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는 순간이 진짜 내 삶이다

by KELLY

우리는 ‘존재 증명’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심지어 어떤 생각을 했는지조차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되어 클라우드에 박제된다. SNS의 타임라인은 나의 성실한 기록자이자 동시에 나를 감시하는 가장 지독한 간수가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순간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되는 세상에서, 나는 오늘 문득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주는 서늘하고도 짜릿한 해방감을 떠올린다.


전시된 삶의 피로도: 당신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우리의 여행은 풍경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시간이 되었고, 우리의 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행위가 아니라 구도를 잡는 노동이 되었다. 타인의 ‘좋아요’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틈새까지 필터를 입히고 보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교하게 가공된 기록들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남들의 기억 속에 근사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정작 나 자신의 오늘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잊혀지는 것에 대한 공포는 우리를 끊임없이 무대 위로 내몬다. 하지만 무대 조명이 꺼진 뒤의 정적을 견디지 못하는 배우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진짜 삶은 카메라 렌즈가 닿지 않는 곳, 기록 버튼을 누르지 않은 찰나의 침묵 속에서 비로소 고개를 든다.


이름 없는 이방인이 누리는 최고의 사치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리가 느끼는 해방감의 본질은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어떤 표정을 지어도 그들은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곧 나를 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잊혀지는 안도감’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오로지 나의 호흡과 나의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기록되지 않기에 오히려 영원히 내 영혼의 깊숙한 곳에 새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는 행복이야말로 가장 밀도가 높고 순수하다.


고독은 고립이 아니라 온전한 정박이다


사람들은 잊히는 것을 ‘고립’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박’에 가깝다. 타인의 기억이라는 출렁이는 바다 위를 떠돌던 마음이, 마침내 ‘나’라는 단단한 육지에 닻을 내리는 과정이다.


누군가의 팔로워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내일이면 사라질 휘발성 정보들에 내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세상이 나를 잊어도 내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잊혀질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연기가 아닌 ‘진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다시, 비밀스러운 나만의 방으로


나는 이제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휴대폰을 내려놓고 온전히 혀끝의 감각에 집중한다. 멋진 노을을 마주했을 때 렌즈를 통하지 않고 생생한 눈으로 그 붉은 빛을 마신다.


나중에 누군가 오늘 어땠느냐고 물었을 때, "사진은 없지만 정말 최고였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여유. 기록되지 않았기에 오직 나만이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그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쌓여갈 때, 내 삶은 비로소 타인의 전시물이 아닌 나만의 보물상자가 될 것이다. 오늘 하루,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 하나쯤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당신의 마음속에만 가만히 숨겨두는 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사라진 시루떡과 굳게 닫힌 도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