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모든 것들

-시간을 밟고 6화

by 금희

S는 과거를 털어내듯 , 컵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잔 위로, 흐릿한 기억들이 물처럼 번져갔다.
어쩌면 잊었다고 믿고 있던 시간들이, 그렇게 다시 흘러나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거실로 향한 그녀의 시선이 벽난로에 머물렀다.
순간, 작고 떨리는 불꽃이 시야를 스쳤다.

'이 애가 아직 살아 있었던가?'

불꽃을 향해 손을 뻗던 그녀는 느닷없는 열기에 움찔하며 손을 거뒀다.
선반 옆 스위치를 딸칵, 위로, 아래로 몇 번이나 켰다 껐다 했지만, 불꽃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네가 여길 지키고 있었구나.'

기다림의 시간을 안고 묵묵히 버텼을 이 집이, 갑자기 생명처럼 느껴졌다.
텅 빈 공간도, 벽에 걸린 그림도, 먼지 덮인 선반도, 모두가 주인을 기다리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 미안했고,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녀는 잠시 숙연해졌다.

창밖에선 바람이 나뭇가지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그 바람마저도 S를 알아보는 듯,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사흘이었다.
집 밖은커녕 창문조차 열지 않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제야 허기를 데려왔다.

그녀는 천천히 여행가방을 열었다.
햇반, 김, 쌈장.
낯선 나라의 식탁 위에 펼쳐진 한국의 밥상.
...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것은 피곤함과 그리움, 그리고 묘한 위로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얼굴. 마리아
어느 계절에도 따뜻한 웃음을 건네던 그녀.

'내일은 마리아를 찾아가 봐야겠어.'

시간은 길게 늘어지며 더 선명해졌고, 짧게 숨어 S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S는, 흔적을 지우며 천천히 시간을 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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