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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19. 2021

<17> 좋은 부모의 조건

자녀한테 권력 행사하지 말고, 인격을 확고히 존중해야 줘라

“부모는 처음부터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은 도덕적이거나 논리적인 원칙의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되며, 소유욕이나 억압이 결코 뿌리내리지 못할 만큼의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미국에서 케네디 가문이라면 영국에선 러셀 가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을 배출한 집안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 치세에서 두 차례 수상을 지냈다.


러셀 가문은 자유로우면서도 진보적인 가풍을 유지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금욕적인 가르침을 좋지 않게 여겼다. 위대한 철학자는 당시로선 상당히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러셀이 저술한 ‘행복의 정복’ ‘자녀 교육론’ ‘인생은 뜨겁게’(자서전)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행복의 정복’은 그가 환갑을 바라보던 1930년에 나왔기에 거의 고전에 가깝지만 내용은 전혀 낡지 않았다.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행복 지침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철학적 사유가 깊숙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 소개한 문장은 ‘좋은 부모가 되려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러셀은 당시에 이미 가족제도가 심하게 와해되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젊은 부모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2020년대인 지금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대부분 양쪽 모두에게, 혹은 어느 한쪽에게 불행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략) 자녀들과 행복한 관계를 맺고 싶거나, 자녀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기를 바라는 어른은 부모다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며, 고민한 후에는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러셀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볼 때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도 지속적인 행복”이라고 진단했다. 당연히 자녀 갖기를 권장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양육이다. 그는 부모와 자녀, 양쪽 모두 만족감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인격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러셀은 어린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력욕’을 특별히 경계했다. 부모 입장에선 즐거움에 속하는 일이 자칫 아이에겐 비인격적인 대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깊은 통찰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새로 태어난 생명은 무력하므로 부모 마음속에는 새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이 충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만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부모의 권력욕까지 만족시켜준다. 갓난아이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기울이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러셀은 이런 예까지 들면서 권력 행사를 자제하라고 조언한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녀에게 당신이 밥을 먹여준다고 하자. 당신은 그저 아이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이의 행복보다 자신의 권력욕을 앞세우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녀가 위험에 대해 지나친 강박관념을 가지도록 만든다면,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이가 계속 당신에게 의존하며 살았으면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녀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사랑을 과시한다면,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이의 감정을 움직여서 아이를 당신 곁에 꼭 붙들어 매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러셀은 부모가 가급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자녀가 행복해지고, 부모 자녀 관계가 화목해진다고 강조한다. 자녀가 반발할 일도 없고, 부모가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는 식의 정신분석학 교과서는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모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올바른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러셀의 결론은 이 한마디 아닌가 싶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말고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다.”


러셀의 이런 자녀 교육법은 자신의 성장 및 자녀 양육 경험에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러셀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두 살 때 어머니,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그다지 따뜻한 품속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교육을 거부한 할머니의 교육 방침에 따라 가정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외로움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서전에 나오는 표현이다.


“어린 시절을 통틀어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정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으며, 따라서 내 존재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항시 고독했다. 나는 깊은 생각을 남들한테 잘 말하지 않았고, 간혹 말하더라도 곧 후회하곤 했다. (중략) 유년기를 거치면서 외로움도 커졌고,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행여 만나려나 기대하다 절망하는 일도 많아졌다. 완전히 실의에 빠진 나를 구해준 것은 자연과 책과 (좀 더 나중에는) 수학이었다.”


러셀은 “청년기(10대를 지칭)도 대단히 외롭고 불행한 시기였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신도 놀랄 만큼 사교적인 젊은이로 변신했다. 사랑을 키워오던 앨리스란 여성과 22세 때 결혼하지만 아이를 얻지 못했다.


그가 첫 아이를 가진 건 49세 때의 일이다. 앨리스와 이혼하고, 두 번째로 결혼한 도라에게서 아들을 얻었으며 2년 뒤엔 딸이 태어났다. 65세 때는 세 번째 부인 피터에게서 막내아들을 얻었다. 육아 부담 때문에 장수한 것일까. 그는 98세까지 살았다.


러셀은 자녀들에게 자유로운 교육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생각으로 기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자기처럼 가정교사에게 맡기지도 않고, 아예 자그마한 학교를 하 나 만들어 운영했다. 기존 학교에 보내지 않은 이유를 러셀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점잔 빼는 교육, 종교 교육이 싫었고, 기타 전통적 학교들에서 당연시되는 자유에 대한 무수한 제약들이 싫었다.” 자서전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바다와 야생 산림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자기 아이 또래 20명 정도를 모아 기숙학교를 운영했다. 하지만 학교 운영이 순탄하게 운영되진 않았다고 고백했다.


사실 자녀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 수많은 교육 지침서가 나와 있고, 부모들이 신경 써 교육을 시키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로서는 자녀가 건강하게, 훌륭하게 자라주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분명 좋은 부모가 있고, 나쁜 부모가 있다. 좋고 나쁨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것을 구분하는 잣대 또한 여럿이겠지만 나는 ‘욕심’이란 단어에 주목한다. 욕심 중에 가장 나쁜 욕심은 자녀에게서 행복을 빼앗으려는 욕심 아닐까 싶다.


흔히 아이는 하얀 도화지라고들 한다. 더없이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뜻일 게다. 부모가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재빨리 파악해 방향을 잘 잡아주면 훌륭한 그림을 그리겠지만, 자기 욕심에 빠져 가이드를 잘못하면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부모들은 러셀이 말하는 자녀에 대한 권력욕의 크기를 반드시 재어보아야 한다. 자녀에게 적절히 자유를 부여하고 있는지, 자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와주고 있는지, 자녀에게 능력 이상의 성취를 요구하지나 않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세상에는 자녀가 하기 싫은 것을 강요하는 욕심쟁이 부모가 의외로 많다. 이런 부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녀한테서 행복을 빼앗는 사람이다. 나쁜 부모의 전형이다.


중동의 성자 칼릴 지브란의 지적에 귀 기울여 보자.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자녀를 행복하게,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제1 계명은 부모가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하기보다 차라리 방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문헌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이순희 옮김, 사회평론, 2017

<러셀의 자녀교육론> 버트런드 러셀, 김영숙 옮김, 서광사, 1989

<인생은 뜨겁게>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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