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 때 스스로 부모나 국가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이 들고 세상의 이면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한국인'이라는 이름표가 생각보다 꽤 높은 당첨금의 복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이른바 '헬조선'이라 불리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사실 그 고통조차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과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 부리는 배부른 신음일지 모른다는 부끄러운 자각 말이죠.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걸고 쟁취해야 할 꿈의 종착지일지도 모릅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릴 때 집 앞 병원을 찾아 몇 천 원에 진료를 받고, 캄캄한 밤에도 이어폰을 낀 채 골목길을 걸어 귀가하는 것. 아프리카의 오지나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거나,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안전'과 '의료'라는 시스템은 사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 든든한 보험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 가진 게 많지 않더라도, 국가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나의 생존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가난도 뼈아프고 고달픕니다. 하지만 이곳엔 최소한의 재기를 꿈꿀 수 있는 '도구'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도서관,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 그리고 웬만한 곳에선 다 터지는 초고속 인터넷까지. 이런 인프라들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세상과 연결될 끈을 놓지 않게 도와줍니다. 아프리카의 척박한 땅에서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태어났다면 마주했을 '절대적 빈곤'에 비하면, 우리가 겪는 결핍은 어쩌면 극복 가능한 '상대적 고난'에 가까울 것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단순히 살기 편한 나라를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하는 '힙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해외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호의를 얻고, 우리가 만든 문화에 열광하는 이들을 만나는 건 꽤나 든든한 경험입니다. 이는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우리 세대가 전 세계라는 더 넓은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프리패스'가 되어줍니다. 우리가 선 출발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우리는 그 위에서 각자의 속도로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이 사회에 느끼는 갈증과 피로의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치열함은 우리를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단련시켰습니다. 완벽한 낙원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은 우리가 넘어져도 아주 깊은 수렁으로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견고한 요새와 같습니다. 이 행운 같은 배경을 발판 삼아, 이제는 자책보다는 내가 가진 '기본값'들을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 고민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당신이 오늘 무심코 마신 깨끗한 물 한 잔과 안전하게 보낸 하루가 사실은 당신에게 주어진 커다란 행운의 증거입니다. 당신은 이미 꽤 괜찮은 패를 쥐고 인생이라는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당신 뒤엔 이 땅이 일궈온 수많은 인프라와 기회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가볍고 단단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