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간 대학원에서 살아남은 방법
네바다(Nevada) 하면 미 서부의 라스베이거스라는 지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 큰 미국 땅에서는 남쪽과 북쪽이 차로 6시간 떨어져 있는데도, 산맥 하나로 연결된 곳이 같은 주(State)인 경우가 있다. 나의 대학원이 있던 네바다 주의 Reno(리노)는 북서부에 위치해 있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 "레이크 타호 근처"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미국 대학원에서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조교를 채용한다. 나는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었고 네바다 주로 이사를 가야 했기 때문에 등록금이 현지인과 달라 거의 1.5배 수준의 등록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조교가 되는 것에 아주 절실했다. 조교로 채용되려면 면접을 봐야 하는데, 나의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내 한국식 영어 발음과 악센트는 대학원 가기 전까지 전혀 좋지 않았다. 나쁘게 표현하면 대학원에서 살아남기엔 수준 미달일 정도로 하찮았다. 당시 내 영어를 미국인이 알아들었다면, 그 사람의 부모 중 한 분은 한국인일 정도로 발음이 그랬다. 물론 지금도 내 영어에 한국식 악센트가 있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영어 실력으로 조교 면접 날에는 겨드랑이가 땀에 젖을 정도로 목청을 높여 성심성의껏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두 가지 기억나는 건, 교수님께서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당신의 목표가 제 목표입니다"라고 기세 있게 대답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고 하셨을 때는 "지금은 부족하지만 두 달 후엔 누구보다 나을 자신이 있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대학원 조교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대학교의 행정 업무로 신입생 입학 서류나 우편물을 정리하거나, 대학생 시험 성적을 평가하는 일이다. 둘째는, 교수님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일로, 논문을 읽고 정리하거나 발췌하는 등의 업무가 있다. 나는 두 명의 교수님께 고용되어 두 업무를 모두 맡았다. 다행이, 한국 공기업 사무직 경력이 있어서 대학교 행정 업무는 능숙하게 해냈지만, 교수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일은 영어 실력이 부족해 민폐를 끼칠 수준이었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책상에 손을 대고 이마를 그 손등에 대며 한숨을 쉬셨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로 조교로 살아남기 위해, 하루에 읽어야 할 논문 분량을 정하고, 논문의 구조를 빠르게 익히며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매일 논문을 읽고 정리했다. 4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논문을 읽으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어 튜터와 만나 요약과 첨삭을 받았다. 연구 주제가 정해지면 질문지를 작성해 정확한 답을 드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한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고, 겨울방학과 1학년 2학기가 지나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교수님은 방학 동안 나를 개인적으로 채용해 주셨다. 노력의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교로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또 다른 노력은 도서관 사서와 친하게 지내는 일이었다. 대학원의 사서 엘레나는 작가이자 시간강사로 활동 중이었고, 참고문헌을 찾는 방법, 책을 찾는 방법, 교수님이 원하는 책이 도서관에 없을 경우 주문하는 방법 등을 알려 주었다. 엘레나의 도움 덕분에 교수님께 몇 번이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방법은 학장님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교수님을 만나러 교수실에 가면 항상 학장실에 들러 인사하고, small talk를 나누며 얼굴을 익혔다. 이런 작은 일들은, 학장님에게 열심히 일하는 진취적인 학생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드렸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조교 근무 시간이 늘었으며, 학장님 추천으로 제3회 네바다 주에 기여한 사회복지인 수상자에도 오를 수 있었다.
안 들리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 중요한 강의는 녹음해 두었다가 집에 와서 다시 듣거나, 워드 파일의 자동 기록 기능을 이용하여 녹음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한 후 읽고 이해하곤 했다.나는 적극적이었다. 또한 긍정과 성실의 힘을 믿었다. "지금은 못해도 두 달 후엔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내가 만든 문구인데, 은근히 나에게 힘이 되어 준다. 이 말을 되뇌면 정말 잘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매일 버티고 노력하며 대학원에서 살아남았다.
하찮은 영어 실력 이였지만 내가 걸었던 길, 그 길을 가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족한 나도 해냈으니 여러분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미지:
레이크 타호( Lake Tahoe) 대학원 졸업 후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던 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