, 사카르는 경제사범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소설에서 사카르는 선동적인 금융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카롤린 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봐요! 만국은행과 함께 우리는 끝없는 대지, 아시아라는 낡은 세계 위에 진보의 곡괭이로, 연금술사의 몽상으로 돌파구를, 더없이 넓은 지평을 열 것이오.”


 사기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조작을 강화함으로써 그것을 두 배로, 네 배로, 다섯 배로 만들고 싶어요! 우리에게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금화, 쉴 새 없이 굴러 떨어지는 수백만 프랑이 필요해요. 우리가 동방에서 예의 경이로운 역사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아! 그렇고 말고! 나는 사소한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몇몇 행인의 발이 삐는 걸 두려워한다면 결코 세계를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


사카르는 카롤린 부인에게 대놓고 투기를 부추긴다. “그렇소, 투기 말이오. 왜 이 말이 당신을 그토록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걸까? 하지만 투기, 그것은 삶의 미끼이자 우리로 하여금 투쟁하고 살게 만드는 영원한 욕망이라오. (중략) 바로 그거요! 투기가 없다면 사업도 불가능해요.”


그는 자신의 욕망에 제동을 거는 카롤린 남매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돈에 침을 뱉지 마시오. 그건 어리석은 일이고, 무능력한 자들만이 힘을 경멸하는 법이니까 죽으라고 일하면서도 자기 몫을 챙기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만 살찌우는 건 온당하지 못해요. 그렇게 살 거면 차리리 누워서 잠이나 자시오!”


사카르의 이런 생각과 말은 사업가에게서 흔하게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악행의 대표 선수이다. 강간당한 아가씨와의 재혼, 전처 아들과 재혼 아내와의 근친상간 묵인, 재혼 아내가 낳은 아들 외면은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 대부분은 돈의 노예이다. 주식투기에 내몰려 외동딸의 곤경마저 외면하는 모장드르 부부, 주식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몸을 파는 산도르프 남작부인, 거액의 화대를 받고 사카르와 동침하는 나폴레옹 3세 애인 드죄몽 부인, 서명인이 실종된 어음을 헐값에 사들인 후 서명인을 찾아 엄청난 고리(高利)를 취하는 유대인 뷔슈는 하나 같이 정상이 아니다.


그나마 정상인에 속하는 카롤린 부인은 사카르의 비행을 그의 아들로부터 낱낱이 전해 듣고는 돈에 환멸을 느낀다. “아! 돈, 인간을 부패와 중독에 빠뜨리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타인을 위한 선의 애정 사랑을 앗아가는 그놈의 돈! 돈이 바로 인간의 온갖 잔혹하고 더러운 행위를 유발하는 촉매제요 대죄인이었다.”


카롤린 부인은 돈을 저주하면서도 오빠의 동방 개척 계획을 새로 접하고는 돈의 효용성에 감동하게 된다. “오직 돈만이 산을 깎고 바다를 채우며 대지를 인간의 땅, 이제 기계의 조작자로서 노고를 던 인간의 땅으로 만들어줄 힘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일체의 선이 일체의 악을 만드는 돈에서 나왔다.”


졸라는 카롤린 부인의 이런 이중적인 생각을 통해 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 마지막에 묘사한 카롤린 부인의 혼잣말이다. “도대체 왜 사카르가 불러일으킨 비행과 죄악의 책임을 모두 돈에 전가해야 할까?” 돈은 그 자체에 잘못이 없다. 돈에 노예가 되고, 돈을 악용하는 사람에게 잘못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졸라의 메시지인 듯하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나 돈은 죄가 없다. 돈은 자유이고 평등이며 인격이고 사랑이며 힘이다. 인간이 경제적 편의를 위해 만든 유용한 도구이다. 잘 벌어서 잘 쓰기만 하면 더없이 좋은 물건이다.


돈벌이에 열심이라고 욕할 일은 아니다. 합법적이며 정당한 방법이라면 억만금이라도 괜찮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이를 보증해준다. 돈벌이에 무관심한 놈팡이가 오히려 문제이다. 개인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금물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사회악이다. 비록 정당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당장의 행복을 반납해버리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 또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돈은 잘 버는 것 못지않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내 할아버지는 살아계실 적 “10원은 아끼고 100원은 써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누구나 사치하면 부유해도 모자라고, 검약하면 가난해도 넘친다고 했다.  


돈에 여유가 생기면 베푸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선,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가 그것이다. 돈은 잘 써야 행복해진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은 언제 들어도 울림이 있다. “돈과 행복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돈>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문학동네, 2020

<목로주점> 에밀 졸라, 윤진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2

<돈의 철학> 임석민, 다산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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