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처럼 Nov 05. 2021

<13> 진정한 우정이란

선(善)에서 비롯된 참된 우정은 유익의 우정, 즐거움의 우정보다 오래간다

“진정한 우정은 덕(德)에 있어 서로 닮은 선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친구란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 했다. 좋은 친구는 피 한 방울 안 통하는 남남이라도 많은 것, 아니 모든 것을 내어 줄 수도 있는 절친한 사이다. 중동의 성자 칼릴 지브란의 말은 언제 들어도 울림이 크다.   


“친구는 여러분이 사랑으로 씨 뿌리고 감사함으로 거두어들이는 밭이다. 그는 또 여러분의 식탁이요 화로다. 여러분이 배고플 때 찾아가고 포근함이 필요할 때 찾아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도 금방 가슴에 와닿는다. “친구는 젊은 시절에는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나이가 들어 약해졌을 때는 나를 챙겨주는 존재이다. 한창 전성기 때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동반자가 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언제나 둘이 하나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친구를 찾는다. 가족이나 친척이 많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친구 사귀고 싶은 욕망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친구와의 우정에서 삶의 휴식처를 찾으려 하기 때문일까.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다고 상상해 보라. 삶이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친구를 사귀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교제의 폭이 아무리 넓을지라도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면 별 의미가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진정한 친구, 참된 친구를 갖는 게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에 대해 최초로 정의를 내린 철학자이다.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을 ‘상호 간에 오가는 신뢰’라고 정의했다. 우정에 대한 그의 세 가지 개념 규정은 참으로 명쾌하다. 무려 23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행복, 도덕, 정의, 지혜, 쾌락, 우정 등을 다루고 있다. 우정은 제8권과 9권에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세 가지 유형의 우정이 핵심이다.


첫 번째 우정은 서로에게 유익한, 즉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서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선택하는 친구이다.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나타나는 좋은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우정이다. 사업 파트너이거나 직장에서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직장을 생각해보자. 같은 회사에 다니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 하루 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식사까지 같이 할 경우 친밀감이 생긴다. 이것도 우정이다. 우정이 없다면 직장 생활이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두 번째 우정은 더불어 즐기는 것을 공유하는 관계이다. 함께 쇼핑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생기는 우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성적인 사랑, 도박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우정은 선(善)에서 비롯된 진정한 사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진정한 우정은 덕(德)에 있어 서로 닮은 선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선한 사람인 경우에만 서로 좋은 것을 원하며, 그들 자신 또한 선한 사람이다. 자기 친구를 위해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참된 의미의 친구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 본성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우정은 그들이 선한 동안 유지된다. 그리고 선은 오래 유지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우정, 즉 유익이나 즐거움을 주는 우정을 굳이 폄하하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의 환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우정은 깨지기 쉽다는 흠을 갖고 있다.


“쓸모 있음이나 쾌락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성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쓸모 있거나 유쾌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우정은 다만 부수적일 뿐이다. 이런 우정은 상대방이 전과 달라지면 쉽게 없어진다. 쓸모 있음과 유쾌함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늘 변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우정의 경우 그 동기가 사라지면 곧 없어진다고 말한다. 집주인과 손님의 우정이 그런 것이란다. 하룻밤 사이에도 형성될 수 있는 흔한 우정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 십상이다. 


이와 달리 세 번째 진정한 우정은 친구 상호 간의 선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이기 때문에 흔하지도 않고 이내 사라지지도 않는다. 선한 사람들 간의 우정은 남이 근거 없이 헐뜯는 말에 현혹되지 않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우정이야 말로 진짜 우정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할 때 생겨난다. 그 때문에 상대방의 내적인 자질이나 인간성이 매우 중요하다. 친구가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인 것이다.


이런 우정에는 유익을 주는 우정과 즐거움을 주는 우정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진정한 우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친구는 저절로, 금방 생기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우정이 포도주와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새로 담았을 때는 설익은 맛이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익으면서 나이 든 사람들의 진정한 자양제이자 활력을 주는 강장제가 된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은 생각이지 싶다.


좋은 친구를 만나 진정한 우정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신의를 지킨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아예 ‘상호 간에 오가는 신뢰’라고 정의하지 않았던가. 친구 사이를 잇는 가장 강력한 끈은 누가 뭐래도 신의이다.


유교 도덕의 핵심인 삼강오륜에서도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했다. 신의를 저버리면서 친구가 된다든가 우정이 지속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신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진정한 우정의 조건인 선과 직접 관련이 있다. 신의란 서로 믿고 선함, 즉 착함을 함께 행한다는 뜻이다. 약속 지키기는 기본이다.


우정에 필요한 신의는 단순히 의기투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깡패들끼리 뜻이 맞아 철석같이 약속 지키는 것을 두고 참된 우정이라 하지 않는다. 선한 뜻을 이루고자 함께 하는 착한 마음이 참된 우정, 진정한 우정이다.


예의와 겸손도 진정한 우정의 필수 요건이다. 친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절대 좋은 우정을 꽃피울 수 없다. 친구로 만났지만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성격이나 생활습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식성이나 사고방식, 심지어 이념이 다를 수도 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뿐 결코 틀린 것이 아님에도 내가 옳다고 우기며 나에게 모든 걸 맞추려 들면 우정에 금이 가게 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배우려고 노력하면 상호 윈윈이다. 이것이 예의이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동년배 친구로 만나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건 꼴불견이다. 


내적 성숙을 꾀하는 것도 진정한 우정 가꾸기에 도움이 된다. 착한 심성과 함께 지적으로 충실하면 자연히 상대방의 마음을 얻게 된다. 꼭 거창한 지식이 아니더라도 지혜로운 태도를 견지하면 인격적으로 교감하기가 한결 쉽다.


진정한 우정을 도모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정성을 쏟는 것이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스스로를 평가해본다. 나는 선한 사람인가, 나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인가, 나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인가, 나는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인가. 


대체로 이런 사람이라 생각되는데도 진정한 친구가 아예 없거나 너무 적다는 이유로 속이 상하는가. 이런 사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성격상 친구를 넓게 사귀기보다 좁고 깊게 사귀다 보면 내심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혹 교류의 폭을 조금 넓히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가 유익이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선함이나 고귀함이면 더 좋겠다. 진정한 우정을 위해서 말이다. 


인용하거나 참고한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홍석영 편저, 풀빛, 2006

<우리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오트프리트 회페, 주광순 옮김, 시와진실, 2019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김형석, 열림원, 2019

작가의 이전글 <12> 사랑, 미루지 말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