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루틴이 바뀌면, 노후 생활도 바뀐다.

미국 시설에서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후치료가 아닌 선교육이 필요하다.

by HaDa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정신건강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하다에요. 오늘 전해드릴 열두 번째 이야기는, 인지 기능은 정상이지만 일상생활을 스스로 꾸려가기 어려웠던 한 클라이언트의 이야기입니다.

깊은 불신으로 마음을 굳게 닫고 있어, 대화조차 어려워 치료가 어려웠던. 그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마침내 자립에 성공한 변화의 과정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미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늘 자신을 방어하려는 듯 제한된 대답만을 했고, 그로 인해 그녀를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미셀은 자신이 그나마 오래 알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만 대화를 나누고, 함께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피곤하다며 개인 세션에 응하지 않으며 거리를 두었다. 그녀를 만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에서도, 치료적 개입을 시도할 만큼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셀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통합 사례관리자로써 정신과 전문의와의 면담을 제외하고는 병원 동행을 하지 않지만, 그날은 케이스 매니저가 부재중이었기에, 그녀의 병원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차량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만 택시를 태워 보내기에도 먼 거리였기에, 그녀의 동의하에 견인차를 같이 기다리고 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기러 했다.

식당에서도 미셀은 여전히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고, 나 역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상황 속에서 그녀의 불편함을 고려해 치료적 개입은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 그리고 내가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미셀은 내 이야기가 흥미로웠는지 점차 질문을 던지며 대화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 속에서, 미셀은 자신이 원주민(Native American)으로서 살아오며 겪은 고립감과 소외, 그리고 반복적인 트라우마와, 깊은 불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미셀이 처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그녀의 아픔을 나누어 주어서, 우리는 처음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본격적인 치료적 개입이 가능해졌지만, 정신적인 문제 외에도,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오랫동안 다양한 문제를 홀로 감내해 왔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청력이 떨어져 응급실에 간 그녀는 “고막이 이미 망가져 있었고, 꽤 오래전부터 잘 안 들렸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또 다른 날엔 심한 치통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치아는 썩을 대로 썩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뽑고 틀니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식습관에 큰 문제가 있었다. 당뇨 진단을 받고도 하루에 콜라와 사이다를 네 캔씩 마셨고, “단 게 들어가야 기분이 좋아져요”라며 소다를 줄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방 안엔 과자가 가득했고, 건강 교육을 시도할 때면 썩은 이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다 알아."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셀이 마약을 복용하고 오버도스로 쓰러졌다. 평소 마약을 하지 않던 그녀였기에 이유를 확인해야 했다. 3일간 입원 후 퇴원한 그녀 말했다.

“여기저기 아팠는데, 같은 시설에 사는 사람이 20불만 주면 통증이 줄어드는 약이 있다고 해서 먹었어요. 그게 마약인지 몰랐어요.”


잦은 병원 출입, 만성 통증,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방식, 그리고 위험한 약물 사용.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막막함이 앞섰지만, 치료 계획을 다시 세워 그녀가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판단했기에, 그녀에게 맞는 작고 단순한 하루 루틴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특별하고 거창한 변화가 아닌, 그녀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는 루틴. 그것이 바로 치료의 목표가 되었다.


하루 세끼 식사 챙기, 소다를 하루 한 캔으로 줄이거나 무가당 음료 마시기, 과자 대신 조금 더 건강한 식품 선택하기, 가벼운 운동을 포함하여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현실적인 변화들로 그녀의 하루를 채우기러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룹 미팅에서, 치료팀에게 부탁을 했다.


간호팀에게는 당뇨라는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그녀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식습관 교육을 요청했다. 무조건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방식이 아닌, 그녀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일상의 작은 변화가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케이스 매니저에게는 주 2회 산책을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단순히 걸음을 걷는 시간이 아니라, 미셀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시간. 그녀가 억지로 걷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그녀의 흥미와 취향을 반영한 산책이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개인 상담 세션에서는, 그녀의 전반적인 삶의 방향을 함께 세우고, 왜 그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맡았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그녀가 삶의 중심을 잡도록, 작은 실천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치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물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때론 예상하지 못한 후퇴도 있었지만, 치료팀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녀는 케이스 매니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산책을 나서기 시작했고, 식습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관찰되었던 것 같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늘 밖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다른 거주민들의 꼬임에 쉽게 휘말려 이 일 저 일에 가담했던 그녀가, 방 안에 조용히 앉아 TV를 보거나 스스로 몸을 돌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그녀가 조금씩 안정되어 보였다. 그렇게 긍정적인 변화들로 그녀의 하루가 채워지고 있었다.


집중 보호 프로그램은 보통 6개월에서 9개월간의 여정이다. 하지만 미셀에게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의 삶 자체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더 낮은 보호 단계의 시설로의 이주가 결정되어 그녀가 새로운 보호 시설로 이사를 갔다.


그녀가 이사한 시설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가끔 퇴근길에 그녀 생각이 나면, 들러 안부를 묻곤 하는데, 늘 예민하고 날이 서 있던 미셀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한 미셀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고 있는지 얼굴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의 반질반질한 얼굴빛, 자체로 그녀의 회복을 말해준다.


짧은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서는 나에게 그녀가 말한다.

“God bless you.”


통합 사례관리를 하는 상담사로서, 보호 시설에 입소한 클라이언트가 평안해지고, 자립을 준비하며 더 낮은 단계의 보호 시설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이 일의 가장 큰 보람이다. 그리고 미셀은 내게, 건강한 루틴이 사람의 인생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고마운 존재이다.


나의 작가명이 '하다'인 이유도, 명함에 '하다 카운슬링'이라고 새긴 것도 결국은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 아쉽게 느꼈던 점 중 하나는 건강 교육의 부재였다.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질병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건강한 식습관이나 운동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단지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 더 마음에 남았다.


질병에 대한 지식, 음식 선택의 기준,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살아가게 되면 결국 무지에서 비롯된 고통과 선택의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상담사로서, 건강한 루틴이 곧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학교나 직장에서, 연초마다 목표를 정하고 ‘나의 하루 루틴 설계’ 하고 점검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있다면 어떨까. 식습관과 수면, 운동, 정신건강, 원하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시간을 스스로 계획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그 루틴을 되돌아보며 어떤 점이 좋았고, 잘 맞았으며, 보완, 조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단순히 결심을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습관을 실천하고 점검하는 훈련이 포함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훨씬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은 단지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건강한 루틴은 한 번 세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복해서 점검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


하루에 집중 보호 프로그램에서 한 명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그 비용의 절반만이라도 건강 교육에 투자된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구역의 학교나 직장, 또는 교육이 필요한 지역사회 기관에 전문 멘토를 초청해 건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

후 치료가 아닌 선교육, 즉 아프고 나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기 전에 예방하고 돌보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지금처럼 치료비와 복지비용이 반복적으로 소모되는 악순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삶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 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사회가 함께 고려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직업의 특성상 클라이언트의 신원 보호는 매우 중요한 윤리 원칙이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임상적 통찰과 경험은 모두 제가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 고민과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 출처: Pi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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