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찾아오는 시간

by KELLY

어둠은 늘 갑작스럽게 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천천히 스며듭니다. 해가 기울고, 창밖의 색이 옅어지고, 익숙하던 풍경이 조금씩 윤곽만 남길 때 우리는 비로소 어둠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의 어둠도 비슷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 같아도, 돌아보면 오래전부터 조용히 자리를 넓혀 오고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둠은 무섭기만 한 존재라기보다,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한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분명해집니다. 길도, 표정도, 앞으로 무엇이 있는지도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쉽게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지금은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시기,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겠는 날들이 있어도 그 시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환하게 보이는 낮보다,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 천천히 자신을 만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둠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밝은 낮에는 자꾸 앞으로 가야 할 것만 같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등을 떠밉니다. 하지만 어둠이 오면 속도를 낮추게 됩니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들리지 않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어쩌면 어둠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 주기 위해 오는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하루였더라도, 버티고 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 있다는 걸 어둠은 조용히 알려줍니다.


함께 견디는 밤의 힘


신기하게도 사람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 누군가의 작은 온기를 더 선명하게 느낍니다. 낮에는 스쳐 지나갔을 말 한마디가 밤에는 오래 남고, 별것 아닌 위로가 이상할 만큼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괜찮아”라는 흔한 말보다 “오늘 힘들었겠다”는 짧은 공감이 마음을 붙잡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어둠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 같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존재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완벽한 해결책이 없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견딜 수 있는 밤이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밤은 지나간다


우리는 어둠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살아 냅니다. 하지만 밤이 길다고 해서 아침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빛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는 조급함보다,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속지 않는 일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조금 흐리고 무겁더라도,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의 어둠은 오늘의 어둠일 뿐, 내일의 빛까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너무 단단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흔들리면서도 하루를 건너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어둠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며 배워야 하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약해지는 법이 아니라, 약한 채로도 버티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니 마음이 조금 캄캄한 날이 와도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든든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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