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산사를 향해 길을 나서다(2)

마음 따라 길을 나선 자가 느낀 시간 한 조각

by 구자훈


11월 21일(금요일)

밤새 악몽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섬뜩함으로 잠을 설쳤다. 새벽에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뜰로 나갔다. 어지러운 꿈을 털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악몽에 쫓겨 뜰에 나섰는데,

새벽 공기는 마가목 향기를 앞세우고

호박 같은 별은 하늘을 가득 채웠다


겨울 나뭇가지에 총총총

서쪽 산등성이에 총총총

칠 형제 북두칠성 총총총


깊은 산속 오두막 산사에 든

선객은 잠자리 뒤척였는데

샛별 마중하란 뜻이었나 보다


악몽도, 마가목도, 호박 별도

총총하거라

청원한다.



나쁜 꿈에 등 떠밀려 뜰로 나선 새벽에, 하늘에서 벌어지던 별 잔치에 놀라며 시작한 둘째 날.

망경산사 새벽 별

몸이 아프다.

잠시 앉았다 일어설라치면 ‘아이고’ 소리가 앞서 나오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하늘과, 서늘하되 그리 춥지 않은 온도와, 조금씩 불며 존재감을 말하는 부드러운 바람. 과히 완벽하다.

아침 찬은 어제저녁과 다르지 않다. 어제의 허기를 생각하며 좀 더 먹었다. 절집에서 뭔가를 많이 먹는 거는 왠지 죄스러운데도 말이다. 큰 스님은 어제저녁부터 보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일하고 먼지와 땀만 닦아내면 언제 험한 일을 했느냐는 듯이 말끔하시다는 큰 스님.

등인스님, 청하스님, 정우스님.

세 비구니스님의 법명이다. 아침 공양 후 전직 교사라는 부부 봉사자에게서 들었다. 내가 메일을 보내고 받는 분, 나와 통화한 분, 어제 마가목 편을 만들고 계셨던 분. 그분이 청하스님이다.

스님과 일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님과 소풍놀이 온 듯 편하다.



오늘 막일꾼은 3인조이다. 청하스님, 보살 한 분, 나.

산더미처럼 쌓인 친환경 비료(발효 계분)를 꽃밭(나물밭)과 나무에 뿌린다. 지난봄과 여름 내내 여기저기에 피어있던 꽃들, 좀뒤영벌이 드나들던 용담의 짙은 청보랏빛 신비한 꽃도 오늘처럼 일하는 손들의 보살핌이 있었음을 안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친환경 거름

거름 주기로 하루가 마무리되기 직전, 거름을 가득 싣고 돌자갈과 나뭇가지를 뚫고 밭둑을 내려오다가 외발수레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아고 힘들어’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는데

“이제 지치신 거야”

청하스님의 미안함과 걱정이 섞인 말씀이다.

아침부터 시작한 거름 주기를 오후 4시 반이 넘도록 쉼 없이 하였으니 지친 게 맞다.

그러나 나는 어제, 오늘 이틀이지만 이분들은 내일도, 모레도 그냥 일상처럼 하실 일들인데. 자꾸 마음이 짠해진다. 늦은 저녁 공양을 하면서 청하스님께 한마디 한다.

“역시 생각한 데로군요”

“무슨 뜻이죠?”

비구니 세분이 이 넓은 밭일을 어떻게 다 하셨을까 싶었던 안쓰러움이 처음 여기 왔을 때 내 마음에 짐처럼 남았었는데, 겪어보니 사실이었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리니 조용히 웃으신다.



“저녁 석양이 아름다울 때, 그것을 마음에만 두기에 아까워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 말로 뭐라 표현을 못하겠는데 아무튼 아름다운 순간이 있어”

어제 점심 공양 때 등인스님의 말씀이다. 거름 주기가 끝나고 장비 정리 등 마무리가 남았을 때 청하스님이 석양을 말씀하신다.

“석양을 보시려면 지금 가야 할 시간입니다”

해는 벌써 산등성이 바로 위로 내려와서 부드러운 빛으로 대기를 쓰다듬고 있다. 양해를 구하고 즉시 큰스님이 밤을 지내신다는 망경사로 향했다.

망경산사 뒤쪽 산속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차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곳까지 차로 가고, 거기서부터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오르자 그 길의 끝에 외딴섬 새집 같은 작은 절이 있다.



“스님, 스님”

목소리를 높여 두어 번쯤 부르자 문이 열리며 보살 한 분이 얼굴을 내민다.

그 방에 등인스님이 좌정해 계신다. 산을 등지고 있는 스님의 자리에서는 굽이치는 산등성이가 아래로 보이고, 붉게 빛나는 해가 아주 나직하게 산등성이 위에 걸려있다. 들어와 차 한잔하라는 말씀에, 나는 엉거주춤 방에 들어가 앉았다. 큰 스님이 내어주신 오가피차에서는 급히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숨결에 쓴맛이 비치더니, 방안 공기에 젖어 숨이 가라앉자, 단맛이 난다.


“석양을 보면 늘 밖으로 발산하던 햇빛이 어느 때, 어느 순간에는 그 빛이 안으로 응축될 때가 있어.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장엄한데, 그래서 사진이라도 찍을까? 하면 금방 사라지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석양이야.”

“이 집이 동향이었고 떠오르는 해를 매일 보고 있었으면, 자꾸만 일어서고 싶고, 나서고 싶어질 것 아니겠어. 내 안을 바라보며 기운을 안으로 응축할 때인 걸 몰랐을 수도 있었을 거 아냐.”

방 정면으로 보이는 해는 잠자리를 찾아가는 새처럼 산등성이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 집이 서향이어서 다행이야. 인생의 마무리 시기를 알려주거든.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는 대신에 내 안으로 수렵할 때야”

“해가 질 때 보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참 빨라. 우리의 남은 시간이 저렇지. 그대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거 같아? “

침묵이 방을 감싼다.



해는 참 빨리 산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해가 지면 해는 안 보이고 잔상만 남잖아. 본모습은 없는데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울며불며 안달하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고”

여승 세 명이 마음을 모아 남자 한몫한 이야기, 힘들다고 일꾼이 떠나고 시멘트를 등짐으로 나르며 절을 지으신 이야기 등 지나온 시간을 두런두런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어느 틈에 어둠이 방안에 가득 들어와서 옆에 앉은 이들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들은 불을 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바람 소리도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어둠의 시간이 방에 흐른다.

“깜깜한 어둠이 왜 그리 무서울까요?”

“어둠은 그 자체로 무게가 있어서 사위에서 압박을 하기 때문이지”

그래. 인공조명이 없는 원시의 어둠을 맞본다며 산길에 있으면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눌린 듯 꼼짝할 수 없는 무서움이 몰려오지 않았나.

아주 먼 곳에 있는 듯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 스님과 헤어지기 전이었는데, 아내가 언제 오냐고 묻는다고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안부를 확인해 주는 사람이 있는 거는 좋은 거지.”

핸드폰 전등을 켜야 발을 움직일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큰 스님과 작별하고 망경산사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가 이곳에 다시 와서 맑게 핀 꽃들을 보면 이전과 같이 스쳐 지나치지는 않을 거 같다. 허리 숙여 안부를 묻고, 무릎 굽혀 눈 맞춰 인사하겠다.


첫날밤과 달리 마음 편한 밤을 잤다. 두번째 아침 공기에는 조금 익숙한 마가목 향기가 난다.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밤새 서리가 내려 하얗게 덮였다. 이제 시야를 막은 서리를 털어내고 산을 내려가 내 삶의 본거지로 가야 한다. 차에는 청하스님이 싸주신 6년 된장, 막장, 파프리카, 마가목 편, 헛개나무 열매, 생배추가 든 종이가방이 실렸다. 친정 간 딸의 귀갓길에 주렁주렁 싸주는 친정어머니의 정 같다. 마음에 싸한 바람이 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마음 한 자락을 두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