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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08. 2021

<15> 방황, 살아있다는 증거다

바른 길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목표만 정해지면 금방 벗어날 수 있어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인생을 살며 방황하는 사람이 참 많다.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흔하지만, 40대 이상 중장년기에 방황을 경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입시, 취업, 직장생활, 연애, 결혼, 육아, 종교, 교우, 퇴직 등 방황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과 상황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방황의 터널에서 금방 벗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깊은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인생을 참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다. 방황의 사연은 각양각색이어서 탈출법을 누군가 쉽게 제시해 주기는 어렵다. 자기 스스로 깊이 고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독일 작가 괴테(1749-1832)가 살다 간 200년 전 유럽 사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의 희곡 파우스트의 제1 주제는 ‘방황 탈출법’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오랜 기간 악마와의 힘겨루기 끝에 결국 자기 힘으로 구원의 끈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희곡 파우스트는 괴테가 22세 때 쓰기 시작해 꼬박 60년 만에 완성한 희대의 역작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해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3000년 역사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방황할 수 있고, 마음속에 솟구치는 지향(志向)이 있는 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은 주인공 파우스트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으로 자신의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어 온갖 복락을 누리지만 뜻하지 않게 ‘근심’을 만나 눈이 멀어 죽게 된다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파우스트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 등 중세 대학의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한 노 지식인이다. 고매한 인격까지 갖춰 존경받는 학자이지만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때 악마가 등장한다. 악마가 신(주님)을 만나 파우스트를 시험하겠다고 하자, 신은 이를 허용하며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하느니라”라고 말한다.


신의 이 한마디는 작품 파우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문(非文)이다. 지향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목표가 있다는 것인데 방황하다니 이상하지 않는가. 반대로 방황한다는데 지향이 있다는 논리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런데 국내 최고 괴테 전문가로 꼽히는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비문의 함의가 크다. 뒤집어 보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갈 곳이,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이다.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참으로 큰 위로일 수 있다.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어딘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크다. 참으로 정교한 비문이다.”


작품에서 신이 곧이어 악마에게 던진 말도 비문이긴 마찬가지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 이 역시 전영애 교수의 해설대로라면 이해가 된다. 비록 현 상황이 잘못되어 있더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옳기 때문에 언젠가 바른 길로 들어설 것이란 기대를 담고 있다고 본다. 나약한 인간에게 다정하게 손짓하는 신의 포용, 사랑이기도 하다.


파우스트와 악마는 계약을 맺는다. 우선 악마는 노인 파우스트에게 나이를 30년이나 빼준다. 악마는 파우스트를 위해 봉사하되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만족감을 표시하면 파우스트의 영혼을 앗아가도 된다는, 내기 성격의 계약이었다.


파우스트는 젊음을 무기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청순함의 상징인 그레트헨과의 사랑, 그리스의 전설적 미인 헬레나와의 결혼, 엄청난 부의 축적. 파우스트는 부러울 것 하나 없는 100세 노인이다. 다만 한 가지, 열쇠 구멍을 통해 스며드는 ‘근심’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근심이 파우스트에게 말한다. “인간은 평생토록 눈이 멀었으니, 이제 파우스트 당신도 결국 눈머시오.” 그의 눈에 입김을 불어넣자 진짜 눈이 멀어버렸다. 


두 눈을 뜨고도 눈먼 것처럼 살아온 파우스트가 진짜 눈이 멀자 이제 그에게 내면의 세계가 펼쳐진다. 순간 오래전에 악마와 했던 내기, 즉 계약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작품에서 결국 파우스트는 죽는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삽질 소리가 그에게 들려온다. 그러나 괴테는 파우스트에게 구원의 여지를 남기며 긴 소설을 끝맺는다. 악마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접수해가려는 순간 천사들이 나타난다. 신은 아니지만 천사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다.


“구원되었구나 고귀한 몸이/ 영의 세계에서 악으로부터/ 언제나 지향하며 노력하는 이/ 그를 우리가 구원할 수 있노라/ 그에게 사랑도/ 높은 곳에서 관여해 왔으니/ 축복받은 무리가 그를 맞는다/ 진심으로 환영하며.”


괴테는 천재다. 그의 여러 직업 중 작가는 일부일 뿐이다. 바이마르 공국 제2인자로 제법 알려진 정치인이었으며, 큰 업적을 이룬 자연과학자였고, 많은 그림을 남긴 화가이기도 했다. 이런 족적을 남기려면 타고난 재능에다 엄청난 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그런 괴테에게도 젊은 시절 아픔이 없지 않았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다닐 때 자신이 쓴 글이 비판당하자 절망감에 빠졌고, 당시로선 큰 병인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고등법원 수습생 시절 법률 관련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해야 했고, 약혼한 여자를 사랑했다가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희곡 ‘파우스트’을 집필한 동기인지도 모른다.


방황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겐 무척 힘든 일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기 어렵다. 주변에서 위로하고 격려해도 헤어나기 힘든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네 긴 인생에서 방황은 나아가야 할 목표가 있는 한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방황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좋은 말들을 가슴에 새겨볼 필요는 있다. 마음을 열고 들으면 살과 피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 매 순간이 방황이다.”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방황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방황은 바른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방황을 미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괴테가 노년기에 쓴 성장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보면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방황(편력)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이 미래를 신처럼 예상하거나 설계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를 받아들여 순응할 경우 그만큼 성숙해지고, 그럼으로써 극복의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방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 혹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남의 눈에는 크고 멋지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다. 파우스트가 단적인 예이다. 최고의 학자로 학문적, 지적 욕구를 성취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행복한 삶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에 공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삶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다분히 주관적이다. 중년 이후를 사는 사람들 중에는 객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나머지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남과 지나치게 비교함으로써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도 유사한 성격의 방황을 겪는다.


방황을 극복하는데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원인과 필요한 해결책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본인의 적극적인 자기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조기에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목표를 갖고 노력하면 방황은 금방 극복될 수도 있다. 천사의 노래, 다시 한번 들어보자. “언제나 지향하며 노력하는 이, 그를 우리가 구원할 수 있노라.”


 .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전영애 옮김, 도서출판 길, 2019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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