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라는 이름의 섬
이삿짐 트럭이 떠난 자리, 뽀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접시에 담아 이웃집 벨을 누르던 풍경은 이제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붉은 팥고물이 뚝뚝 떨어질까 조심스레 들고 있던 그 접시 위에는 떡만 담겨 있었던 게 아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수줍은 첫인사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살아요"라는 투박한 연대의 선언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관문 앞에는 시루떡 대신 '택배 상자'와 '층간소음 항의 포스트잇'만이 적막하게 자리를 지킨다.
조상들은 이사 후 시루떡을 돌리며 붉은 팥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팥이 막아준 진짜 액운은 귀신이 아니라 이웃 간의 '단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다는 불안감, 그 낯섦이라는 차가운 기운을 시루떡의 온기로 녹여냈던 것이다.
떡 한 접시를 주고받는 순간, 옆집 사람은 '누군지 모를 타인'에서 '떡을 나눠 먹은 이웃'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한 번 얼굴을 익히고 나면, 밤늦은 망치 소리에도 "무슨 수리를 하나 보네"라며 조금 더 너그러워질 여유가 생긴다. 시루떡은 현대의 보험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보증하는 '심리적 안전장치'였다.
2026년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며 산다. 지문 인식, 안면 인식, 그리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홈 CCTV. 하지만 보안이 강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마음은 더 취약해진다. 옆집에서 큰 소리가 나도 무관심이 미덕이라 믿으며 귀를 닫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 고립되어 층수 표시기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우리는 '시루떡을 돌리는 번거로움'을 버린 대신 '이웃에게 도움을 청할 권리'도 함께 잃어버렸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외부인을 막아주지만, 동시에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좁게 만든다. 시루떡이 사라진 복도는 너무나 깨끗하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시리다.
물론 시대가 변했다. 이제 와서 갓 쪄낸 떡을 들고 불쑥 이웃집 벨을 누르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고, 받는 사람도 찝찝해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루떡의 마음'까지 폐기할 필요는 없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건네는 짧은 목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손길, 혹은 이웃집 아이의 웃음소리에 작게 미소 지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2026년식 '디지털 시루떡'이다. 팥고물처럼 끈적한 유대감은 아닐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최소한의 다정함. 그 사소한 온기만으로도 삭막한 아파트는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된다.
주제가 바닥나 고심하던 밤, 문득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생활 소음에 귀를 기울여본다. 저 벽 너머에도 나와 닮은 누군가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겠지. 비록 접시에 담긴 시루떡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나마 옆집에 따뜻한 떡 한 조각을 건네본다.
우리는 모두 각자라는 섬에 살고 있지만, 그 섬들을 잇는 것은 거창한 교량이 아니라 아주 작은 관심의 떡 조각들이다. 오늘 밤, 당신의 이웃에게 시루떡 대신 다정한 눈인사 한 번을 예약해보는 건 어떨까.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의 내일을 조금 더 쫀득하고 달콤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