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을 기회를 잃고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정신건강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하다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아홉 번째 이야기는, 누군가는 끝까지 손을 내밀어주었더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던 이야기에요. 치료와 회복을 향해 나아가던 한 클라이언트가 결국 거리로 되돌아가야 했던 안타까운 여정에 대한 기록을 함께하겠습니다.
“로버트 씨를 만나러 왔어요.”
직원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원에 계세요. 신발을 신지 않고 걷고 있는 분이 로버트예요.”
발바닥으로 땅의 감촉을 느끼고 싶은 듯, 신발을 신지 않은 채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를 보았고, 그를 만나기 전, 먼저 그의 차트를 검토했다.
진단명은 조현정동장애(Schizoaffective disorder). 망상이나 환청과 같은 조현병적 증상과 함께, 우울하거나 조증 같은 극단적인 기분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정신질환이다. 게다가, 차트에는 인지 기능 저하도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자발적 입소. 후견인(Conservator) 없음.
로버트처럼 판단 능력이 떨어지고 치료적 지지가 필요한 경우, 후견인이 없다는 것은 곧 체계적인 보호의 부재를 의미하며, 치료적 한계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로버트를 처음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그가 시설에 거주 중인 중증 정신질환과 오랜 마약중독 이력이 있는 이성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군가와 다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이성관계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으며, 그와 면담을 진행하며 ‘관계 안에서의 건강한 거리감’과 ‘동의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이라는 주제를 천천히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관계란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정의 큰 소용돌이가 되기도 하고, 특히 서로가 아픈 상태 이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회복의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설 관리자에게 그의 약복용이나 행동을 주시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관리자는 며칠 후, 로버트의 정신병적 증상이 다시 심해지고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밤마다 환청에 시달리듯이 고함을 지르거나 벽을 두드리는 일이 잦아졌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시설 안을 돌아다니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그룹 미팅에서는 로버트가 허공을 응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듯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시설에 들러, 가장 먼저 약 복용 차트를 확인했다. 다행히 로버트는 단 한 번도 약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의 병적 증세를 악화시켰을까? 혹시 약물 재사용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일상 속 관계나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인이 필요하여, 곧 ATC 팀에 연락해 마약 검사를 의뢰했고, 3일 후, 검사 결과가 도착했고, 그가 어떤 종류의 마약을 확인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우, 클라이언트의 회복을 위해 더욱 집중적인 관리가 가능한 위기 대응 프로그램(Crisis Residential Program)이나, 단기간 폐쇄병동에 입원해 안정화와 해독을 병행하는 치료 계획이 권고된다. 치료팀과의 논의 후, 로버트에겐 여자친구와의 분리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치료 집중도를 높이는 방안이 제안되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나는 그냥 여기 있을래요. 여자친구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에는 애착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고, 그는 강력히 시설에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개인의 결정권이 중요하기에, 그의 의견을 반영하여, 다시 ATC 팀과 마약 재사용을 막기 위한 교육과 심리적 개입 프로그램을 함께 병행하는 치료를 했다.
시설에 입소한 지 세 달이 지났고, 그동안 지속적인 관리는 이루어졌지만, 폐쇄병동이 아닌 일반 시설에서는 그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즉각적인 행동 개입을 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로버트 씨는 약복용을 중단한 채 마약을 하기 시작했고, 병적 증세가 점차 악화되어,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는 치료팀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자신의 짐으로 방문 앞을 막아 다른 직원들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위협적으로 룸메이트를 방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 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을 질러, 시설 거주자들을 다 죽이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이를 목격한 시설 관리자는 그가 남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여, 72시간 응급입원(5150)을 시켜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시설 거주자들의 안전을 위해 치료팀의 동의하에 로버트 씨의 72시간 응급 입원(5150)이 결정되었고, 슈퍼바이저의 동의서를 지참한 채 시설로 향했다. 현장에서 그의 안정을 돕기 위해 PET 팀에 연락했고, 결국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한 후, 로버트 씨는 모든 치료를 거부했지만 격렬한 저항은 하지 않았고, 병원 측은 그의 상태가 안정되었다고 판단하여 곧바로 퇴원 조치하였다.
이후 시설로 복귀한 그의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같은 일이 반복되며 시간이 6개월 정도 흘렀을 무렵, 자살을 시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그는 하루 종일 울며 극심한 감정 기복을 보였다. 이에 또다시 72시간 응급 입원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병원 정신과 병동은 병상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응급실로 이송되더라도 병원 측은 빠르게 퇴원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며칠 뒤,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병상 부족을 이유로 로버트를 즉시 퇴원시켜야 하니 데려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가 속한 기관은 직원의 안전 문제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병원 퇴원 절차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 측에 일단 시설 관리자에게 차량 지원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겠다고 말하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요청했다.
전화를 끊고 막 시설에 연락을 하려던 순간,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환자가 지금 로비에 있고, 막 나가려는 중인데… 아, 나갔네요. 안타깝네요….”
진짜 안타깝긴 했던 걸까? 그 말은 허탈 그 자체였다. 병원 측은 그를 붙잡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그가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로버트는 또다시 거리로 나가 노숙인이 되었다. 이후 일어날 일은 너무나 예측 가능했다. 마약 사용과 방치된 정신질환으로 상태가 악화되고, 결국 경찰에 의해 다시 입원하게 될 것이다. 몇 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나서야, 집중 관리 프로그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로를 따라가는 클라이언트가 한둘이 아니다.
만약 로버트 씨에게 법적 후견인(conservator)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실제 유사 사례를 보면, 후견인이 병원 측 퇴원 관리자와 직접 연락하여 환자의 치료 이력과 반복되는 악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치료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함으로써 보다 높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로버트 역시 위기 대응 집중 치료팀(Crisis Residential Program 또는 응급 치료 센터 등)으로 연계되어 실질적인 치료 개입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병력이나 경과를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은 겉보기에 조금만 차분해진 모습을 근거로 환자를 즉시 퇴원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환자에게 법적 후견인(Public Guardian)을 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병원 내 퇴원 관리자(Discharge Planner) 인력을 확충하고, 각 환자에 맞는 맞춤형 퇴원 계획을 세워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연계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결국 마약의 위험 속에서 생명을 잃는다. 만약 그들이 적절한 시설과 치료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생명이었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로버트는 중증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그의 병의 증세 때문이지, 그의 의지를 가지고 병원 치료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후견인이 있었다면, 보호자가 있었다면, 병원 퇴원 직전에 개입해 퇴원을 막고, 회복을 위한 다음 단계로 연결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이 실패는 한 개인의 문제로 남겨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사례를 바탕으로, 단기적 응급조치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연속적인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스템 마련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시설과 병원, 법적 보호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퇴원 이후까지를 포괄하는 통합적 케어 모델을 구축하는 것—그것이야말로 더 이상 이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한다.
직업의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신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윤리 원칙이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임상적 통찰과 경험은 모두 제가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고민과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