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가 국제학교의 부상과 인가 학교의 차별화 전략: 광주 사례 중심
최근 국내 외국인학교·국제학교 시장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학생 수 기준으로 지난 5년간 연평균 약 3% 내외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향후에도 이 흐름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재학 중인 외국인/ 국제학교 학생 수는 16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내국인 해외 유학생 수의 급감입니다.
2010년 3만 명을 넘던 내국인 유학생 수는 2023년 기준 1만 4천 명 수준까지 감소했습니다. 해외로 나가서 교육을 해결하던 방식이 점점 국내에서 국제교육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여기에 영어유치원의 고성장도 한몫합니다.
지난 5년간 영어유치원 시장은 약 연 9% 성장했고, 이 수요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 단계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즉, 국제학교의 초등 수요 풀(pool)이 계속 두터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셋째, 이 흐름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존재가 바로 비인가 국제학교입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한편으로는 국제학교 시장의 외형을 키우는 동력입니다. 글로벌 교육에 대한 잠재 수요를 빠르게 흡수하고, 부모들에게 “이런 교육도 가능하구나”라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인가 외국인학교·국제학교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비인가 국제학교의 성장은 시장 전체로 보면 분명 긍정적이지만, 개별 인가 학교 입장에서는 위협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넷째, 이 와중에 지자체별 해외 국제학교 유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교육 인프라를 확충해 지역의 교육 경쟁력을 높이고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며 산업과 경제의 글로벌화를 촉진하려는 목적입니다. 공급이 늘어나면 잠재 수요가 자극되고, 이는 다시 시장 성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구조 속에서 비인가 국제학교는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플레이어입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국제학교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면서도 기존 인가 학교를 위협하는 전형적인 ‘양날의 검’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무엇이고, 왜 이렇게 빠르게 늘어나고 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교육의 연속성입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뒤 일반 초등학교로 진학하면, 아이들이 그동안 쌓아온 영어 실력이 빠르게 희석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차라리 국제학교를 보내고 싶은데…”라고 고민하지만, 송도는 멀고 비용 부담이 크고, 제주는 가족이 분리 거주해야 하며, 외국인학교는 해외 거주 요건이 까다롭고 경쟁률도 높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대안으로 비인가 국제학교가 등장합니다.
국제학교 열풍의 핵심은 미인가다. 과거엔 주로 인천 송도나 제주, 대구에 있는 인가 국제학교를 보냈다면, 최근에는 서울·경기도 소재 미인가 국제학교가 대세로 떠올랐다. 양육자들이 미인가 국제학교라는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다. 영유가 대세로 떠오른 상황에서 공립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 3학년 때까지 학습 공백이 발생하는 탓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0982
두 번째는 접근성입니다. 특히 강남 거주자 기준으로 “집에서 가깝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장점입니다. 매일 통학해야 하는 초등·중등 과정에서는 입지가 곧 경쟁력입니다.
세 번째는 학습 강도와 성과입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법적으로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 가깝기 때문에, 커리큘럼이 매우 빡빡하고 영어·수학·과제량 모두 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구조가 잘 맞는 학생들에게는 성적과 진학 실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비인가 국제학교의 성장에도 분명한 한계와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첫째, 교육의 질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교육부의 정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운영 수준과 교육 철학은 학교마다 큰 차이가 납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비인가 국제학교가 문을 닫았다. 학부모들은 그 사실을 학교 홈페이지가 아니라 학원 커뮤니티 카페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해당 학교에 다니던 재학생들 일부는 이후 어느 학교에도 전학하지 못한 채 자택에서 조용히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없어 공교육 복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https://v.daum.net/v/fRMGGcGk1J
둘째, 캠퍼스 라이프의 부재입니다. 학교가 아닌 학원 형태이기 때문에 운동장, 체육관, 비교과 활동 등
‘학교다운 생활’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학원에 머무는 구조는 아이에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셋째, 정규 졸업장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대학 진학은 구조적으로 어렵고, 장기적인 진로 설계에는 분명한 제약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위 일부 비인가 국제학교는 운영과 관리가 매우 체계적이고 졸업생 진학 실적도 우수해 서울에서 출발해 지방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지역이 바로 광주광역시입니다.
광주에는 오랫동안 광주외국인학교가 지역의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광주·호남권 유일의 인가 외국인학교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봉선동, 이른바 ‘광주의 대치동’에는 오래전부터 SIS 광주러닝센터어학원 (이하, SIS)라는 비인가 교육기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어유치원 이후 SIS로 진학하는 경로가 사실상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졌습니다.
광주 지역은 해외 거주 3년 이상 요건을 충족하는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광주외국인학교로 유입될 수 있는 학생보다 비인가 국제학교로 향하는 학생이 더 많았습니다. 여기에 봉선동이라는 강력한 입지는 학부모 니즈에 맞춰 매우 강도 높은 커리큘럼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광주 인근 담양군에 ‘페이스튼’이 개교를 앞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국구 비인가 국제학교의 지역 진출입니다.
두 번째 변화는 더 큽니다. 2025년 11월 조례 제정을 통해 광주외국인학교가 한국인의 해외 거주 요건을 폐지하고, 정원의 최대 50%까지 내국인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광주는 광주외국인학교 – SIS – 페이스튼이라는 3자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전략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전장이 열린 것입니다.
비인가 국제학교 두 곳과의 경쟁 속에서 광주외국인학교가 취해야 할 전략은 단순합니다. 학원과 경쟁하려 하지 말고, ‘학교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극단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광주외국인학교의 가장 큰 무기는 단순히 “인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인가 덕분에
지자체
지역 연구기관
상공회의소
대학 및 공공기관
과 공식적이고 구조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즉, 지역을 대표하는 Institution Play가 가능합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아무리 커리큘럼이 좋아도 법적으로 ‘기관(institution)’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공 프로젝트, 정식 공동 프로그램, 지역 단위 협력에는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광주외국인학교는 이 지점을 더 공격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 학교에서 배우면 광주라는 도시 전체가 교실이 된다”
라는 메시지가 실제 프로그램으로 구현될 때 차별화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환경입니다.
선생님만 외국인이고 학생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면 그건 국제학교가 아니라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광주외국인학교는 구조적으로 유리합니다. 외국인 학생들은 비인가 국제학교로 갈 이유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주외국인학교는 외국인 학생 유치를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학교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KPI로 관리해야 합니다.
몇 퍼센트인가
어느 국적인가
어떤 배경의 학생들이 섞여 있는가
이 구성 자체가 비인가 학교와의 가장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비인가 국제학교의 장점 중 하나는 커리큘럼이 매우 빡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광주외국인학교가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광주외국인학교의 강점은
WASC와 같은 국제적 인증
장기적으로 검증된 교육 과정
경험 많은 외국인 교사진
입니다.
즉, “얼마나 많이 시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설계된 교육이냐”에서 차별화를 해야 합니다.
이 지점이 흔들리면 학원과 학교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 순간 인가 학교의 존재 이유도 약해집니다.
비인가 국제학교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캠퍼스 라이프입니다.
운동장, 체육관, 팀 스포츠, 공연, 동아리,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공동체 경험.
이건 학업 성과와 별개로 아이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광주외국인학교는 이 캠퍼스 라이프를 “있으니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가장 큰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으로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광주외국인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도심 중심부와는 다소 떨어져 있어 입지 자체가 주는 장점이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학교 주변을 둘러싼 환경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학교 인근에는 이미 GIST가 자리 잡고 있고, AI 산업단지가 형성되면서 지역 전체가 ‘기술 중심 클러스터’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길 건너편에는 광주 AI영재고가 내년 개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근 지역에 4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주거 단지가 조성되면서 사실상 하나의 ‘뉴타운’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는 광주외국인학교 입장에서 단기적인 입지 개선을 넘어, 장기적인 배후 수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만약 SIS가 봉선동이라는 전통적인 학군지를 무기로 삼고 있다면, 광주외국인학교는 ‘AI 중심 국제 뉴타운’이라는 전혀 다른 축에서 자신만의 포지셔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입지 경쟁이 아니라, 서로 질적으로 다른 게임을 선택하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광주외국인학교의 정체성과 미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는 대체로 매우 목적 지향적이고 단기적입니다.
초등 몇 년만
영어 실력 끌어올릴 때까지만
특정 시점까지 버티기
이 구조에서는 아이의 전체 학교 생활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반면 광주외국인학교는 유·초·중·고를 모두 아우르는 장기적 학습 여정 설계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기관입니다.
이 점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특히 중·고등 과정으로 갈수록 학부모는 안정성과 연속성을 더 중시하게 됩니다.
26년의 역사와 동문 네트워크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다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네트워크가 지금 학생들에게 실제로 체감되고 있는가?”
동문 멘토링, 진로 연결, 선배와의 교류가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면 그 가치는 절반도 쓰이지 않은 셈입니다.
이 영역은 비인가 국제학교가 단기간에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비인가 국제학교는 국제교육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학생의 모든 학교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인가 학교입니다.
광주는 지금 이 두 모델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쟁의 결과는 단순히 어느 학교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지역의 국제교육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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