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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훈 Jun 26. 2024

길상사의 개망초

맑고 향기롭게 반찬조리장에 핀 개망초 단상

길상사의 개망초     

6월이 깊어 갈 무렵이면 사람이 경작하지 않는 시골의 거의 모든 공터에서, 심지어 도시의 좁아터진 공간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일반적으로 잡초라 불리는 풀에서 피는 흰 꽃이다. 그 풀의 이름은 개망초. 로제트형태로 겨울을 난 후 가는 줄기를 길게 올리다가 두세 개의 줄기로 갈라지고 갈라진 가지 마다 3~4개의 작은 꽃을 피운다. 흰색의 꽃잎 수십 장이 방사선으로 둥글게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관상화가 노랗게 빛나서 마치 계란 후라이처럼 생긴데서 일명 ‘계란꽃’이라고도 불린다. 오늘 개망초를 만난 곳은 길상사에 접해 있는 맑고 향기롭게  반찬조리장이었다. 

개망초

비바람을 가릴 정도였던 조리장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였다. 배수구를 정비하여 물 빠짐이 시원하다. 화장실을 새로 들이고, 냉방기를 달았다. 실내는 그대로여서 460여 명 몫의 반찬을 만들기는 여전히 면적이 보족하다. 그러나 6월 초인 지금은 조리장 밖에서 나물을 다듬기도, 씻기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겨울에 비하면 여유가 있다. 조리장은 남측과 서측으로 주로 출입을 하는데 그 출입구는 커다란 슬라이드형의 철문으로 되어 있다. 출입문을 지지해 주는 사각형의 쇠기둥이 모서리에 세워져 문을 고정하면서 천정을 바치고 있다. 


바로 그곳에 그 꽃이 피어 있었다. 

아스팔트의 작은 틈에 뿌리를 내린 한 포기의 풀이 쇠기둥에 기대어 누가 봐주지도 않은 사이에 앙증맞은 하얀 꽃을 피웠다. 나는 2주일 동안 이곳에 오지 못했으므로 꽃이 정확히 언제 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꽃이 핀지는 채 몇 일이 되지 않는 듯하다. 가지 맨 위의 꽃만 활짝 피어 있고 바로 아래에는 옹종종한 꽃망울들이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 나는 조리장에 도착하면서 그 꽃을 보았다.

“아야 개망초야 안녕? 여기에서 피었구나.” 

데친 나물을 수돗가에서 씻는 일을 하던 한 봉사자가 그 일이 끝나자 다른 일거리를 찾아서 허리를 펴신다. 그러다 그 꽃을 보았나 보다. 

“어머 여기에 꽃이 있네요” 

“예, 이쁘죠? 개망초라는 이름의 꽃입니다. 우리 야생화들이 보잘것없는 듯해도 자세히 보면 아주 이뻐요” 

“이름이 너무 예쁘네요” 

그렇게 두런대던 그이는 허리를 숙여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그이의 얼굴이 급히 어두워진다. 

“줄기에 진딧물이 너무 많아요. 꽃이 힘들겠어요.” 

꽃이 달린 부드러운 줄기에는 연한 갈색의 작은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진딧물과 공생하는 개미가 그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진딧물과 개미를 줄기에서 떼어내고 꽃을 깨끗이 씻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 꽃은 좋겠지만 거기서 살아가는 개미와 진딧물은 어쩌라고요? 보기 좀 그렇지만 이것이 자연인 듯하네요” 

“그렇긴 해도.... 그래도 씻어 주고 싶어요.” 

잠시 후 햇볕 가득한 수돗물과 봉사자의 부드러운 손길에 개망초가 목욕을 한다. 진딧물과 개미가 보이지 않는 개망초의 줄기와 꽃은 조금 전보다 훨씬 싱그러웠다. 그렇게 개운해하는 표정이라니!! 

조리한 반찬을 천 가방에 담아 묶고 커다란 적갈색 프라스틱통에 담아서 조리장 바깥으로 옮긴다. 이제 오늘의 반찬 만들기 과정의 마무리 단계이다.  반찬 꾸러미를 25개 동별로 구분하여 알록달록한 소쿠리에 담으며 조리장 밖에서 분주히 오가는데 문득 두 봉사자의 대화가 바람에 실려 온다. 

“어머, 여기 꽃 좀 봐.” 

“그래, 그런데 더 이뻐진 것 같지 않아?” 

“맞아, 아까는 개미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이네!” 

그들의 뒤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두 사람은 마음의 한 자락을 부지불식간에 들킨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았고, 신기해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뭔가 아주 소중한 비밀을 공유한 듯하였다. 


조리장 바닥을 물로 씻을 때, 내 속이 깨끗이 씻기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며 오늘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모두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며 조리장을 나서려던 나의 발이 얼어붙었다. 

사각기둥 옆, 아스팔트 틈에서 뿌리를 내린 한 포기 풀, 조금 전에 개미와 진딧물을 희생 삼아 깨끗해진 꽃. 개망초. 그 꽃이 보.이.지.않.는.다! 옷을 갈아입는 그 짧은 틈에 흰 꽃과 꽃봉오리를 조롱조롱 달고 있던 개망초가 깜쪽같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빈 햇살만 서성인다. 이런 이런!!!

여기는 맘이 따뜻한 사람들이 주로 있는 곳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래 누구에게는 귀한 꽃일지라도 또 누군가의 눈에는 뽑아버려야 할 잡초로 보였나 보다. 내 눈에는 꽃이었다. 그 꽃이 순식간에 뽑혀 나간 것에 대한 이해 여부와는 다른 범주에서 너무나도 강렬한 명암의 대비에 잠시 시력을 잃은 듯하였다.


개미와 진딧물과 개망초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두런대던 마음만 남은 6월 한낮의 길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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