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연이라 함에

by 현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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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내가 여러 갈래갈래의 길을 선택하고

그 사이를 건너오며

내게 생기는 역경과 고난과 성취는

어쩌면 누군가의 오만함에서 시작되어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증오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고통을 품지 않아도

결국 모든 건 인과응보의 결과에 따라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있다 믿는다


이 또한 증오를 미루는 게 아닐까 하는 혼돈 속에

한마디 하자면

나는 증오를 미루고 빈정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주고 손 내민 것뿐이었다


나는 내 삶을 돌아봤을 때

과거가 아팠던 적은 있어도

그 과거를 없애거나

다시 돌아가 현재를 바꾸고 싶지 않다


아픈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든다

아픈 상황은 미래의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그렇게 내가 되는 과정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내 미래를 점쳐주거나

내 이름, 나의 전생을 엮어

사주풀이를 해준다 하면

나는 그 사람을 해하여서라도

결단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무속인이나 어느 종교인을 비하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 불확실한 미래를

직접 헤엄쳐가며 아프고 싶다

아파야 성장할 수 있음에

나는 현재 나의 고통이 감사하다


누군가가 정해준 인과 연의 끝

아마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 누군가는 아마 미래의 나일 것이다


한때 귀인이라 함은

평생토록 지니고 지켜야 그 의미가 있다고

마음속에서 품고 있던 생각이 있다


일생을 살면서 몇 안 되는 귀인은

사실 내 곁에 평생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내가 참 좋아하고 아끼는 단어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단어이다


그 말의 뜻풀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을 생각하면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인 듯하다


다시 돌아와서, 귀인이라 함은

그분이 내 삶에 머물러있는 시간의 길이에

국한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그 시기에,

그 사람이 내 삶의 길에 잠시 머물다 가는데,

그때의 내가 어떻게 변화하던지 간에

모든 것은 그 사람들과 나의 선택들의

빛나는 합창의 결과였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게 누가 되었든

그는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다


물론 당장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이

죽도록 밉더라도

무언가 그 상황을 이겨내면

내가 얻게 되는 게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각자가 모두

자기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써 살아간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표와 성취를 위해

누군가는 가족의 평안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누군가는 무탈한 삶이 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본인만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삶의 목적을 달리하고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이 모든 건 인과 연에 의해서 말이다

내가 이 시기에 이 사람을 만났던 건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있음이라,

혹여 내가 지금 당장 그 이유를 모른다 해도 괜찮다


누군가 는 이미 나였음을 알았고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또 나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인이라 함은 귀한 사람,

귀한 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들로 미루어보면

이 세상에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귀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는 생각까지 도달한다


나는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

지하철에서 잠시나마 옷깃을 대며 서있던 사람,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청소아주머니,

버스옆자리에 앉게 되는 그 누군가까지

어쩌면 전생에 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보니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같이 일을 하는 팀원들이나

같이 사는 가족들, 내게 소중한 수많은 인연들이

그에 비하면 얼마나 더 큰 귀중함을 지닌 건지

더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렇기에 소중한 인연이라 함은

그 무게가 가히 무겁고도 무서운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소중한 것을 놓칠까 잃을까 걱정한다


지금의 나 또한 그렇다

시절인연이고 뭐고

사실 급박한 상황이 되면

그 누구나 붙잡고 싶지 않을까?


가족의 병상소식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사는 나에게

충분히 두려운 행보다

이 소중함을 더 놓치지 않고 싶다


인과 연

정말 그런 게 존재한다면

나는 걱정한 대로 일어나 버린 일 말고

기대와 달리 좀 힘든 일이 생긴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간다

마음속에 불안과 불편을 심지 말고

평안과 행복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내가 마음에 새겼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에 존재하는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고통이 존재하는 것

그 말을 곱씹으며 이 불안을 가라앉혀야겠다


이기적 이게도 모두가 그렇듯

나의 소중한 인연은 참 특별하다

아프지 않기를

그 누구보다 덜 아프기를 바라게 된다


미래의 우리를 위해

미래의 엄마를 위해


나의 영원한 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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