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은 '이름만 아는 타인'들로 가득 찼다. 생일이면 기계적으로 주고받는 기프티콘, 단톡방의 의미 없는 대화들에 대답하느라 정작 내가 좋아하는 책 한 페이지 읽을 시간은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내 인생의 거실이 너무 많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는 것을. 정작 주인인 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인맥이 곧 자산인 시대를 산다. 넓고 얕은 관계가 능력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나는 '마당발'이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 기꺼이 나의 저녁을 반납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나면, 마음 한구석은 늘 허기졌다.
나를 진짜로 아껴주는 사람들은 내가 화려한 파티에 초대하지 않아도 곁에 있을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내가 조금만 연락이 뜸해져도 "변했다"며 손가락질할 사람들은 결국 내 인생의 배경화면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거실에서 주인 행세를 하던 불필요한 가구들을 하나둘 내놓기로 했다.
식물도 더 크고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아픈 마음을 누르고 가지를 쳐내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을 내 삶에 담으려다가는 정작 소중한 사람들을 담을 공간이 없어진다.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미안해서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을 제안들에 "죄송합니다, 지금은 제 에너지가 부족해서요"라고 답한다. 놀라운 건, 그렇게 선을 긋는다고 해서 내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은 나의 '선'을 기꺼이 인정해주었다. 그 선을 넘으려 애쓰는 사람들은 애초에 내 삶에 둘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다정함에는 이제 '우선순위'가 있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같은 친절 대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포장한 선물 같은 마음을 준비한다.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까지 미소 지어주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에너지를 아껴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한 번 더 하고, 지친 친구의 어깨를 한 번 더 다독인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내가 선택한 사람들에게만큼은 '최고의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관계의 가지를 쳐내고 남은 자리에는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은 고독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평온함이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잊고 지냈던 나의 취향,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들, 그리고 고요함 속에서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가 그 여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누군가 나를 '까칠하다'거나 '차가워졌다'고 말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세운 건강한 울타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의 거실을 정리한다. 먼지 쌓인 인연은 털어내고, 억지로 채워 넣었던 의자는 치워버린다. 그리고 비워진 그 자리에 앉아 오로지 나만의 호흡을 즐겨본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내 곁에 남은 이 소중한 온기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따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