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 의무와 제도의 사이에 있는 미국 현장 상담사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정신건강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하다에요. 오늘 전해드릴 열 번째 이야기는, 오랜 시간 약물에 의존해 살아온 한 클라이언트의 삶에 대한 이야기예요. 한때 폐쇄병동에 입원하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던 클라이언트가, 자립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집중 관리 보호 시설로 옮겨진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시설의 오래된 출입문 앞, 에밀리는 늘 같은 자리를 지켰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그곳에서, 그녀는 말없이 앉아 졸기도 하고, 먼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기에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에밀리,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식당에 같이 가 줄게요, 가요.”
그녀는 괜찮다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 너머로 무언가 숨기고 있는 말이 있는 듯했다. 그녀가 식사를 거르는 일이 더 잦아졌고, 단순히 입맛이 없는 걸로 보기엔 어딘가 이상해서, ATC 팀에 연락해 마약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양성이었다.
에밀리는 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과거를 이야기하곤 했다. “나, 열여섯 살 때부터 마약 했어. 아마… 처음 사귄 남자친구 때문이었을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질문을 들은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스케이트 타러 가야해요. 이만 가볼게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그녀의 사고 속에서 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끊겼다. 그녀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지도, 마약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0년. 그 사이 에밀리는 폐쇄병동과 거리, 시설을 오가며 긴 시간을 살아냈다. 지금 그녀는 예순이 넘었고, 그녀의 마약 검사 결과가 크게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가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치료 계획을 수정했다. 우선, 주 2회의 개인 상담을 통해 망상 사고를 줄이는 데 집중하기로 했고, 매일 식사 여부를 체크해 달라고 시설 관리자에게 요청했다. 정신과 전문의와도 소통하며 약물 복용 이행도를 점검하고, 필요시 약물 조정이 가능하도록 연계했다
에밀리와의 개인 상담에서 현실 감각 테스트( reality test)와, 인지력 기능테스트를 했을 때, 그녀는 현재가 몇 년도, 몇 월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했고, 전반적인 인지 기능도 평소보다 저하되어 보였다.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은 아닐까?
가볍게 넘기기엔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녀의 차트를 확인하려 했는데, 에밀리의 몸무게가 눈에 띄었다. 처음 시설에 입소했을 때보다 몸무게가 무려 13kg이나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한 달에 1kg씩 조금씩 줄어든 무게는 그동안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곧바로 의료팀에 연락해 그녀의 인지 기능에 대한 테스트를 요청했고, 지금까지 관찰된 변화들을 상세히 공유했다. 그리고는 에밀리의 후견인인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며, 에밀리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눴다. 언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 알았어요 “라고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모두가 클라이언트의 치료에 협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밀리와의 개인 세션에서는 그녀의 마약에 대한 생각, 금단 증상, 대안 행동, 그리고 스트레스 대처법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루려 했지만, 에밀리는 협조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때로는 망상적 사고에 사로잡혀 대화의 흐름은 금세 엉켜버렸다. 계획해 둔 세션은 진행이 되지 않기가 일쑤였다.
그래 클라이언트의 개별성을 존중하기로 했다. 개인 세션의 진행이 불가해, 치료적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적어도 그녀의 ‘건강’만큼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약해진 몸과 혼란스러운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건강이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에밀리는 식사 시간이 되어도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에밀리는 일어나면 혼자 문 밖을 거닐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발견되어도 이미 식사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라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에밀리가 약을 잘 복용하고, 그 약의 도움으로라도 조금은 규칙적인 일상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그녀의 상황을 설명했고, 약 복용의 패턴을 조정해 보기로 했다. 낮에는 졸음을 줄이기 위해 약의 도수를 낮추고, 밤에는 수면을 유도할 수 있도록 도수를 높였다. 치료적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 이 나라는 ‘자율의지’를 아주 중요한 윤리 원칙으로 여긴다. 설령 클라이언트가 잘못 된 판단을 하더라도, 그들의 ‘선택’은 절대적인 존중을 받는다. 그 결과, 클라이언트가 약 복용을 거부하면, 스태프들은 그 자리에서 약을 폐기해 버린다. 물론 모든 스태프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스테프들은 한번 약을 건넨 후,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을 자주목격할 수 있었다.
에밀리는 약 복용을 반복적으로 거부했다. 약을 먹지 않으니 밤에 잠들지 못했고, 밤새 깨어있던 그녀는 낮 시간 내내 잠을 잤다. 그렇게 생활 리듬은 완전히 무너졌고, 치료의 시작점조차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불규칙한 생활은 또다시 치료를 방해했고,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기지 않았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번엔 의료진에게 직접 연계해 치매 검사를 요청하고, 계속해서 줄어드는 체중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결과는 간단했다.
치매 – 모니터 요망, 인지능력 저하.
체중 – 채중 저하로, 영양소가 포함된 음료를 매 끼 제공 권장
하지만 이 조치 하나로 에밀리가 살이 찌고, 밤에 푹 잘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영양 음료를 제공하는 게 전부였다. 상담사로서, 그녀의 사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care coordinator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집중 보호 프로그램은 보통 6~9개월 정도 클라이언트를 지원한다. 하지만 에밀리는 1년 반이 넘도록 여전히 시설에 남아 있었다. 에밀리의 회복은 ‘마약을 사용하지만 병적 증세는 악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멈춰 있었다. 완전한 회복은커녕,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에밀리는 눈에 띄게 마른 몸으로 자주 넘어졌고 그녀의 신체는 90세로 보였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는, 한 번의 낙상이 곧 생의 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처럼 늘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환각 상태로 방에서 나오다 쓰러졌다. 응급실로 실려간, 평가를 마친 뒤, 전문요양시설( Skilled Nursing Home)로 이송되었다. 나는 널싱홈의 사회복지사에게 매주 전화를 걸어, 퇴원 계획이 있는지, 다시 시설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쇠약한 몸과 마음 때문인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퇴원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집중관리 프로그램의 규정은 냉정하다.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30일 이상 입원한 클라이언트는 프로그램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게,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에밀리의 케이스는 정리되었다.
에밀리의 사례를 돌이켜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전문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체중은 줄고, 인지 기능은 저하되고, 자주 넘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요양병원 대신 일반 시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반 시설에 있는 클라이언트가 요양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선, 의료진의 판단과 후견인의 동의, 그리고 보험 조건이라는 세 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설령 의료진과 후견인이 모두 동의한다 해도, Medical과 Medicare 등의 보험이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전문 요양시설로의 전환은 불가능하다. 그 사이, 클라이언트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보호 환경에서 몸도 마음도 점점 쇠약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끝은 아니다. 클라이언트들이 그곳에 입원해 있다가도, 상태가 좋아지면, 비싼 치료비로(정부 제공) 인하여, 클라이언트들은 다시 일반시설로 보내어진다.
상담사로서, 클라이언트를 보호해야 하지만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때, 종종 깊은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보호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보호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참 힘들다.
에밀리의 사례를 통해, 클라이언트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전문적 평가 기관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클라이언트들의 인생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현장에서 클라이언트들을 만나고, 원하는 것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이 작은 기록이 닿아, 든든한 제도적 지원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줄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직업의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신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윤리 원칙이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임상적 통찰과 경험은 모두 제가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고민과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 출처: Pi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