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는 간격, 무거워지는 마음

by KELLY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열정은 마치 매일 아침 구워져 나오는 따끈한 빵 같았다. 소재는 넘쳐났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가벼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포스팅 주기가 슬금슬금 늘어나기 시작한다. 3일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보름이 될 때, 우리 안에서는 미묘한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단순히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는, 공백이 길어질수록 첫 문장을 떼기 위해 지불해야 할 '심리적 입장료'가 비싸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교묘한 게으름


포스팅이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있다. 공백이 길어지면 독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졌을 것 같고, 오랜만에 올리는 글인 만큼 훨씬 더 깊이 있고 기깔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누른다.


이것은 일종의 '완벽주의를 가장한 게으름'이다. 최고의 소재를 찾기 위해, 최적의 문장을 고르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고 자위하지만 실상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키보드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훌륭한 한 편을 위해 열 편의 어설픈 글을 포기하는 순간, 창작의 근육은 서서히 퇴화하기 시작한다. 거창한 걸작을 꿈꾸느라 사소한 기록의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자문이 필요한 지점이다.


흐름이 끊긴 자리에는 잡초가 자란다


글쓰기에도 '결'이 있고 '리듬'이 있다. 매일 혹은 규칙적으로 글을 쓸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소재로 보이지만, 한 번 흐름이 끊기면 일상의 비범함은 자취를 감추고 지루한 반복만 남는다.


길어진 포스팅 주기는 나를 기다려준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에 생채기를 낸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다음에 더 잘 쓰면 되지"라는 타협은 "안 써도 사는데 지장 없네"라는 체념으로 변질되기 쉽다. 창작자의 성실함은 재능보다 위대하다. 잡초가 자란 마음의 밭을 다시 일구는 유일한 방법은, 세련된 농기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호미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하는 무식한 성실함뿐이다.


다시 '가벼운 손가락'을 회복하는 법


반성은 짧을수록 좋고, 실행은 즉각적일수록 좋다. 길어진 주기를 만회하기 위해 대단한 서사시를 쓸 필요는 없다. 지금 느끼는 이 부끄러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 간절함, 혹은 오늘 마신 커피의 온도처럼 아주 사소한 것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100점짜리 침묵보다 50점짜리 소음이 낫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일단 무엇이라도 적어 내려갈 때, 멈췄던 관성의 바퀴는 다시 구르기 시작한다. 공백을 메우는 건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 단어 하나를 꾹꾹 눌러 담는 당신의 '정직한 등'이다. 길었던 쉼표를 찍고, 이제는 다시 문장을 이어가야 할 시간이다.


자책은 여기까지, 이제 로그온할 시간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뜨끔했다면, 당신은 이미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포스팅 주기가 길어졌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라. 그 공백 또한 당신이 더 깊은 생각을 담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쉼터였다고 믿어주자.


다만, 그 쉼표가 마침표가 되지 않게 오늘 딱 한 단락만이라도 세상 밖으로 내보내자. 당신의 다음 글을 기다리는 건 구독자들뿐만이 아니다. 바로 '다시 창작의 희열을 느끼고 싶은 당신 자신'이다. 자, 이제 발행 버튼 근처에서 서성이던 손가락에 힘을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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