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이 가르쳐준 '나의 데케이드
와, 이게 얼마 만인가요. 컵에 맺힌 차가운 이슬, 코끝을 톡 쏘는 특유의 향, 그리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뜨겁고도 짜릿한 느낌. 무려 10년입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스마트폰 기종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 제 입술 근처에도 오지 못했던 그 '액체'를 오늘 드디어 마주했습니다. 첫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제 뇌세포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는 것 같더라고요. "주인님, 대체 지난 10년 동안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하고 말이에요.
10년 만에 마신 술은 단순히 알코올 맛이 아니었어요. 그건 '시간의 맛'이었죠. 20대의 제가 마시던 술은 '객기'와 '부어라 마셔라'의 맛이었다면, 오늘 마신 술은 왠지 모르게 훨씬 묵직하고 복잡한 맛이 나더라고요.
한 잔이 들어가자마자 신기하게도 10년 전의 제 모습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그때의 나는 뭘 위해 그렇게 치열했는지, 왜 술 한 잔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고 자신을 몰아세웠는지. 오늘 마신 이 한 잔은, 그동안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제 인생의 활시위를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는 '나 자신과의 화해'처럼 느껴졌습니다.
10년 전에는 서너 병을 마셔도 다음 날 멀쩡했는데, 이제는 겨우 한두 잔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네요. 처음엔 '아,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싶어 조금 서글펐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예전엔 취하기 위해 마셨다면, 지금은 '음미하기 위해' 마실 줄 아는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적당한 선에서 잔을 내려놓을 줄 아는 절제력. 이건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해온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기깔난 훈장 같은 거잖아요. 10년 전의 저였다면 절대 몰랐을 이 '적당함의 미학'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10년의 금욕(혹은 절주) 끝에 마신 이 한 잔이 앞으로 제 삶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겠어요. 다시 예전처럼 애주가가 될 수도, 아니면 다시 10년의 휴식기에 들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 이 한 잔 덕분에 제 일상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변했다는 거예요.
맨정신으로는 절대 하지 못했을 쑥스러운 고백이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말랑말랑한 감정들이 술기운을 빌려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나를 좀 풀어줘도 괜찮겠구나'라고요. 10년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가장 기깔난 선물, 그거 오늘 제대로 한 것 같네요!
10년 만에 술잔을 잡은 당신의 손이 조금은 떨렸을지도, 혹은 아주 담담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한 잔을 비워낸 당신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오늘 밤은 숙취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기분 좋게 달아오른 그 온기를 온전히 누려보세요. 당신의 10년치 노고를 그 술잔에 다 털어버리고,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깨어나길 바랄게요. 자, 10년 만의 재회를 축하하며, 당신의 눈부신 앞날을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