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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Nov 07. 2021

<14> 조기교육, 누구한테나 좋을까

학습 능력 있으면 일찍 시작하되, 주입식 대신 토론식으로 가르쳐라

“아버지는 내가 배운 어떤 것도 단순한 기억의 연습으로 타락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해력을 교육의 모든 단계와 함께 가게 했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이해력을 선행시키려고 노력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


 

요즘 조기교육(早期敎育)이 대유행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를 외국어 학원에 보내는가 하면, 서너 살짜리 아이를 각종 예체능 학원으로 내몰기 일쑤다. 사교육 시장이 영재교육이란 이름으로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부모 입장에선 어리면 어릴수록 공부 흡수력이 빠르다는 판단에서이기도 하고, 학업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이기도 하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중국에 특히 조기교육 바람이 거센 편이다. 좋은 의미로 높은 교육열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일정 부분 개입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의 학업 능력에 따라서는 좋은 점도 있을 테니 대놓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철저한 조기교육을 통해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 ‘자유론’을 쓴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조기교육의 상징이다. 아니 일종의 조기교육 실험 대상이었다. 다행히 실험은 크게 성공했다.


그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에든버러 대학을 나온 가난한 저술가였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밴담의 친구였던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정신은 백지상태와 같다’는 철학자 존 로크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아이를 합리적, 과학적으로 잘 가르치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과 놀거나 그들의 나쁜 습관을 따라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아들을 집에서 가르치게 된다. 밀은 평생 학교는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다.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아버지 몫이었다. 저술하는 틈틈이 가르쳤다. 밀은 세 살 때 고대 그리스어를 배워 다섯 살 때 그리스어로 쓰인 고전을 읽었으며, 여섯 살 때 로마 역사를 썼고, 일곱 살 때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원어로 이해했다. 여덟 살 때 라틴어를 배웠으며, 아홉 살 때 대수학과 프랑스어를 익혔다. 열두 살 때는 경제학, 정치학, 논리학에 대해 폭넓은 이해 능력을 갖췄다.


그가 쓴 자서전을 보면 아버지가 지극 정성 아니었나 싶다. 그리스어를 배우던 시기의 회고다.


 “아버지가 교육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이었던 건 다음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즉 나는 그가 쓰는 방의 그와 같은 책상에서 그리스어 수업을 준비하는 전 과정을 밟았는데, 그 당시 그리스어-영어 사전은 아직 없었고, 아직 라틴어를 배우지 않아 그리스-라틴어 사전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모든 단어의 의미를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참을성이 정말 없는 사람이면서도 나의 이런 끊임없는 방해를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책을 집필했다.”


밀은 글을 익히면서부터 독서에 몰두했다. 자서전에 기록한 유아 및 소년 시절 독서의 양과 수준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역사, 문학, 철학과 관련된 고전은 모조리 탐독한 듯하다. 13세 이전의 일이다. 밀은 20대에 이미 뛰어난 사상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학문이 깊어져 철학, 경제학, 역사학, 정치학, 종교학, 여성학을 포괄하는 대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밀에 대한 조기교육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게 통제하는 등 인조 교육, 밀봉교육의 성격을 띠지만 자율적인 측면이 강했다. 위에 소개한 글, 밀의 회고처럼 아버지는 단순 암기나 주입식이 아니라 이해력을 특별히 중시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밀 스스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자서전에 나오는 말이다.


 “많은 지식을 주입받은 대부분의 소년 소녀는 그 정신적 능력을 강화할 수 없고, 도리어 그것에 억압당한다. 그들은 단순한 사실이나 타인의 의견이나 말을 주입당하고 그것들을 그들 자신의 의견을 창출해내는 힘의 대용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자녀 교육에 힘을 쓰지 않은 유명한 아버지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반복하는 인간으로 길러지고, 그들을 위해 끌어온 항로 밖에 나서면 자신의 정신을 사용할 수가 없다.”


밀은 열두 살 무렵 논리학과 정치경제학 배울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스스로 찾도록 하기 위해 내 능력을 지나칠 정도로 활동시키는 일을 환기하려고 애썼다. 그는 내가 갖가지 어려움을 충분히 깨달은 뒤에야 설명해주었다.” 


또 밀에 대한 조기교육은 철저하리만큼 토론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버지가 매일 아들을 데리고 산책하면서 그간 배운 것을 토론으로 익히게 했다. 역시 열두 살 무렵의 회고다. 


아버지는 산책을 하면서 나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주제의 일부를 설명했고 다음 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써서 보여주었다. 그는 그 글이 명확하고 상당히 완전하게 될 때까지 몇 번이나 고쳐 쓰게 했다.”


밀은 13세 살 무렵 아버지로부터 받는 교육을 거의 마무리했다. “나는 열네 살 무렵 1년 이상 영국을 떠났고, 귀국 후에는 아버지의 일반적 감독하에 공부를 계속했지만 그는 이제 나의 선생이 아니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그는 신문과 잡지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유, 종교, 이성, 지식 등 철학적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후에는 밴담을 비롯한 아버지 친구들과 어울려 토론하기를 즐겼다.


밀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그는 타고난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이슈노트’의 2018년 보도에 따르면, 천재들의 지능을 유추해본 결과 밀의 아이큐는 182.5라고 한다. 괴테, 다빈치, 뉴턴, 라이프니츠에 이어 5위란다. 굳이 조기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그는 훌륭한 사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조기교육을 받은 밀에게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이했던 환경 탓에 평생 사람들과 다소 거리를 둔 채 외롭게 지냈다. 그의 슬픈 회고다.


나에게는 어린 친구가 없었고, 육체 활동에 대한 동물적 욕구는 산책이 충족해주었다. 거의 혼자 했던 놀이는 책 읽기만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조용한 것이었고, 정신 면에서 공부 이외에 거의 자극을 받지 못했다. (중략) 아버지가 나의 결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는 소년으로서도 청년으로서도 이에 대해 아버지에게 엄하게 꾸중을 들었고 늘 괴로워했다.”


아버지는 자연과학까지 교육하면서도 벤담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고 본 종교와 형이상학, 그리고 시는 가르치지 않았다. 밀은 20대 초반 정신적 위기를 경험하고서야 스스로 시인 워즈워스, 콜리지를 만나 인간과 사랑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밀의 조기교육이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 모두 조기교육에 나설 일은 아니다. 그는 천재였기에 좋은 환경에서 일찍 영재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스스로 잘 소화했다고 봐야 한다. 


조기교육은 기본적으로 아이 본인보다 부모 등 성인의 뜻으로 교육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어서 아이가 잘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능력 때문이든 성격 때문이든 교육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면 득 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선행학습은 몰라도 굳이 조기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조기교육을 한다 해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금물이다. 밀을 보라. 그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 많은 학습량을 암기하라고 다그쳤다면 금방 싫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매일 산책하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으니 그 시간이 즐거웠을 수도 있다.


밀을 보면 역시 공부의 핵심은 독서 아닐까 싶다. 아니 독서가 공부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부모 입장에서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나이에 책 읽는 습관만 들여도 대성공이라고 본다. 이 역시 아이가 흥미를 가져야 한다. 부모 욕심으로 밀어붙일 경우 독서의 자발적 동기와 자기 주도성을 잃게 된다.


그러니 젊은 부모들이여, 너무 조바심 내지 말지어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적기교육(適期敎育)이다. 장 자크 루소가 ‘에밀’에서 한 말은 여전히 힘이 있다. 


아이의 자연성에 맞추어 교육하라. 그리고 아이에게 자유를 주라”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존 스튜어트 밀,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19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17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정미화 옮김, 소소의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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