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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17. 2021

<16> 용서하라,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가해자보다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내야 마음의 평화 온다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그 즉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의 ‘용서’



용서는 크나큰 사랑이다. 하지만 자기한테 고통을 준 사람에게 복수하기는커녕 손을 내민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3자 입장에선 용서하는 사람이 승자다, 혹은 용서해야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피해 입은 당사자가 용서를 실천하려면 엄청 특별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티베트 망명정부의 실질적 통치자인 달라이 라마는 인생에서 용서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가르치는 성자다. 1935년 티베트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 ‘달라이 라마’가 되어, 24세 되던 1959년 중국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인도로 망명했다.


그에게는 티베트의 국민 생명과 종교, 문화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상대는 초강대국 중국이다. 그가 택한 길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걸었던 비폭력 저항이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장 강력한 투쟁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간디보다 한 발 더 나간 듯하다. 용서의 실천이 그것이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그는 용서해야 진정으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세상을 함께 여행하며 오랜 기간 친분을 쌓은 홍콩 출신 캐나다 학자 빅터 챈은 그에게서 ‘용서의 힘’을 제대로 배웠다고 고백한다. 공동 저서 ‘용서’(류시화 옮김)에 티베트 지도자의 고귀한 정신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워진다.”


달라이 라마는 거대한 정치적, 사상적 폭력에 의해 쫓겨난 망명정부 지도자다.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다.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는 용서를 통해 인내심을 구하는 듯하다.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내면의 힘을 시험한다. 용서와 인내심은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해있으며, 달라이 라마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인들은 그곳에서 63년째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는 중국 내 티베트와 망명지에 사는 국민들을 두루 보살펴야 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국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것인 듯하다.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쉼 없이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저 만족감을 원할 뿐이다.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서와 자비다.”


달라이 라마는 용서는 미움을 극복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반대로 용서하면 미움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그냥 사랑이 아니라 고귀한 사랑, 진정한 사랑 말이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삶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그의 사랑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진정한 자비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마음이다. 그의 고통에 책임을 느끼고, 그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마음을 기울일수록 우리 자신의 삶은 더욱 환해진다.”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달라이 라마야말로 인생에서 진정한 평화, 진정한 사랑,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깊숙이 깨달은 성자다. 세상을 이토록 환하게 밝혔으니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는 5년 앞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주교와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흑인인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흑백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권 운동가다. 투투 대주교 역시 인종분리정책의 아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백인)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용서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화해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용서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지난 일에 대해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는 누군가가 그 걸쇠를 풀기 위해서는 문의 뒤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새로운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달라이 라마와 데스몬드 투투는 세계인이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다. 피해자의 입장임에도 당당하게 용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 가르침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불경과 성경에는 용서를 강조하는 표현이 수없이 나온다. 


성경 마태오복음서가 대표적이다. 제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는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이에 예수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니. 무조건,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 아닌가. 이 대목을 두고 그렇게까지 용서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게 하면 죄지은 사람이 반성할 리 만무하고, 사회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죄지은 사람에 대한 벌 주기는 오로지 하느님의 몫이라며 무조건 용서하라고 가르친다. “하느님도 심판의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뮤얼 존슨의 말이다. 가해자에 대한 심판 여부는 일단 신에게 맡기자는 취지로 들린다.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도 용서가 어렵게 느껴지긴 매한가지다. 달라이 라마가 “용서는 가장 큰 마음의 수행”이라고 말한 이유 아닐까 싶다. 법정 스님도 같은 취지의 말을 남겼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남을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이 용서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묵은 수렁에 갇혀 새날을 등지면 안 된다. 맺힌 것을 풀고 자유로워지면 세상 문도 활짝 열린다.”


결국 용서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덕목이면서도 가해 상대방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혜민 스님의 말을 들어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해코지한 사람이 예뻐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기 위해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으면 그를 내 안에 장기 투숙시키게 됩니다.”


혹시 자신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준 지인을 두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복수보다 용서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어둠으로 어둠을 밝힐 수 없고, 미움으로 미움을 떨쳐낼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 갈등을 해결하는데 어둠보다는 빛, 미움보다는 사랑이 훨씬 수월해 보이지 않은가. 


더구나 손절매하기 힘든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이런 고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용서의 손을 내밀자.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악수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용서> 달라이 라마/ 빅터 챈, 류시화 옮김, 오래된미래, 2005

<달라이 라마의 행복 찾기> 달라이 라마, 제프리 홉킨스 엮음, 우충환 옮김, 이치, 2013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류시화 엮음, 조화로운삶,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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