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공기 속의 미지근한 약속

by KELLY

유난히 길고 무겁게 느껴지던 코트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쯤, 우리는 직감합니다. 겨울이라는 거대한 막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요. 여전히 영하의 기온은 살을 에는 듯하지만, 퇴근길 뺨을 스치는 바람의 질감은 왠지 모르게 뭉툭해졌습니다. 한겨울의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면, 지금의 바람은 둔탁한 손길로 어깨를 툭 건드리며 지나갑니다. "이제 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계절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겨울의 끝자락입니다.


빛이 먼저 닦아놓는 봄의 길목


우리가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채는 곳은 온도계가 아니라 '하늘'입니다. 한겨울엔 오후 5시만 되어도 세상이 어둠에 잠겼지만, 이제는 옅은 오렌지빛 노을이 꽤 오랫동안 지평선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 '길어진 빛'은 우리에게 은밀한 약속을 건넵니다. 아직은 춥지만, 너의 하루는 조금 더 밝아질 준비가 되었다고 말이죠. 눈에 보이는 초록은 없어도, 투명한 공기를 가르고 쏟아지는 빛줄기는 이미 얼어붙은 땅 밑으로 봄의 소식을 부지런히 실어 나릅니다. 이 '예감의 시간'이야말로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설레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두꺼운 방어막을 거두고 '환기'할 시간


겨울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껴입어야만 버틸 수 있는 계절이었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겹쳐 입듯, 우리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겹을 두껍게 쌓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무관심으로, 혹은 냉소로 스스로를 방어하며 긴 밤을 견뎌왔던 시간들. 하지만 겨울 막바지에 서면, 그 두꺼운 방어막이 슬슬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마음의 창을 열고 환기를 시작할 때입니다. 겨울 내내 우리를 짓누르던 고민들, 환기되지 않은 채 방구석에 쌓여있던 낡은 생각들을 하나둘 꺼내어 햇볕에 말려야 합니다. 계절을 배웅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투를 가벼운 것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절이 머물 자리를 정성껏 비워두는 일입니다


멈춤이 아닌, 가장 뜨거운 '응축'의 마침표


사람들은 겨울을 멈춤의 계절이라 말하지만, 사실 겨울만큼 치열하게 움직이는 계절도 없습니다. 메마른 가지 끝의 눈(芽)은 영하의 고통 속에서 봄에 터뜨릴 초록색 에너지를 응축하고, 얼어붙은 땅 밑의 뿌리는 수분을 길어 올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합니다.


당신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지난겨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 정체기에 괴로워했다면 기억하세요. 그 시간은 정지가 아니라 가장 화려한 비상을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응축의 시간'이었습니다. 겨울 막바지의 시린 공기는 당신이 곧 맞이할 봄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기 위한 마지막 담금질일 뿐입니다.


당신의 봄은 이미 당신 곁에 와 있습니다


여전히 눈이 내릴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꽃샘추위가 발목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절의 수레바퀴는 결코 뒤로 돌지 않습니다. 겨울이 가장 깊었다는 것은, 곧 봄이 가장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견뎌온 그 단단한 인내의 시간 위로, 이제 곧 연한 초록의 생명력이 돋아날 것입니다. 지난겨울 당신을 춥게 했던 모든 기억에 이제 가벼운 작별 인사를 건네보세요. 당신의 봄은 눈부시게 찬란할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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